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클라크의 소설 ‘낙원의 샘’은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에 관한 이야기다. 우주에 구조물을 만드는데 그 책임자(주인공)가 왜 항공우주공학자가 아니라 건축공학자냐에 대한 질투 묘사가 작품 초기에 잠깐 나온다. 어떤 큰 기회에 대한 인간 사회의 무의미한 주도권 다툼을 은근슬쩍 비판하는 작가의 예리한 능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항공우주는 그 분야의 탄생부터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은 사이좋은 한 단어로 묘사되는데, 조만간 항공과 우주가 서로 경쟁하는 분야가 나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압도적으로 우주 위성이 지배하는 상업용 통신 및 지상 관측 분야가 바로 그렇다.
최근, 세계 유수의 항공 관련 회사나 연구 기관들이 고공 장기 체공 항공기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항공 관련 연구 기관이나 대학에서도 뛰어난 연구개발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장기 체공 항공기의 형태는 여러 종류지만 구현 방법은 거의 똑같다. 낮에는 태양광 전기 에너지로 날면서 동시에 전력 저장을 하고 밤에는 배터리로 프로펠러를 가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짧게 태양광 항공기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수십 년 동안 잠잠하다가 여러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최근에 다시 얘기가 나오는 원자력 추진 항공기도 있다. 그런데 원자력 항공기의 경우, ‘내 머리 위로 원자로가 날아다닌다고?’라는 사회적 우려가 여전히 크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 장기 체공이라 할 때 원자력 추진 방식은 일단 빼자.
인공위성도 목적과 그에 따른 종류가 다양하지만, 통신과 지상 관측 둘로 좁혀서 보면 크게 정지궤도 위성과 저궤도 위성으로 나눌 수 있다. 정지 위성은 24시간 내내 지구 위의 특정 지점에 고정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상으로부터의 거리가 너무 멀다. 고도 36,000km이니 전파 신호의 왕복에 0.24초라는 시간 지연이 있다.
그리고 너무 멀어서 지상을 관찰하려면 그만큼 강력한 센서를 써야 한다. 저궤도 위성의 경우 통신 시간 지연은 0.01초 이하라 사람으로서는 잘 느낄 수 없지만, 저궤도 특성상 지구로 안 떨어지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 하루에 지구를 10바퀴 이상 도는 속도기 때문에 연속적인 통신이나 지상 관측을 위해서는 여러 대를 띄워서 공백이 없도록 해야 한다.
반면 장기 체공 항공기는 고도 30km 이하에서 선회 비행을 함으로써 좁은 지역에 대한 연속적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른 지역으로 비행해 갈 수 있다. 대부분 인공위성의 경우 궤도를 임의로 이리저리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이다.
장기 체공 항공기의 장점에도 아직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기술적 이유가 여럿 있다.
공기 중에 오랫동안 잘 떠있으려면 양력 성능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양력 효율이 높으면 돌풍에 취약하다. 공기력을 잘 이용하는 것은 공기력의 영향을 그만큼 받는다는 자연의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2003년, 나사의 시험용 태양광 무인기 추락도 돌풍(난류)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다 더 강하면서 가벼운 신소재의 개발과 아주 빠른 속도로 성능이 올라가고 있는 비행제어 기술이 결합하면 조만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장기 체공을 위한 핵심이자 가장 큰 장벽 중 하나였던 태양광 발전 효율과 재충전 배터리 에너지 밀도는 꾸준히 개선되어 에어버스의 경우 2018년에 26일 비행 기록을 세운 바도 있다. 태양광 항공기가 임무 장비를 달고 이륙해서 상공에 서너 달을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인공위성과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
현재 과학기술 수준과 발전 속도를 연장해서 보면 가까운 미래에는 서너 달이 아니라 몇 년을 떠 있을 수 있는 초장기 체공 항공기도 상상할 수 있다.
저궤도 인공위성의 수명 제한은 장비 고장이 아닌 연료 소진에 의한 경우가 흔한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주 궤도에서 인공위성에 도킹하여 연료를 재보급하는 기술이 시도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초장기 체공하는 항공기에 도킹하여 배터리나 고장 부품을 교체함으로써 체공 시간을 늘릴 수 있다.
항공기들의 수명은 보통 30~40년으로 얘기되는데, 미 공군 B-52 폭격기처럼 평균 수명 60년에 도달하는 사례도 있다. 한번 떠서 서너 해를 체공하다가 주요 정비를 위해 착륙하고 다시금 이륙하는 다소 단순한 비행 임무를 한다면 초장기 체공 항공기의 수명은 필요에 따라 100년을 넘길 수도 있다.
물론, 인공위성 역시 지금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할 것이다. 소설 ‘낙원의 샘’의 한 장면을 빌려 항공우주공학과 건축공학의 갈등을 말했고, 조만간 항공과 우주가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을 말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모두가 협업해야 실현 가능한 일들이다. 사람과 물자가 지구와 우주 사이를 오가기 위해서는 대기를 지나다니는 항공의 도움이 필요하고, 정밀한 위치 파악이나 안전한 비행을 위한 고고도 기상 예보에는 위성으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김상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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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9-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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