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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7

인간, 유전자의 노예인가 문화의 거울인가- 사회생물학史의 비판적 고찰 이상원 포항공대 과학문화연구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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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은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하나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계급, 인종, 성(性) 간의 지위, 부, 권력에서의 불평등은 자연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생물학적 특성 탓이 된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역사적으로 상이한 여러 형태로서 계속 출현해왔다. 17세기에 토머스 홉스는 인간의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보았는데, 인간은 선천적으로 공격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생물학적 결정론의 또 다른 한 형태인 소위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가 출현했다.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사회 다윈주의자들은 진화에 대한 다윈의 견해는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적자생존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관념은 인간 세계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열렬히 지지되었다. 역시 19세기 영국의 프랜시스 골튼은 인간우생학을 옹호했다. 그는 천재는 유전된다고 보았다. 그밖에도 이탈리아인 체자레 롬브로소는 범죄유형학을 제창했는데, 골상학은 그것의 기초가 되었다. 골상학이란 인간의 골격 형태, 특히 두개골을 보고 그 사람의 사회적 행동과 지위를 점치는 사이비과학이었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형태의 생물학적 결정론이 나타난다. IQ 옹호론, 가부장제 옹호론, 정신분열증의 유전학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IQ는 뇌 용량에 의해 결정되고 뇌 용량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남성과 여성간의 능력 차이는 생물학적 특성의 차이, 특히 뇌 구조, 생식기 구조, 호르몬 분비의 차이에 기인한다. 정신분열증은 유전된다.


소위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은 1975년에 나타났다. 에드워드 윌슨은 이 해 미국에서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을 냈다. 그 이듬해인 1976년 리처드 도킨스는 영국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출판했다. 그들은 인간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생물학은 인간까지 포함한 사회적 동물의 ‘행동’을 ‘유전자’와 연결시킨 현대적 형태의 생물학적 결정론이다.


사회생물학_은 출판되자마자 영국과 미국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인간의 모든 행동, 즉, 사회현상과 사회적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현재의 사회적 배치와 인간의 현재 상태는 자연에 의해 고정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가공할 이데올로기적 저의를 담는 것이었다. 만약 사회적 현상이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행동의 단순한 합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현 상태는 단순히 자연적인 사실이 되어버린다. 즉, 이러한 시각 안에서 현재의 인간세계의 계급제도, 인종주의, 가부장제, 엘리트주의 등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사회생물학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과학성’을 들고 나온 데 있다. 그런데 사회생물학을 포함한 생물학적 결정론은 과학인가? 그렇지는 않다. 첫째, 환원의 문제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강력한 환원론이다. 사회생물학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개인의 행동의 합에 다름아니라고 보며, 각 인간의 행동을 단지 생물학적인 것으로 완전히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그러한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둘째, 자료의 조작, 즉 과학적 사기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시릴 버트는 IQ 유전성을 연구하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를 조사했다고 주장했으나, 1970년대 초반에 레온 카민에 의해 그의 자료가 전적으로 사기임이 밝혀졌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은 객관적이고 공평무사한 과학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 특히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사회적 불평등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인간의 상태를 개선, 변경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무의미하게 된다. 예를 들면 교육과 같은, 그 어떤 인위적 시도도 효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대단히 위험한 시각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나치는 거짓된 생물학적 기초 위에서 유태인에 대한 단종법안을 제정한 바 있다.


생물학적 결정론과 정반대로 환경과 문화의 무제한적, 항구적 변경에 의해 우리의 본성이 그에 따라 결정론적으로 바뀌리라는 ‘문화결정론(cultural determinism)’또한 순진하다고 볼 수 있다. 1984년 리처드 르원틴, 레온 카민, 스티븐 로우즈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결정적으로 논박하는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를냈다. 이 책에서 그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이데올로기적 저의와 사이비과학성이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르원틴, 카민, 로우즈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문화결정론도 비판한다. 인간이 문화와 환경의 변화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입장 역시 정당화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윌슨의 「사회생물학Ⅰ, Ⅱ」(민음사, 1992)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1993)는 이미 우리말로 옮겨졌다. 사회생물학을 포함한 생물학적 결정론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한울,1993)도 번역되었다. 또한 IQ 유전성 연구의 비과학성과 정치성을 폭로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역작「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2003)도 옮겨졌다. ‘생물학적 결정론과 사회적 함의 : 유전자 안에 있는가 없는가’라는 주제의 한국과학사학회와 대한의사학(醫史學)회 합동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생물학적 결정론 옹호, 비판 논문들이「인간은 유전자로 결정되는가」(명경, 1995)라는 책으로 편집되어 출간되었다.


최근 생물학적 결정론 옹호 입장에 선「빈 서판」(사이언스북스, 2004)이 번역되었다. 이 책의 저자 스티븐 핑커는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의 저자들을 문화결정론자라고 매도하는 데, 정작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의 저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생물학적 결정론과 문화결정론 양자 모두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상태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 존재이며 동시에 문화(환경)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 놓인 존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의 노예인 것도 아니며 문화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도 아니다.

저작권자 2004-08-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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