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현장에도 ‘과학수사대’ 활약

국립재난안전연구원 DSI 운영

살인사건이 벌어진 참혹한 현장. 조사에 나선 수사관이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사건현장을 관찰한다. 이윽고 시체에 붙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는 살인사건의 단서가 될 증거임을 직감한다.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범죄과학수사대(CSI)’의 한 장면이다. 살인, 폭력과 같은 강력 사건 해결에 과학기술이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 드라마로 유명하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수사대가 있다. 이 조직은 형사 사건이 아닌 재난이나 안전 사건들을 주로 담당한다. 바로 재난 분야의 과학수사대라 할 수 있는 ‘DSI(Disaster Scientific Investigation)’다.

자연적 재난은 물론 사회적 재난에도 DSI가 활동하고 있다  ⓒ 재난안전연구원

자연적 재난은 물론 사회적 재난에도 DSI가 활동하고 있다 ⓒ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자연적 재난보다 사회적 재난의 피해가 더 커

흔히 재난이라고 하면 태풍이나 폭우 또는 폭염 등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해를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사회적 재난의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작동에 문제가 생겨 방사능이 누출되거나 갑작스런 정전으로 인해 블랙아웃 현상이 발생하는 것 등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재난 사례가 지난 2011년 발생했던 농협 금융 전산망 해킹, 2016년에 일어난 국내 대형 쇼핑몰의 고객정보 유출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재난은 사안에 따라 자연적 재난보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문제는 이런 사회적 재난이 자연적 재난에 비해 그 형태가 무척 다양하고,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자연적 재난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예측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비해 사회적 재난은 모순되게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욱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재난원인 과학조사 센터의 주요 업무

재난원인 과학조사 센터의 주요 업무 ⓒ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따라서 전문가들은 사회적 재난의 피해의 원인에 대해 철저한 규명작업을 실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재난 발생의 원인을 조사하고, 과정을 분석해야 유사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DSI는 바로 이 같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된 조직이다. ‘재난원인 과학조사 센터’라는 정식 명칭을 갖고 있지만, ‘범죄과학수사대(CSI)’의 명칭을 본 딴 ‘재난과학수사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자연적 재난의 원인 규명과 예방을 중심으로 하되, 사회적 재난의 원인 규명 및 예방 업무의 비중을 높여 나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DSI를 운영하고 있는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관계자는 “CSI는 사건이 발생하면 각종 증거자료를 모으고 범인을 추적하다가 검거하는 것으로 임무를 종료한다”라고 설명하며 “반면 DSI는 재난과 안전사고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추후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까지 맡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덧붙였다.

발생에서부터 복구까지 전 과정을 프로파일화

지난 5월 울산 태화강의 한 둔치에서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지진으로 인한 지반파괴와 구조물 붕괴 그리고 유독가스 누출 등 복합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을 가정해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실시한 훈련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DSI가 출동할 때 사용하는 첨단 재난 현장조사 장비가 총동원됐다. 특수조사차량과 재난특수임무로봇 그리고 유해대기오염물질측정센서 등 평소 접하기 힘든 고가의 장비들이 선을 보였다.

특수조사차량의 경우는 사람이 진입하기 힘든 지진 현장이나 시설물 붕괴 상황을 가정해 투입됐다. 이 차량은 빛을 이용해 거리를 측정하고 물체를 감지하는 라이다(LiDAR) 시스템과 지반함몰센서 등이 탑재되어 있어 원거리에서도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관계자는 “국내에 단 1대뿐인 특수조사차량으로서 12억 원을 투입해 연구원이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라고 소개하며 “이 외에도 접근하기 어려운 재난현장에는 바퀴와 집게가 달린 재난특수임무로봇이 가장 먼저 투입돼 장애물을 치운 다음 특수조사차량이 투입될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오렌지색 보호복을 입은 조사원이 유해대기오염물질측정센서를 들고 현장에 접근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일부러 유독한 가스를 소량 배출해 기기 성능을 점검하는 훈련이었다.

조사원이 현장에 접근하자 센서가 감지한 정보가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화학물질 측정분석시스템으로 전송됐다. 그리고 모니터에는 구체적인 가스 누출 지점이 붉은색으로 표시되면서 누출 가스의 종류와 대기 중 농도 정보가 바로 분석됐다.

자연적 재난을 가정하여 다양한 첨단장비를 운용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연적 재난을 가정하여 다양한 첨단장비를 운용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이번 상황은 재난 상황을 가정해서 진행했던 훈련이다.

하지만 실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DSI는 재난의 발생에서부터 복구단계까지의 모든 과정을 분석한 정보를 프로파일로 구축하고, 유형별로 분류해 재난원인 조사에 활용하게 된다.

이렇게 축적된 재난원인 별 프로파일은 재난발생 현장에서의 초동대응에 활용된다. 또 유사한 재난의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방안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지난 2014년 출범한 DSI는 3D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피해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 임무에도 투입됐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2013년에 일어난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가 꼽힌다.

또한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발생한 경주 지진 및 포항 지진 등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드론 등을 이용해 재난원인을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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