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자본주의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자본주의 4.0 시대에 한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저서 ‘자본주의 4.0’을 통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한 저널리스트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가 방한했다. 지난 7일 개최된 ‘제4회 기업가정신 주간’ 국제컨퍼런스의 기조강연자로 서기 위해서다.
영국 더타임스(The Times)의 경제분야 총괄에디터로 활동 중인 칼레츠키는 정확한 경제논평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자본주의 4.0시대 기업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주제를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 적합한 기업가정신에 대해 설명했다.
기업가정신 되살려야 경제위기 극복 가능
1800년경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J.B. Say)는 ‘기업가(entrepreneur)’라는 용어를 “생산성과 수익성이 낮은 곳으로부터 보다 높은 곳으로 경제적 자원을 이동시키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사회 생태계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기업 본래의 목표라는 의미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이윤 추구에만 골몰한 채 사회와의 동반성장을 거부해 금융위기를 심화시켰다. 최근 들어 세계 경제가 다시 침체기를 겪으면서 현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월스트리트 자본에 대항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으며, 양극화와 청년실업 등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이에 ‘기업가정신’에서 경제위기의 해법을 찾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경제체제를 넘어 새로운 자본주의 즉 ‘자본주의 4.0’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하는 아나톨 칼레츠키가 대표적이다.
칼레츠키는 지난 2008년 미국을 덮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예로 들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은 주택담보대출의 일종으로, 2000년 초 미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펼 때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차익을 노리던 주택 소유자들이 2004년 금리인상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대출회사의 연쇄부도가 일어났다.
2008년 9월에는 자산규모가 6천400억달러(우리돈 약 700조원)에 달하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까지 파산했다. 그러나 정부가 구제금융을 지급하지 않아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기업파산으로 기록됐으며 여파가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칼레츠키는 “이로 인해 자유경제의 효율성과 금융시장의 합리성에 의심이 커졌다”며 “단순히 기업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제시스템 전체가 무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글로벌 자본주의가 들어선다”는 것이 칼레츠키의 주장이다. 개인주의나 경쟁심리 등 인간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계속되며 상황에 맞게 진화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1.0부터 4.0까지 지속적으로 진화
자본주의는 1776년 미국이 ‘자본주의 국가’로서 독립선언을 하면서 1.0 버전이 시작되었고 이후 4단계를 거치며 진화해왔다. 1.0, 4.0 등의 숫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 되면서 버전이 높아지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1.0에서 1.1로 소수점 이하가 바뀌면 일부 사항이 변경된다는 뜻이고, 1.0에서 2.0으로 앞 숫자가 바뀌면 전체적인 틀 자체가 변했다는 의미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인해 대호황을 누렸던 미국과 영국은 자본주의 1.4시대인 1930년대에 대공황을 겪으면서 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영국이 금본위 경제체제를 포기하면서 자본주의 2.0의 시대가 열린다. 민간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 경제를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뉴딜정책도 이때 등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석유파동과 인플레이션이 강타하면서 이번에는 정부의 신뢰도가 추락한다.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자유시장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자본주의 3.0의 시대를 연다. 이후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기업의 행동범위를 넓히는 신자유주의가 경제패러다임을 지배했다.
그러던 지난 2008년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세계로 퍼지면서 시장 위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의구심이 싹텄고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른바 ‘자본주의 4.0 시대’가 열렸다.
기업과 사회의 상생 고민해야 할 때
자본주의 4.0의 시대에는 정부와 시장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정부가 시장경제를 관리하면서도 기업들의 이윤추구를 장려한다. 정부는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업들에게 자신의 역할을 떼어준다.
칼레츠키는 “유능한 정부 없이는 건전한 시장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분석과 “완벽한 정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표현을 동시에 사용했다. 정부가 시장에 적절하게 개입하면서도 실수의 가능성에 대비해 다양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나 시장 어느 쪽이든 ‘혼자서는 완벽해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자본주의 4.0 시대의 핵심이다. 기업과 사회의 상생을 강조하는 ‘기업가정신’에도 부합하는 주장이다.
칼레츠키는 한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본주의가 4.0 단계에 다다른 것처럼 한국도 농업개혁, 한강의 기적, 민주주의 완성 등을 거치면서 네 번째 사회단계를 맞이하고 있으며, 혁신을 이루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충만해 있고 올바른 기업가정신을 고민하는 논의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이 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중국은 민주화가 완성되지 않았고 일본은 경제·문화적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다고 우려하며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한편 우리나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자본주의 4.0시대에 걸맞은 교육을 위해 따뜻한 경쟁으로 모두가 즐거운 세상을 앞당긴다는 교육선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역거점대학을 육성하고 기초학력부진아 제로 프로젝트, 마이스터코, 특성화고 정착을 통한 선진 직업교육체계 구축 등 16개과제를 중점과제로 선정,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교과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중점을 두고 있는 교육기부와 연관해 생각해본다면 자본주의 4.0시대의 교육에는 특히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단계별로 1.0~2.0 시대에는 학교설립을 통해 대중교육에 기여했고 3.0시대에는 장학재단을 설립립해 빈곤층 학생들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4.0시대에는 기업이 교육콘텐츠를 공급하고 기업의 교육프로그램을 생산공급해 미래창의 인재를 양성하는데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도전적인 창업을 응원하고 기업과 사회의 상생‘기업가정신 주간’ 행사는 ‘꿈을 향한 도전! 함께 찾는 기회!’이라는 주제 아래 12일(토)까지 청소년 경제캠프, 청년창업 지원강연회, 지속가능경영 컨퍼런스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 저작권자 2011-11-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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