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대응, 화학기술로 선도해야”

화학·분석장비 분야, 전략적 투자 필요

일본의 프리미엄 음향기기 브랜드인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의 고가 이어폰 ‘피아노 포르테 (Piano Forte X)’ 이어폰은 300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이어폰’으로 알려져 있다.

최상의 음질을 자랑하는 이 이어폰의 핵심 기술은 다름 아닌 ‘접착제’에 있다. 하지만 제품을 분해해도 접착제의 성분을 파악할 수 없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치열한 경쟁도 마찬가지다. 코카콜라가 시장 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아무도 코카콜라만의 화학적 배합 요소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화학기술 산업 부문에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두수 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는 “전자, 반도체 등의 기술은 분석이 쉬워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추월당하기 쉽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우리도 다른 나라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화학·분석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한국과총은 측정분석과 연구 장비 산업에 대한 전망을 알아보기 위한 포럼을 유튜브 한국과총 채널을 통해 생중계했다.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일본에 의존하는 기초과학기술, 이제는 우리가 선도해야

정 교수는 지난 29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 한국분석과학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과학기술강국의 전제조건, 측정분석과 연구 장비 산업’ 온라인 공개 포럼에서 “국내 주력 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한발 앞선 기초과학기술 강국”이라고 지적하며 화학·분석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산업은 해방 이후 발전을 거듭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IT, 전자, 반도체 산업 등 일본에 뒤처졌던 많은 산업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 대일 무역적자는 단 한 번도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54년 동안 누적 대일 무역적자는 무려 700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로 돌아왔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한일 무역전쟁으로 걸어온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의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단행한 것은 ‘독’이 아닌 ‘약’이 됐다.

정두수 서울대학교 교수는 일본을 따라잡고 추격하는 중국에 대응할 화학 분석 기술 분야 투자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 사건은 결국 그동안 일본에만 의존하던 소재 및 부품 기술의 수입처 다변화 및 불화수소 국산화라는 고무적인 성과로 귀결됐다.

정 교수는 여기에 첨단 화학기술이 더해지면 앞서있는 일본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중국에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우선되는 것처럼 화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측정 및 분석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분석 연구 장비 산업 현황을 지난해 일본 정부의 불화수소 수출 규제 이후 러시아에서 순도 높은 불화수소를 공급하겠다고 나섰지만 국내 기업들이 거절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순도 높은 불화수소를 검사할 수 있는 분석 장비와 검사 역량 등 분석 기반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급한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택과 집중’, 스마트 전략산업 투자’ 이뤄져야

이러한 결과 속에는 과학자 및 기업 등 사용자의 인식 제고 및 사용 패턴, 신뢰성 문제도 함축되어 있다. 조상준 파크시스템스 연구소장은 이날 포럼에서 국내 분석 연구 장비 산업 분야에 기술력이 있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포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비 국산화 및 기술 개발에 진전이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조상준 파크시스템스연구소장은 연구장비산업을 전략적 과제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조 연구소장은 “과학자 및 기업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하던 연구 장비를 쉽게 변경하기 어렵다. 과학자에게 장비란 생명과 같기 때문”이라며 “좋은 국산 장비가 있어도 기존의 익숙한 장비를 사용하다 보니 국내 기업들이 높은 장벽을 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연구 관행도 문제다. 학계 및 기업의 연구개발비 지원이 단기간 성과를 내야 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성장시켜야 하는 장비 분야 투자는 건너뛰고 쉽고 익숙한 해외 장비를 사 와서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정부의 ‘선택과 집중’ 투자 전략도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조 연구소장은 “그동안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연구 분야에 집중 투자하다 보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 분석 장비 산업에 많은 투자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이 분야는 전략적인 투자 및 판단이 필요하다. 독일이나 일본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50~100년 장기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장기간 로드맵을 구축하면서 국책사업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분석 연구 장비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분석과학자 양성이 시급하다. 정두수 교수는 최소한의 분석과학자 양성은 물론 ‘버추얼 분석 거래소’와 같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교수가 말하는 ‘버추얼 분석 거래소(Virtual Company)’는 초연결 된 집단지성의 집합체로 정부가 국내 여러 실험실과 전문가들을 모아 만든 인증 분석실을 뜻한다.

여기에 첨단 분석 연구 장비 국산화를 위한 연구 지원도 절실하다. 정 교수는 “분석 연구 장비의 국산화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수입 비중을 줄이는 한편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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