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왜 무덤을 도굴했을까?

과학서평 / 20가지 의학이야기

어떤 의사가 있었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과 인간의 질병을 연구해서 치료하고 싶다는 열망이 지나치게 높았다. 인체 해부가 법적으로 정착되기 전, 그는 아버지와 누이가 죽으면, 오전에는 그 몸에 칼을 대서 온 몸을 해부하고는 오후에 매장을 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생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인이었다.

어느 분야나 선구자들은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면서 의심을 받아왔다. 오늘날 인간의 몸에 칼을 대는 해부나 수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인권보호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해부 연구에 필요한 시신을 얻기가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시신을 해부해야 하겠다는 의사와 의대생의 열망을 막기는 버거웠다.

20가지 의학이야기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뛰어넘기 위해 의사들은 자구책을 마련했다. 전문 도굴꾼을 고용하거나 시신 장물아비가 되어서 묻힌 지 얼마 안 된 무덤에 올라가 곡괭이질을 해 댔다. 돈이 없으면 직접 곡괭이를 메고 아침 이슬을 맞기도 했다. 만만한 학생들에게 ‘실습교재’를 구해오도록 하거나, 실습교재의 대가로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해부용 시신으로 팔아넘기려 연쇄살인 

그러다가 국가적으로 무슨 제도를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드디어 터졌다. 1828년 에든버러에서 여관 주인이 투숙객을 살해해서 시신을 의사에게 팔아넘긴 웨스트포트 연쇄사건이다. 연쇄살인범인 윌리엄 버크(William Burke)는 사형을 선고받고, 그 시신은 해부형을 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버크의 골격은 지금도 에든버러 의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역사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 중 ‘해부학 역사’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살을 찢고 뼈를 자르고 꿰매는 수술이나 각종 질병 진단의 근원이 되는 해부학이 어떤 경로를 거쳐 발전했는지를 가르쳐준다.

이 책을 쓴 박지욱은 현직 의사로서 부산에서 태어나 동아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박지욱신경과의원 원장, 제주장애인요양원 촉탁의사로 일하고 있다. 한미수필문학상(2006, 2007년)을 수상하고 다양한 신문잡지에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다.

연쇄살인사건 발생 30년이 지난 1858년, 외과의사 겸 해부학자인 헨리 그레이(Henry Gray 1827~1861)가 쓰고 동료의사인 카터(Henry Carter 1831~1897)가 그린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 (Gray’s Anatomy)는 지금도 의대생들이 사용하는 책이다.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가 죽기만 기다려, 질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시신에 손을 대려는 의사들의 집념은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게 한다.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는 자신이 관심을 갖던 250cm의 거인이 병으로 알아 눕자, 호시탐탐 시신을 노렸다. 이 음습한 열망을 알아차린 거인은 남은 재산을 털어 친구에게 “내가 죽으면 의사들이 손을 못 대도록 납관에 넣어 편히 잠들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헌터는 장의사를 매수해서 기어코 골격 표본을 만들었다.

존 할로(John Harlow 1819~1907)는 이마에 관통상을 입고 살아남은 한 청년의 뇌를 얻기 위해 죽은 지 5년 지난 묘지를 발굴해 두개골을 꺼냈다.

이런 무시무시한 전통(!)이 살아있으니 아인슈타인이 죽자 프린스턴 대학병원의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Thomas Harvey 1912~2007)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꺼내 여러 조각으로 잘라 병리학자들에게 나눠줬어도 무슨 비난을 받았다는 소식은 여지껏 들려오지 않는다.

물론 이런 으스스한 이야기는 의학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결핵을 퇴치해서 인류를 공포에서 해방시킨 감동적인 스토리의 전후맥락도 소개됐다.

환자들의 부당한 거래 얄타회담 

결핵은 고대 이집트 미라에도 앓았다는 증거가 남아있으니 적어도 4000년 이상 된 질병이지만, 치료법이 발견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결핵은 동서양의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 속에서 죽게 했다. 유전병이라고 알려지기도 하고,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죽어가다 보니 고통을 미화하는 헛된 상상력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독일 미생물학자 겸 의사인 코흐(Robert Koch 1843~1910)가 결핵균을 발견했지만, 치료법은 한참 지난 1921년 알베르 칼메트(Albert Calmette 1863~1933)가 찾아냈다. 프랑스 릴(Lille) 파스퇴르 연구소에 부임한 세균학자인 칼메트는 시민 22만 명 중 무려 15%가 결핵환자인 비참한 상황에 가슴이 아파서 1차대전의 그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수의사 까미유 게랭(Camille Guerin 1872~1961)의 도움을 받아 결핵을 예방하는 ‘칼메트-게랭의 소결핵균’, 줄여서 BCG 접종을 발견했다.

예방접종이 통하지 않는 결핵균을 처리하는 치료제로는 1944년 스트렙토마이신이 사용됐고, 이 약이 듣지 않은 환자에게는 파스에 이어 이소니아지드, 리팜핀, 피라지나마이드, 에탐부톨 등이 잇따라 나와서 거의 치료되고 있다.

다른 18가지이야기는 병원에 십자가를 달게 된 배경, 이발소의 삼색등과 외과의사, 고혈압이야기, 소아마비 정복기 등이다.

그 중 한 이야기, ‘얄타회담의 숨은 배후’는 한반도의 남북 분단을 결정한 얄타회담에 참가했던 세 명의 지도자, 루스벨트·처칠·스탈린에 관한 내용이다. 세 사람은 회담 당시 건강이 모두 좋지 않았다. 후에 세 명은 모두 뇌질환으로 사망했다. ‘강대국간의 부당거래’였던 얄타회담의 배후는 질병이었다고 저자인 박지욱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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