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 지배하려는 욕심 때문에 지구는 몸살에 걸렸고, 그 몸살을 만든 세균은 바로 인간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장르 소설가 막심 샤탕이 펴낸 ‘가이아이론’의 첫 부분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잠재된 폭력성을 분석하고 지구환경 및 기후, 기아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룬 추리소설이다.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서, 카오스(혼돈)에서 스스로 생겨나 하늘과 땅과 바다와 신과 인간을 낳았다. 즉, 모든 것의 원초이자, 지구를 상징하기도 한다.
제임스 러브록에게 가이아라는 아이디어를 준 이는 ‘파리대왕’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월리엄 골딩이다. 1960년대 후반 어느 날 이웃 친구로 지내던 두 사람은 함께 영국 남부의 시골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러브록은 우주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보면 지구도 살아 있는 생명 같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골딩은 러브록의 이론에 ‘가이아’라는 이름을 붙이라고 조언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72년 러브록은 ‘가이아 가설’을 제시하며,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그 논문에서 가이아 가설에 대해 ‘생물권이 지구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활동적이고 적응적인 제어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1979년 러브록은 ‘가이아 :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란 책을 펴내면서 가이아 가설을 이론으로 정립했다.
여기서 가이아란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물을 비롯해 토양, 바다, 대기권 등의 무생물계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범지구적 실체다. 즉, 이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기조절 시스템을 통해 항상성을 유지하는 범유기체이자 거대한 생명체가 바로 지구라는 이론이다.
지구가 자기 존재의 합목적성에 따라 움직인다는 가이아이론은 발표 당시 다윈의 진화론이나 베게너의 판구조론 못지않게 과학계와 사회로부터 홀대와 비웃음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가이아이론은 과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지구 환경 변화에 대한 세계 과학자들의 선언문인 2001년 ‘암스테르담 선언’에 고스란히 반영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로 위협 받는 가이아이론
올해 3월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내놓은 5차 평가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12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0.89℃ 상승했으며, 현재 추세대로 감축 없이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할 경우 21세기 말에는 전 지구의 평균기온이 3.7℃, 해수면은 63㎝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또한 기후변화로 거주지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늘고 빈곤 심화로 분쟁 위험성이 고조되는 등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안전보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처음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한 가이아이론대로 지구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자기조절 시스템을 가진 생명체라면 자신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인 지구온난화에 대해 능동적인 어떤 대처를 하고 있어야 옳지 않을까.
예를 들면 최근 들어 겨울마다 반복되는 폭설의 경우 지구 스스로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즉, 기상이변으로 폭설을 내리게 하고 햇볕을 반사시켜 지구온난화로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온도를 낮춘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사막 지대가 점차 늘어나면서 황사나 먼지 등의 발생량이 증가하는 현상도 가이아의 능동적인 대처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먼지들이 태양에서 지구로 유입되는 햇빛을 산란하거나 반사해 지표면을 냉각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팀의 시뮬레이션 실험에 의하면 여름철에만 북극 상공의 햇빛을 차단해도 북극의 얼음 면적이 산업혁명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그런데 최근 가이아이론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영국 국립해양센터 및 브리스톨대학 등의 연구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여름철 남극의 빙상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에 철 성분을 유입시키고, 그로 인해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이 촉진돼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
해빙이 오히려 지구온난화 상쇄 역할 해
철분은 가장 중요한 생물화학적 원소 중 하나로서, 해양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식물성 플랑크톤의 증가가 인간 활동에 의해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줄 것이라며 바다에 철분을 투여하는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빙상이 이미 이러한 프로세스를 매년 여름마다 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상은 지구상 육지 면적의 약 10%를 차지한다. 영국 연구진의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린란드에서 매년 40만~250만 톤, 남극에서 6만~10만 톤의 철분이 빙하를 통해 바다에 유입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파리의 에펠탑 125개 또는 보잉 747기 3천대 정도의 무게와 맞먹는 양의 철분이 방하에 의해 바다로 유입된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빙하로부터 유입되는 철분의 양이 또 다른 철분 공급원인 대기 중 먼지에 의한 유입량과 그 규모 면에서 거의 유사하다고 밝혔다.
한편 호주 기후시스템연구위원회에 소속된 연구진은 과거 20년 동안 태평양 무역풍이 발달함으로써 열대 태평양을 냉각시키고 증가된 하부 표면의 해양 열 흡수를 통해 지구온난화를 상당히 지연시킬 수 있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네이처 기후변화’라는 저널에 발표된 이 논문은 바람에서 발생하는 비약적인 가속이 태평양의 순환을 활성화시켜 대기에서 유래하는 더 많은 열이 해수 표면을 냉각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대기 온실가스의 증가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전 세계 평균 표면 대기 온도는 2001년 이후 거의 일정하다는 사실이 이 연구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효과는 결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호주 연구진은 지난 20년 동안 강화되었던 태평양 무역풍이 원래의 상태대로 되돌아가게 되면 대기에서 열이 신속하게 축적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이아이론을 처음 주장했던 제임스 러브록도 2007년에 발간한 ‘가이아의 복수’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 때문에 지구는 회복 불가능하다”며 자신의 이론을 대폭 수정한 바 있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 저작권자 2014-06-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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