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운명을 디자인 하는, 첨단바이오 기술

[NST 꿰어야 보배] 42탄 : 첨단바이오 기술

‘만에 하나’. 우리는 일상에서 드물게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할 때 ‘만에 하나’ 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어떠한 일이 1만 번 중에 한 번 일어날 정도라면 상당히 낮은 확률이죠. 아마 내기를 한다면 0.01%의 확률에 걸기보단 99.99%의 확률에 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분의 일이라는 낮은 확률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이죠.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의 최종 성공률은 0.01%, 만분의 일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낮은 확률임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신약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건강을,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바이오 기술은 국민의 생명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대외협상력 그리고 경제회복력까지 직결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도 첨단바이오 기술을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로 지정하여 집중 육성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확률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이번 꿰어야보배 4월호에서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출연연의 첨단바이오 연구성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합성생물학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합성생물학은 현재까지 알려진 생명정보와 구성요소를 바탕으로 기존 생명체를 모방하여 변형하거나,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물의 구성요소와 시스템을 인공적으로 설계하는 학문입니다. 합성생물학을 이용한다면 약물 분비등의 의약품 기능을 하는 장내 미생물, 인공 육류를 생산하는 식물 등 기존 존재하는 생물에 유용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게 됩니다. 실험으로 후보물질을 찾는 방식에 비해 연구개발 속도는 높이고 비용은 크게 낮출 수 있게 되어 차세대 바이오산업의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는 분야입니다. 합성생물학을 구현하는 수단인 바이오 파운드리는 AI 기반의 유전체 디자인, DNA의 대량 합성, 자동 조립, 인공 세포 구축 및 테스트까지의 과정을 인공지능의 분석과 재학습을 통해 정확성과 속도를 높이는 생물학 실험 자동화 플랫폼입니다. 이를 이용해 최적화된 제품을 고효율로 생산해낼 수 있죠. 바이오 연구의 난제인 속도, 규모, 불확실성의 한계를 극복하여, 바이오 분야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내고 있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 김하성 박사팀 또한 AI와 인공미생물을 결합하여 유해물질을 식별하는 신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유해 방향족 물질은 산업폐기물, 잔류농약 등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며 인체 및 동물 내에서 여러 부작용의 원인이 됩니다. 미생물에는 이러한 유해물질을 감지하는 다양한 유전자들이 분포하여 이를 조합한 새로운 유전자 회로를 이용한 바이오센서가 합성생물학의 한 분야로 연구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바이오센서는 낮은 특이성과 환경 의존적인 변동성의 한계로 인하여 실용화까지의 어려움이 있었죠.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인공적인 단백질 변이 유발을 통해 다양한 신호를 모은 빅데이터를 생성하여 인공지능 모형을 도입하였습니다. 연구팀의 인공지능 모형은 11개의 유해물을 최대 95.3%의 정확도로 식별하게 하였으며, 단일 바이오센서 사용 시 40% 이하의 정확도를 보인 것에 비해 현저한 향상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바이오기술은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하여, 보다 빠르고 정확한 바이오 산업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바이오 파운드리 구축과 뛰어난 연구들이 국내 합성생물학의 마중물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AI 기반 미생물 바이오센서 집합체 개념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지난 수 천년 간 민족의 건강을 지켜온 한약은 현재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며 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그 중심에서 한의 기반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끊임없는 도전을 일궈가고 있죠.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정환석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지난해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한의기반 면역항암제 후보물질인 ‘KIOM-ICI-1’의 임상2상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한약 기반 소재에서 항체 치료가 아닌 면역 관문을 차단하는 효능의 항암제로서의 임상시험이 승인된 첫 사례인데요. 