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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5

줄기세포연구의 역사 김정화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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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2일 영화 ‘슈퍼맨’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사망했다. 1995년 낙마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리브는 재활 의지를 굽히지 않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리브처럼 현대 의학으로는 손을 쓸 수 없는 질환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곤란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줄기세포다.


성체와 배아의 갈림길

줄기세포(stem cell)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나 조직의 근간이 되는 세포다. 이론적으로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나 조직으로 분화가 가능한 만능세포다. 무한대로 증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손상된 장기나 조직을 재생하는데 안성맞춤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신경세포를 만들면 전신마비인 사람이 다시 움직일 수도 있고, 피부세포를 만들면 화상 환자가 원래의 뽀얀 피부를 되찾을 수 있다.


이렇듯 인류의 난치병 정복을 앞당길 것으로 예상되는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성체 줄기세포’와 수정란인 배아에서 얻는 ‘배아 줄기세포’다.


성체 줄기세포의 역사는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6년 미국의 내과의사 E. 도널 토머스는 생체에 골수를 주사하면 골수가 새로운 혈구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밝혀 199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TV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병인 백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골수이식’이라는 방법이다.


성체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장소는 골수, 신경, 근육, 피부, 유방 그리고 출산아의 탯줄, 태반 등이다. 그러나 이런 조직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내기가 까다롭고 분화의 방향이 정해져 있어 다른 조직의 세포로 분화시키기 어렵다는 단점을 지닌다.


이런 상황에서 1998년 11월 미국 위스콘신대의 제임스 톰슨 교수와 존스 홉킨스대의 존 기어하트 교수는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낸 후 다른 조직으로 분화시키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여기서 배아란 수정이 이뤄진 뒤 8주째가 되지 않은 수정란을 말한다.


인간배아 줄기세포는 보통 불임부부가 시험관 아기 시술에 사용하고 남긴 냉동 잉여배아나 임신한지 12주 이내에 유산된 태아에서 추출한다. 인간으로 자랄 세포이기 때문에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의 쉽게 분화시킬 수 있다고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될 수도 있는 세포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배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간 배아 복제’가 있다. 체세포의 핵을 미리 핵을 제거한 난자와 융합시키는 체세포 복제 기술로 만든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이다. 인간 배아 복제를 하면 복제 배아를 다량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줄기세포의 양도 많아지게 된다. 또 치료할 환자의 체세포로 복제 배아를 만들면 면역 거부 반응이 전혀 없다는 장점도 지닌다.


2001년 11월 25일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ACT)社는 사람의 난구세포를 핵을 제거한 난자에 집어넣어 인간 배아를 만드는데 최초로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만들어진 복제 배아는 6세포기까지 분열하다가 죽어버렸다.


배아 복제로 정상에 오른 한국

인간 배아 복제는 현실이 됐지만 복제 배아를 8세포기 이상으로 키우는데 실패하면서 과학계에서는 마의 장벽이 존재하는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배아를 못 키우면 줄기세포를 아예 뽑을 수 없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연구 성과가 우리나라에서 거둬졌다.


2004년 2월 13일 서울대 황우석 교수와 문신용 교수는 인간 배아를 복제하고 여기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저명학술지인「사이언스」3월 12일자의 표지논문으로 소개됐다.


세계 과학계에서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인간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 성공한 사실을 두고치료 목적의 복제를 위한 길을 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로저 피터슨 교수는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21세기에는 한국에서 생명공학 혁명이 시작됐다”는 엄청난 찬사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간 배아 복제 역시 윤리적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복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배아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돼 만들어지는 자연스런 배아와는 태생이 다르기는 하지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똑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복제 배아를 만들어 줄기세포를 꺼내는 배아 복제와 복제 인간을 만드는 인간 복제는 구별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치료용 복제(therapeutic cloning)’의 개념이다. 인간 복제는 원천적으로 금지돼야 하지만, 치료용 복제는 엄격한 한도 안에서 적절히 이용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분화 능력의 부족 때문에 뒤로 밀려났던 성체 줄기세포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성체 줄기세포는 다 자란 개체에서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아무런 논란이 없다. 실제 5-6년 전부터 성체 줄기세포를 근육세포나 간세포, 신경세포로 만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또 성체 줄기세포를 치료용으로 사용할 때 환자의 몸에서 추출해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면역 거부반응이 없다는 장점을 지닌다.


성체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조직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채취한 줄기세포는 점점 더 다양한 세포로 분화되면서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해 많은 종류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체 줄기세포를 얻는 일은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양이 많지 않다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미완의 성공, 줄기세포 연구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줄기세포를 이용해 뇌, 간, 심장 등 신체 장기들을 이루는 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만능세포를 어떻게 해야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시킬 수 있는지, 이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의학적인 활용까지 넘어야 할 산은 한 두개가 아니다.


줄기세포 연구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 인간 배아 줄기세포는 인간이 될 세포를 실험대상으로 한다는 윤리적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배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인 인간 배아 복제는 인간 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반면 성체 줄기세포는 연구의 어려움 때문에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밝게 만들 줄기세포 연구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서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때이다.

저작권자 2004-11-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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