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효과’로 교통사고 줄인다

교통사고 예방 아이디어 봇물… 보행자 위한 표시도

택배기사인 최 모(33)씨는 최근 경북에 위치한 모 대학교 캠퍼스를 지나가다가 깜짝 놀랐다. 이전에는 못보던 기둥들이 도로 위에 여러 개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량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다가가보니 실제 기둥이 아니라 도로 바닥에 그려진 횡단보도 표시였음을 알게 됐다. 기둥처럼 보인 이유는 이 표시가 입체감을 살려 그렸기 때문이다. 착시 효과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림인 것을 알고 잠시 허탈해진 최 씨는 잠시 후 왜 이런 그림을 그려 운전자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지가 궁금해졌다. 최 씨가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대학교 직원에게 물어보니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아이디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당 직원은 “원래 이곳은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장소였는데 실물처럼 보이는 3D 횡단보도를 표시한 이후엔 사고 건수가 확 줄어들었다”라고 말하며 “간단한 아이디어이지만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착시 효과를 일으켜 운전자의 서행을 유도하는 '3D 횡단보도'

착시 효과를 일으켜 운전자의 서행을 유도하는 ‘3D 횡단보도’ ⓒ 교통안전공단

도로에 입체감을 주는 표시로 운전자의 서행 유도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예방 방법이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거나,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안전 장치들을 설치해야만 가능한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통사고 예방이 전 세계의 공통적 이슈이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뛰어난 아이디어를 국가별로 공유해 자국의 여건에 맞게끔 적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과 이동통신망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탄생하고 있는 교통사고 예방 아이디어들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이에 대해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해외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즉각적으로 국내에도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반대로 국내에서 호평을 받은 아이디어는 해외에 소개돼 현지화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라고 밝혔다.

교통안전 아이디어와 관련된 대표적 사례로는 앞에서 예를 든 ‘3D 횡단보도’가 있다. 기둥이 공중에 마치 떠 있는 것처럼 보여 일명 ‘공중부양 횡단보도’로도 불리는 이 3D 횡단보도는 캐나다와 프랑스 등 여러 교통 선진국에서 이미 도입했던 아이디어로서 각국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바닥 신호등은 고개를 숙이고 걷는 스몸비족을 위한 아이디어다 ⓒ 교통안전공단

바닥 신호등은 고개를 숙이고 걷는 스몸비족을 위한 아이디어다 ⓒ 교통안전공단

3D 횡단보도는 도로에 표시를 할 때 흰색으로만 하지 않고 회색과 검은색 등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해 입체감을 제공한다. 이를 멀리서 바라 보면 마치 횡단보도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운전자는 서행을 하거나 멈추게 된다.

3D 횡단보도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아이디어라면 ‘바닥 신호등’은 ‘스몸비족’을 위한 교통안전 아이디어다. 스몸비(smombie)란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로서 길을 걷는 중에도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 봄으로써 각종 사고를 당하거나 일으키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개를 숙인 채 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신호등이나 각종 표지판 등 교통안전과 관련된 사항들을 인지하지 못해 각종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스몸비족이 유일하게 인지할 수 있는 바닥에 LED 등을 설치해 도로가 안전한 상황인지 여부를 파악하도록 만들자는 것이 ‘바닥 신호등’의 핵심 아이디어다. 현재 바닥 신호등은 싱가포르와 네덜란드, 그리고 캐나다 등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기존 표시에 한 가지만 추가하면 사고율 줄어

이미 국내에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지만 홍보가 제대로 안 됐거나 잘 몰라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들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로 ‘지그재그 차선’과 ‘X자형 횡단보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지그재그식으로 그려진 차선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일단 속도를 줄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지만 정식 의미는 ‘어린이 보호구역 안 횡단보도 예고 표시’다. 도로교통법에 추가됐을 때만 하더라도 학교 주변이나 어린이 보호가 필요한 구역에만 표시해왔지만 지금은 사고 다발 지역 등 주의가 필요한 곳에도 표시하고 있다.

반면에 X자형 횡단보도는 국내 사거리에 주로 설치되어 있는 네모형 교차로에 대각선 모양의 횡단보도를 추가한 것을 말한다.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면 모든 차량 통행이 일시 정지함으로써 보행자가 어느 방향으로든 동시에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차량보다 사람을 배려한 대표적 교통안전 표시로서 보행자가 예전보다 훨씬 더 여유 있게 건널목을 건널 수 있어 교통사고 예방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지그재그식 도로표시줄을 만나면 일단 서행해야 한다 ⓒ 교통안전공단

지그재그식 도로표시줄을 만나면 일단 서행해야 한다 ⓒ 교통안전공단

X자형 횡단보도는 지난 1940년대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일본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며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설치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한편 바닥 신호등이나 X자형 횡단보도처럼 도로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에게 직접 적용해 좋은 효과를 보는 아이디어도 등장하고 있다.

창원중부경찰서는 지역 어르신들에게 자체 제작한 모자인 ‘시니어 캡(Senior Cap)’을 배부하고 있다. 이 모자는 빨간색으로 시인성이 높고 야광띠도 둘러져 있다. 야간에 길을 걷는 노인이 교통사고에 가장 취약하다고 알려진 만큼 노인들의 야간 교통사고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또한 경남도교육청은 초등학생들에게 배포한 ‘가방 안전덮개’로 전국적인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방 안전덮개는 형광색으로 만들어져 운전자 눈에 쉽게 띄고 스쿨존 내 속도제한을 알리는 숫자 ‘30’도 크게 표시해 서행을 유도한다. 이 덮개는 지난해 대한민국 안전기술대상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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