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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준래 객원기자
2017-01-04

진짜와 가짜 그림, 과학적 판별법 전문가 안목에서 적외선 촬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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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유명 화가의 위작(僞作) 논란으로 미술계가 시끄럽다. 해당 작품의 진위 여부를 두고 국내와 해외의 감정 평가 결과가 상반되게 나오면서 미술계는 지금 각종 의혹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작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고 천경자 화백과 미인도 ⓒ KBS
위작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고 천경자 화백과 미인도 ⓒ KBS

문제는 이 같은 논란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중섭이나 박수근 같은 근대 회화의 거장들은 물론, 조선시대 화가였던 김홍도나 김정희 등의 작품까지 모두 위작 논란에 시달리며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술 전문가들과 과학자들로 구성된 감정위원단의 감정 평가 방법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작품을 감정하길래 이처럼 위작 논란이 끊이질 않는 것일까? 전문가적 안목에서부터 적외선 촬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고 있는 감정평가의 세계가 자못 궁금해진다.

작품 감정의 기본은 전문가적 안목

감정 방법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전문가적 안목은 주로 화가의 기존 그림과 대조하여 그림체 및 글씨체를 비교하거나, 덧칠 한 흔적 등을 조사하여 판단하는 방법이다. 화풍(畵風)은 물론 색감과 질감, 그리고 붓질 등을 세심하게 살피는 과정으로서,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수일에 걸쳐 진행된다.

감정을 진행하다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감정단에서 단 한 명이라도 ‘위작’이라는 의견이 제기되면, 전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난상 토론이 진행된다. 예를 들어 위작 논란이 있었던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는 20여명의 감정단 중 한 명이 위작이라는 의견을 냈고, 토론을 거친 뒤에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아 ‘감정 보류’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림의 부분적인 어색함 때문에 위작이라는 의견이 개진된 작품으로는 김홍도의 ‘서당’과 ‘나룻배’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이 ‘서당’을 위작이라고 본 이유는 훈장의 어깨가 너무 과장되었고, 학동(學童)들의 어깨와 다리가 서로 붙어 있어서 천재 화가가 그렸다기에는 뭔가가 어색하다는 것이다.

또한 ‘나룻배’도 붓질의 세련됨이 기존 김홍도의 그림과 비교해 볼 때 수준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심지어는 가운데 종이를 도려내고 다시 그려 붙인 흔적까지 있어 마치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린 것 같다는 의견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왔다.

위작으로 추정되고 있는 기홍도의 '서당'
위작으로 추정되고 있는 김홍도의 '서당' ⓒ 홍익대

반면에 그림은 완벽했지만, 사용된 물감의 문제로 위작임이 밝혀진 경우도 있다. 신사임당의 ‘맨드라미와 쇠똥구리’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작품에 등장하는 흰색의 나비가 서서히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꼬투리를 잡혔다.

당시 이 같은 문제를 발견했던 감정학 분야의 권위자인 이동천 박사는 “우리 조상들은 흰색을 내고자 할 때 연분(鉛粉)을 사용했지만, 1840년대 이후부터는 중국산 연분을 쓰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라고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산 연분은 산화아연으로 만든 백색 안료인 징크 화이트를 황산과 섞어 만드는데, 몇 십 년이 지나면 흰색이 검게 변하는 반연(返鉛)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신사임당은 1504년에 태어나 1551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1840년대에 만들어진 중국산 연분을 사용했을 리가 만무하다”라고 설명하며 “따라서 이 작품은 명백한 위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과학적 감정 기법은 아직 걸음마 단계

전문가의 감정 평가가 작품을 관찰하는 ‘안목(眼目)’이 핵심이라면, 과학적 감정 평가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이 그려진 비단이나 종이의 표면 상태에 대한 입체적 관찰을 할 때는 현미경을 쓰고, 육안으로 관찰이 어려울 정도로 작품이 심하게 오염됐을 때는 적외선 촬영을 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 디지털 이미징을 이용한 색분해 방법도 활용된다.

이 중 색분해 방법의 경우는 과거 천경자 화백의 1주기 추모전에 출품됐던 ‘뉴델리’가 위작이라는 것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기법이다. 당시 감정단은 색분해 기법을 활용하여 작품에 그려진 서명 아래에 또 다른 서명의 흔적이 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과학적 감정 기법이라 해서 만능은 아니다. 기술로 화풍이나 글씨체를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용된 재료가 주로 감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데, 만약 범인이 화가와 동일한 종이나 안료를 사용해서 그렸다면 위작 여부를 규명하기가 어려워지는 약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과학적 감정 기법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 할 수 있다. 위작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사건을 마무리하는 데만 집중하지,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일에는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하루빨리 예방을 기본으로 하는 선진화된 감정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다양한 종류의 카탈로그레조네
다양한 종류의 카탈로그레조네 ⓒ wikimedia

선진화된 감정 시스템으로는 ‘카탈로그레조네(catalogue raisonne) 제도의 의무화’와 ‘도상학(iconography) 과정의 저변 확대’가 꼽힌다.

카탈로그레조네란 화가의 작품이 모두 기록된 책이나 기록물을 말하는 것으로서, 작품의 진위 감정에 있어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2년 전 국내에서도 전시회가 열렸던 모딜리아니(Modigliani)의 경우 체로니(Ambrogio Ceroni)가 집필한 카탈로그레조네에 수록된 작품만이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도상학이란 그림이나 이미지들을 분류하고 서술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르노와르(Renoir)의 작품을 감정할 때 그려진 시기와 관련된 정보, 즉 당시 유행했던 여성들의 패션이나 액세서리, 그리고 남성들의 운송수단 등을 통해 시점과 지역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데 있어 귀중한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저작권자 2017-01-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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