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수상한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양자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일조한 과학자다. 그는 심오하고 난해한 양자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반화 시켰다. 그리고 그는 웃을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고 웃는 재미있는 학자다.
물리학을 최고 수준에서 연구할 때 자주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과학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룩한 발견을 묘사할 때 오래된 기존의 전통이론을 가능한 한 대단한 것으로 보는 일이다. 그래서 물리학의 대가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현실(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영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환상에 불과하다”고 논평한 것이다.
머래이 겔만(Murray Gell-Mann)이 원자를 쪼갤 때 생기는 미세한 입자를 발견한 후 이를 ‘쿼크(quarks)’라고 부른 것이 그렇다.(쿼크는 James Joyce의 피네건의 경야(Finnegans Wake)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말이다). 또한 리차드 파인만이 한 모든 언행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풍류와 웃음을 즐긴 학자
기록된 인류역사 전체를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에서부터 동료들과 함께 나체로 온천욕을 하며 흥겹게 노는 것에 이르기까지 파인만의 재능과 기이한 행동은 다채로웠다. 최근 물리학계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갈릴레오 이후 시대를 통틀어 일곱 번째로 위대한 물리학자로 뽑혔다. 그리고 그는 풍류를 즐길줄 아는 사람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장난을 즐기는 파인만의 이러한 성격은 아주 민감하고 비밀스러운 맨하탄 계획(Manhattan Project)에서 신참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나타났다. 원자력에 관한 기밀사항을 보관한 곳에 은밀히 침투하고 나서 이 계획의 느슨한 보안상태를 놀리는 짓궂은 편지를 현장에 남겨 소란을 피우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과 칼 세이건(Carl Sagan)과 같은 앞선 시대의 유명한 물리학자처럼 파인만이 가끔 저지른 엉뚱한 짓은 그의 두뇌가 아주 명석하다는 것을 가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현대 물리학에서 풀지 못하고 있던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적인 역량을 갖고 있었다.
파인만은 다른 두 명의 동료과학자와 함께 결국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 이론에서 끈질기게 풀리지 않던 문제점을 해결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QED 이론이란 빛과 자기, 그리고 전기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QED이론에 획기적인 진전 이룩해
파인만은 1918년 5월 뉴욕시 퀸즈구 파 락어웨이(Far Rockaway)에서 태어났다. MIT공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때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유명한 많은 물리학자들처럼, 파인만의 주요 업적도 비교적 초기에 이루어졌다. 그는 1947년 QED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룩했다. 8년 동안 이 문제에 매달린 노력의 결실이었다.
MIT 대학시절, 파인만은 QED가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 이 이론을 읽고 또 읽었다. 그가 읽은 양은 욕실 크기에 필적할 만큼 대단했다. 매일 아침 180 파운드 분량을 읽었고, 때로는 10,000 파운드 분량을 무작정 읽기도 했다. 심지어는 ‘끝없이’ 읽은 적도 있었다.
“과학에 대한 열정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파인만이 찾아낸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그가 물리학자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예고한 셈이 되었다. 생생한 묘사를 조금 해보자. 지금은 파인만의 도형(Feynman Diagrams)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파인만은 여기에서 전자처럼 아주 미세한 물질들이 자연에서 실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묘사했다.
그는 발견한 것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탁월했다. 핵심을 찌르는 설명 방식은 세계 주요 물리학자들의 눈에 즉시 띄었다. 이로 인해 파인만은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로 초빙돼 겔만(Gell-Mann)을 비롯한 당대의 위대한 물리학자과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파인만과 겔만이 협동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고 두 사람은 심하게 불화를 겪는다(예를 들면, 파인만은 쿼크를 다른 과학자들이 제안한 용어인 ‘파톤(partons)’이라 부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인만이 그의 복잡한 이론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능력은 그의 책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으며, 종국에는 그의 이름을 사람들 귀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대단한 말쟁이
발표를 잘하는 파인만의 능력(겔만과 같은 사람들은 이를 자기홍보라고 불렀다)은 그가 1965년 12월 11일에 노벨상 수락 연설을 할 때 분명히 드러났다. 여기서 파인만은 그가 젊은 학자일 때 어떻게 이 이론에 매달렸는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 개념이 나에게는 아주 분명하고 또 우아해서 그것에 대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여러분이 그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녀의 결점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결점은 후에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지만 그때 가면 사랑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붙잡을 만큼 강해지게 됩니다.”
1988년에 파인만이 사망한 후 그의 그림과 글을 모은 다양한 수집품과, 그에 관한 일화를 모은 것을 다시 출판한 저작물, 그리고 세 권의 자서전이 출판돼 파인만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됐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죽음 앞에서도 농담을 잃지 않아
아마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은 그가 병석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아닌가 싶다. 암으로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면서 죽어갈 때 잠시 정신이 들자 파인만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이렇게 죽어가는 것은 참 지겨운 노릇이다.” 파인만은 재미있는 학자다. 그러나 현대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QED이론을 쉽게 풀이한 위대한 혁신가다.
- 김형근 객원편집위원
- 저작권자 2005-05-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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