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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0

철학과 과학 사이에서 태어난 심리학 장석훈 번역가/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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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심리학은 마음에 관한 학문이라고 한다. 심리학을 의미하는 싸이컬로지(psychology)라는 표현을 보면 마음을 의미하는 싸이키(psyche)가 그 어원에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엔 그 정의의 폭이 넓어져 심리학을 ‘행동’에 관한 학문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심리학은 과연 어떤 학문일까?


심리학이 본격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일이니 역사가 오랜 학문은 아니다. 처음에 심리학은 물리학 및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이나 수학 및 논리학 같은 정밀과학이 아닌, 역사학, 사회학 혹은 철학과 같은 인문학으로 분류되었다. 사실, 초기에는 철학의 중요한 주제들이 심리학의 영역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철학의 형이상학 분과에서 다뤄지던 정신적 실체와 물질적 실체 사이의 관계가 ‘심신(mind-body)’의 문제라는 형태로 심리학에서 깊이 다뤄지기도 했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 철학적 사유의 방식과 심리학적 사유의 방식에 큰 차이가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가령, 철학은 항상 세계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는 반면 심리학은 오로지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 그리고 행동에만 관심을 제한했다. 물론 종합적 사고를 지향하는 철학 속에 심리학적 사유의 내용도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리학의 개별적 특성이 철학 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학자들은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 심리학적 과정의 본질을 꿰뚫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1860년,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구스타프 테오도르 페히너가 심리학적 측정법의 한 방편으로 자극과 감각의 세기 관계를 측정하는 정신물리학적 측정법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는 실험심리학의 기원이 됐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의 과학적 입지를 탄탄히 다진 계기가 되었다.


이후 내성주의(introspectionism), 행동주의, 게슈탈트이론 등의 다양한 심리학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자연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위상은 더욱 탄탄해질 수 있었다. 물론 이 이론들은 그 안에서도 서로 아주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였다.


하지만 과학적 심리학에 대한 열망이 지나쳐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만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의식’의 문제는 정신분석학과 같은 영역에서 다뤄지긴 했지만 과학적 심리학을 표방하는 곳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했던 문제였다. 그에 대한 직접적 관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뇌영상촬영술의 발달로 심리학자들은 ‘의식’의 문제를 본격적인 심리학적 논의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뇌의 단층 영상을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술(MRI)이라든가 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화학적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ET)과 같은 장치 덕분에 심리학자들은 ‘의식’을 본격적인 연구주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심리학은 짧은 시간 동안 철학이나 과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자기만의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이런 양상이 다시 한번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모든 것을 과학적 원리와 방법론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마음’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심리적 내용을 생리학적 요인으로만 환원하여 살핀다면 생명현상이 일어나는 공간이자 삶의 주체가 되는 인간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현상’을 다루는 일과 ‘삶’을 다루는 일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철학과 과학 사이에서 태어난 심리학이 그 점을 분명히 자각한다면 철학과 과학의 성과물을 고루 흡수하는 가운데 인간을 위한 인간의 학문의 지위를 충분히 누리고도 남을 것이다.

저작권자 2005-05-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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