모든 것의 비밀은 빅뱅에 있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알려지지 않은 입자, 네 가지 힘의 근원 등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난제들은 빅뱅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과학자들은 특히 빅뱅의 초기 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어떤 원리로 발생했으며, 어떤 관계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입자와 그들의 상호작용, 시공간과 차원에 얽힌 난해한 문제들은 ‘신의 영역에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최근, 우주 생성 초기를 기존에 비해 매우 간단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제기됐다.
우주는 1차원 선의 형태로부터 진화했다빅뱅이 일어난 직후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해 왔다. 일반적으로 빅뱅과 우주의 팽창을 상상할 때,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3차원 형태의 구를 떠올릴 것이다. 구가 아니더라도 입체적인 공간을 떠올리는 것은 매우 기본적인 발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색다른 이론이 제시됐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는 입체적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1차원 선의 형태였다는 것이다.
‘차원 소실’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최근 고에너지 물리학계에서 제시하고 있는 초기 우주에 대한 설명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빅뱅과 함께 시작된 우주는 1차원 선 형태의 순수한 에너지였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선들은 스스로 교차해 나갔으며, 잘 짜인 직물의 형태를 이뤘다. 2차원 평면이 된 것이다. 같은 원리로, 평면이 확장되고 뒤틀리면서 시간이 흘러 3차원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설명이다.
이 이론이 맞는다면 현대물리학에는 많은 이변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과 시공간물리학을 설명하는 상대성 이론 간의 차이를 해결하고 힉스입자와 같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입자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복잡한 문제들을 매우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버팔로대 물리학자 데잔 스토이코비치는 “우린 고에너지 영역에서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변형해 복잡하지 않은 이론을 만들었다. 1차원에서 문제들은 매우 간단해졌다”라고 말했다.
차원 소실 이론이 우주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학창 시절 수학·과학시간을 생각해보면 쉽다. 운동에 대해 처음 배울 때, 직선상에서 움직이는 공이나 상자 따위를 대상으로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3차원 입체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더욱 높은 단계의 학문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특별히 3차원 공간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은 1차원 혹은 2차원의 관점에서 현상을 설명한다. 식이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스토이코비치 박사는 “1차원으로 내려가면 매우 단순해진다. 그곳엔 회전이 없으며 앞과 뒤 방향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에너지도 그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라고 설명했다.
1차원 우주의 증명은 중력파 관측으로 가능할 것스토이코비치 박사와 LA 로욜라 마리마운트대 물리학자인 존스 뮤레이는 저명한 과학저널인 Physical Review Letters에 이 이론과 함께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소개했다.
어린 우주가 1차원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중력파다. 우주를 이루는 거대한 천체들은 시공간을 일그러뜨린다. 이는 중력렌즈 현상을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천체에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그 시공간의 일그러짐에도 변화가 발생하며 그것은 광속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를 중력파라 한다.
중력파는 시공간이 존재해야 발생하는 현상이다. 즉, 차원 소실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1, 2차원의 우주가 존재했다면 그 시기엔 중력파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중력파를 감지해내는 것이 가능해지면 먼 과거의 흔적을 분석해 초기 우주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다. 우주 생성 후 중력파가 측정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주가 1, 2차원인 시절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스토이코비치 박사는 “이론이 맞는다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변화하는 시점은 빅뱅으로부터 1조초 후 온도가 1TeV수준으로 냉각됐을 때이며, 그것은 중력파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빅뱅이 일어난 시점부터 우주가 진화해 3차원 시공간이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시간에서는 중력파가 관측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직은 모호한 이론, 구체적인 메커니즘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이견도 있다. 켐브리지대의 고에너지 물리학자 토마스 소티리우와 이탈리아 SISSA(국제고등연구소)의 실케 바인뷰트너는 “중력파 방사가 특정 지점에서 단절되는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들은 “우주가 진화하면서 차원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근본적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한 애매모호한 이론”이라 반박했다.
이에 대해 스토이코비치 박사는 차원 소실 이론을 지지할 만한 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우주선(cosmic-ray)의 붕괴 현상이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의 입자와 방사선 등을 의미하는 우주선은 지구 대기 분자와 충돌하면서 붕괴되고 수많은 입자들을 흩뿌리게 된다. 쏟아지는 입자들은 원뿔 형태로 퍼져 나가는데, 그 단면은 원의 형태다.
스토이코비치 박사는 “우주선 붕괴가 이렇게 평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붕괴가 3차원보다는 2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이것이 2차원에서 일어난다면 입자들은 1차원인 선의 형태를 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LHC(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강입자충돌기)의 실험에서 입자들이 평면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빅뱅을 재현하려는 LHC실험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박사의 말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면 차원 소실 이론은 새로운 지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 조재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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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4-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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