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적조가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게 나타난 한 해였다. 8월의 강한 햇볕 속에서 적조가 증식을 거듭하면서, 남해안 어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이 같은 피해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도대체 태양계 끝인 명왕성까지 우주선을 보내는 이 첨단 시대에, 사람은 어째서 이 조그만 생물 앞에서 쩔쩔매는 것일까?
조류 중에도 유해한 조류가 피해 입혀
적조는 연안의 해수가 부영양화 되면서 먹잇감이 풍부해진 유해성 적조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번식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때 이들의 붉은 색소 및 생리 상태로 인해 바닷물이 붉게 보이기 때문에 ‘적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적조 주의보가 발령되면 일반적으로 바다에 황토를 뿌린다. 황토가 조류의 증식을 막는데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강한 햇볕과 24도 이상의 수온이 유지될 경우, 적조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적조가 발생한 바다는 어패류의 무덤이 된다. 편모류 같은 적조를 유발하는 조류가 어패류의 아가미를 막아버려 질식사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조류가 다 어패류를 죽이는 것은 아니다.
적조의 원인이 되는 생물은 크게 ‘무해 조류’와 ‘유해 조류’로 구분된다. 무해 조류에는 규조류와 남조류 등이 있는데, 이들은 순수한 식물성 플랑크톤으로서 어패류의 먹이가 되는 유익한 조류다.
반면에 문제가 되는 유해 조류로는 편모류가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도 와편모류에 속하는 코클로디니움(cochlonidium)은 독소를 가져 어패류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되듯이 적조를 퇴치하려면 적조를 일으키는 생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유해 조류의 정체는 알면 알수록, 놀라움 그 자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일례로 적조 유발 조류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 존재인 와편모류는 염색체수가 인간보다 5배 이상 많은 250개고, DNA 염기수도 2900억 개로서 30억 개인 인간보다 100배가량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와편모류가 이 같은 엄청난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분화됐고, 그 결과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불사조’가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 ‘불사조’ 같은 생물을 막기 위해서는 인간도 역발상의 방법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이제이 방식의 적조 퇴치법
적조 퇴치를 위한 역발상의 선두주자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의 정해진 교수다. 그가 주장하는 적조 퇴치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즉 오랑캐는 오랑캐로 쫓아낸다는 뜻처럼, 적조 유발 조류는 또 다른 조류로 물리쳐야 한다는 이론이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적조를 유발하는 조류 중 가운데 와편모류는 독성 물질을 뿜고 물고기의 아가미에 달라붙어 폐사시키는 등 각종 피해를 일으키지만, 규조류의 경우는 무해하며 물고기의 먹이도 될 수 있어 증식해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무해 조류를 인위적으로 증식하여 유해 조류를 억제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가 주장하는 역발상 해법의 골자다. 정 교수와 연구진은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지난달 발간된 ‘국제 유해조류지’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다음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핵심 내용은?
와편모류는 하루에 1~2회 분열하는 데 비해 규조류는 1~4회 분열하는 등 증식 속도가 더 빨라서, 와편모류의 증식을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규조류가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양식장 어류가 대량 폐사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 이른바 ‘이이제이’ 방식으로 불리는 이번 해법의 가치와 국제 학술지에 게제된 의미는?
이이제이 방식은 우리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방법이다. 그만큼 창의적인 방법이라 볼 수 있는데, 국제 유해조류지도 이 같은 창조적 발상에 의미를 부여하여 일반적인 논문 게제 기간보다 훨씬 앞당겨 학술지에 소개했다.
- 흔히 적조로 인해 어패류가 죽는 원인이 바닷물의 용존 산소가 부족해져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규조류가 증식해도 용존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적조로 인해 어패류가 죽는 가장 큰 이유는 용존 산소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와편모류가 아가미를 막아 호흡을 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육지생물로 비유하자면 공기 중에 산소가 모자라 죽는 것이 아니라, 코를 막아버려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와편모류가 없어지면 적조 피해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상당히 획기적인 방법 같은데, 상용화에 있어 걸림돌은 없는지?
규조류의 먹이라 할 수 있는 인과 질소 등의 성분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높여야 하는지를 설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규조류가 대량 증식하고 와편모류가 위축될 수 있는 최적의 영양물질 배출 농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앞으로의 계획은?
본격적인 바다 양식장에서의 테스트에 앞서 일단은 내년 7~8월을 목표로 육지에 조성된 양식장에서 테스트를 거칠 예정이다. 순조롭게 테스트가 진행된다면 통영지역 인근의 가두리 양식장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상용화 테스트를 거칠 예정이다. 3~5년 안에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5-10-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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