면역항암제는 수술과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의 1세대 항암제와 2세대 항암제인 표적치료에 이어 차세대 항암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면역세포는 면역 관문이라 불리는 단백질을 세포막에 가지고 있어, 자가면역반응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정상 세포 단백질은 면역세포에 존재하는 면역 관문 단백질과 결합하여 면역세포를 비활성화시킵니다. 암세포는 이 기전을 이용하여 면역세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게 되는데요. 정상 세포의 단백질을 과발현하여 공격해오는 면역세포를 속이고, 면역세포는 암세포를 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이에 따라 면역 관문 단백질과 암세포 리간드의 결합을 방해하여 암세포 살해 기능을 유지하는 약물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의 KIOM-ICI-1 또한 암세포의 면역체계 회피 기전인 면역 관문을 차단하여 면역세포의 활성을 향상시키고 종양의 크기를 50% 이상 억제하는 항암제 후보물질입니다. 정환석 박사 연구팀은 이어서 오이풀 뿌리 ‘지유’에서 한의 기반 면역 관문 차단제 후보물질을 추가 발굴하였는데요. 기존 복분자에서 발굴한 ‘KIOM-ICI-1’에 이어, 추가 발굴된 지유 추출물은 60% 이상의 암세포 사멸 효과를 보였습니다.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한약재를 바탕으로 만성, 난치성 질환 극복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한의연의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의기반 면역항암제 후보물질을 개발한 한국한의학연구원 연구진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손종찬 책임연구원 연구진이 발굴한 에이즈 치료제 신약 후보물질 ‘KM-023’이 지난 20216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으로부터 신약으로 시판 허가를 받았습니다. 화학연 개발 신약 가운데 상용화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신약 후보물질은 2012년 국내 신약개발 기업 카이노스메드에 기술이전 되어 국내에서 임상 1상을 마치고, 2014년 에이즈 환자 증가율이 높은 중국 내 상용화를 위해 중국 제약사 ‘장수아이디’에 신약 후보물질의 중국 판권을 이전하였습니다. 이후 2016KM-023은 중국 내에서 우선 심사대상으로 지정돼 빠른 속도로 임상 1~3상을 거쳐 신약판매 최종 허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항 HIV 약제는 전 세계적으로 약 25가지 이상의 종류가 있습니다. 약제는 크게 핵산 역전사효소 억제제, 비핵산 역전사효소 억제제, 단백분해효소 억제제, 인터그레이즈 억제제, 침입 억제제, 부착 후 억제제의 6종류로 분류됩니다. 기본 개념은 HIV가 증식하는데 필요한 물질인 역전사효소, 단백분해효소 등을 억제하여 증식을 막는 것이죠. 하지만 항 HIV 약제는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할 뿐, 몸 안의 바이러스를 전부 사라지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약을 중단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바이러스가 증가하게 되므로, 만성질환과 같은 에이즈는 평생 약을 복용하면서 관리를 해야 하는데요. 에이즈 치료제에는 크고 작은 부작용이 뒤따르게 되어 기존의 약보다 높은 효율인 Best-in-class 약제의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KM-023은 새로운 비핵산계열 역전사효소 저해제(NNRTI)로 기존 NNRTI 약제인 Sustiva의 대체제로 개발되었습니다. Sustiva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NNRTI 계열 중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제품이지만 중추신경계와 최기형성과 같은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었죠. KM-023은 약동력학 시험결과 Sustiva 보다 훨씬 낮은 투여량에도 동등한 효과를 보여, 환자의 약물 투여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안전성 시험결과 여러 중추신경계질환(CNS) 관련 부작용 또한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도 일부 국가에서 에이즈 환자는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감염자 또한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만큼 KRICT의 신약 후보물질 개발 성공 소식이 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한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 ⓒ한국화학연구원

지금까지 첨단바이오산업의 최전선에서 끊임없이 노력 중인 출연연의 성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사석성호.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성심을 다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2020년 기술수준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첨단바이오산업은 최고 기술국 대비 77% 정도의 수준으로 추격자의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감염병에 대한 국민 인식, 정부와 기업의 관심 및 투자 증가로 기술 개발의 톱니바퀴가 힘차게 돌아감에 따라 기술격차 또한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죠. 씨앗이 나무가 되어 첨단바이오산업이 대한민국 미래 발전의 혁신 동력이 될 수 있는 그 날까지, 출연연은 대한민국의 바이오 허브 역할로서 함께할 것입니다.

 

* 이 글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서 발간하는 ‘꿰어야 보배’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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