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변호사, 경쟁자 아닌 동반자로”

[인터뷰]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

어느 사회에서나 법(法)을 다루고 집행하는 일은 엘리트들의 몫이다. 사회의 관습과 문화, 이념과 가치를 모두 이해하면서도 정의에 맞게 집행해야 하는 복잡하고도 숭고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법의 영역에서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압도적인 분석 능력을 지닌 AI(인공지능)가 슬그머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지난 2019년 8월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제1회 법률인공지능 알파로(Alpha Law) 경진대회’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잘 나타낸 자리였다.

AI 변호사와 인간 변호사 그리고 일반인이 제각기 짝을 지어 참가한 대회에서 ‘인간 변호사-AI 변호사’ 콤비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 역시 AI 변호사의 도움으로 3위를 기록하는 등 AI 변호사는 그 능력을 여실히 증명했다는 평이다.

그렇다면 이제 변호사, 판사와 같은 법조인 역시 AI가 대체하는 세상이 오는 것일까.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는 이런 질문에 가장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리걸 테크(Legal tech) 기업인 인텔리콘연구소는 알파로 경진대회에 참가한 AI 변호사 ‘CIA(Contract Intelligent Analyzer)’를 개발한 곳이다. 오랫동안 법률 AI 연구를 진행해 온 임 대표에게 법률 AI의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는 법과 AI의 융합을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있다. 원래 생물학도였던 그는 미국서 뇌과학을 공부하다가 AI의 길로 접어든 특이한 케이스다. ⓒ 인텔리콘연구소

“문서 독해 끝판왕 AI…실전서도 유용”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어렵다. 인텔리콘연구소 역시 힘든 한 해를 보냈다”며 근황을 전한 임 대표는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는 상투적인 말이 진리”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비대면 시대가 열리면서 인텔리콘연구소가 개발한 AI 시스템에 대해 관심도가 급증했기 때문.

임 대표가 오래전부터 개발하고 있는 법률 AI는 말 그대로 법률과 AI를 융합한 기술이다. AI가 탄생한 1956년도부터 이미 연구가 시작됐을 정도로 역사가 깊지만, 산업으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다. 임 대표는 이런 ‘리걸테크’에 대해 “변호사 업무를 도와주는 자동화 시스템부터 AI 변호사, AI 판사 등을 구현하는 기술이 모두 응용된다”라고 간단히 설명하며 최근 알파로 경진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둔 CIA를 그 한 예로 제시했다.

“CIA는 한 마디로 ‘문서 독해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계약서의 위험 조항을 자동으로 분석하고, 누락 조항을 빠르게 찾아주기 때문에 실전에서 특히 유용하죠. 이미 미국이나 유럽은 이러한 계약서 분석 AI를 개발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으며, 거액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뇌과학 공부하다 인공신경망에 매료…법률 AI 개발 나서

이런 법률 AI의 활용은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더욱 각광받을 전망이다. 원래 생물학도였던 임 대표는 미국서 뇌과학을 공부하다가 AI의 길로 접어든 특이한 케이스다.

“사실 AI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 뇌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경험한 인공신경망이 제겐 큰 충격이었어요. 이후 AI의 유용함에 눈을 뜨게 된 거죠.”

압도적인 분석 능력을 지닌 AI가 슬그머니 법의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법률 AI의 핵심은 인간처럼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 인텔리콘연구소

이후 법률 AI 개발을 위해 200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준비 과정을 거친 임 대표의 꿈은 2013년도부터 본격적으로 구체화됐다. 당시 수학, 물리학, 컴퓨터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를 시작한 임 대표는 법률이라는 고도의 전문지식에 AI를 접목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해 나갔다.

“AI와 법률은 전문적인 분야이므로 두 가지 모두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연구소 초창기 시절부터 이 두 분야를 융합하는 법률정보학(legal informatics), 전산법률학(computational law)이라는 이론을 정착시켰고, 최근에는 융합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인텔리콘연구소의 법률 AI는 빠르게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임 대표는 “법률 추론 시스템 ‘아이리스-7(i-Lis-7)’이 세계 법률 AI 경진대회에서 2년 연속(2016,2017년) 우승하기도 했다”라며 “우리 기술도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한 쾌거”라고 전했다.

“자연어 처리가 핵심… 검색하듯 법령 추천도 가능”

아이리스-7, CIA 등 그 성능을 인정받은 법률 AI의 핵심 기술은 무엇일까. 임 대표에 따르면 “인간처럼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보통 ‘자연어 처리’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자연어)를 기계가 처리한다는 개념이죠.”

이런 자연어 처리가 중요한 이유는 법률 AI가 대부분 검색이나 법률문서를 분석하는 기술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자연어 처리 다음 단계로 특정 사건을 규율하는 법률이나 판례를 매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온라인 검색창에 일상적인 용어로 된 질문을 입력하면 검색 결과가 나오듯, 그러한 질문을 법적으로 이해하고 추론해 관련 법령을 추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텔리콘연구소는 현재 법률QA 플랫폼인 ‘법률메카’, 법령을 조항 단위까지 자동 추천해 주는 AI 검색기 ‘유렉스(U-LEX)’ 등 다양한 법률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 변호사 대체는 먼 미래 일”

그렇다면 이렇게 발전하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임 대표는 이에 대해 확실히 선을 그었다. “AI가 인간 변호사를 대체하는 상황은 불가능하거나, 먼 미래의 일”이라는 주장. 그는 반대로 인간과 AI가 상호 보완을 통해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임 대표는 AI가 인간 변호사를 대체하는 상황에 대해 “불가능하거나, 먼 미래의 일”이라고 답했다. 인간과 AI가 상호 보완을 통해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견해다. ⓒ gettyimagesbank

“컴퓨터가 자료를 검색하거나 분석하는 작업에서 인간을 뛰어넘는다면, 인간은 다양한 지능의 상호 작용을 바탕으로 한 종합적 추론 능력에서 앞섭니다. 결국 법률 AI는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는 시스템으로서 자리매김한다는 거죠.”

실제 알파로 대회 참가자들은 CIA의 빠른 검색 및 분석 능력에 큰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회 후 현장 시연 자리에서 CIA가 계약서를 분석하는 데 걸린 시간은 7초에 불과했다.

“AI 통한 법률 서비스로 공익 추구”

한편 법률 AI는 공익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변호사 같은 법률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기계의 도움을 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공기관이나 정부에서 제공하는 대국민 법률 서비스에 AI를 결합한다면 어떨까요? 아주 단순한 AI만을 적용하더라도 시민들에게는 더 도움이 되겠죠.”

임 대표에 따르면, 이미 완성된 다양한 실전 시스템을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단계라고 한다. 그는 “앞서 말한 ‘공익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와 함께 법률 AI의 일본 수출 등 향후 여러 계획이 있다”라며 중장기적으로는 AI를 활용한 에듀테크, 신약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어구 중 하나가 ‘모험이 없으면 큰 발전도 없다’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말입니다. 법률과 AI의 결합은 물론, 향후 AI와 다른 분야의 융합을 시도하며 혁신적인 교육 콘텐츠와 시스템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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