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처럼 휘어지거나 마음대로 둘둘 말 수 있는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나 웨어러블(wearable) 전자소자. 여기에는 유기태양전지(OPV)가 널리 사용된다. 유기태양전지는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롤투롤(Roll-to-Roll) 공정을 이용해 제작하면 대면적 구현도 가능하다. 때문에 앞으로 전망이 밝은 연성전자 분야에 필수로 적용돼야 하는 소재로 언급되곤 한다.
이처럼 유연성이 높은 유기태양전지를 제조하려면 먼저 전기전도성이 높으면서 동시에 투명하고 유연성을 갖는 투명전극을 개발해야 한다. 투명전극 물질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인듐주석산화물(ITO, Indium Tin Oxide) 이다. 이는 높은 전기전도도와 우수한 화학적 안정성 및 높은 광투과율 등의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원료 물질인 인듐의 희소성으로 인해 가격이 높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취성(brittle)이 높아 구부릴 때 부스러지기 쉬워 플라스틱 기판이나 유기 필름 위에 제조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되곤 했다.
유기태양전지 전극소재 은으로 대체…원가절감
국내 연구진이 휘어지는 유기태양전지 소재를 고가의 인듐소재가 아닌, 은나노선을 대량 합성해 저가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오영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광전소재연구단 박사팀이 은나노선을 이용해 롤처럼 휘어지고 면적이 큰 물질을 개발, 유기태양전지에 적용해 생산 단가를 대폭 낮췄다.
오영제 박사팀은 그동안 가격이 비싸 사용이 제한된 은나노선을 저가 양산화 기술로 자체 개발해 한국과 미국에 특허로 등록했다. 이를 이용, 현재 널리 상용되고 있는 인듐주석산화물(ITO) 투명전극을 대체할 수 있는 은나노선 기반의 유기태양전지의 향상된 성능을 검증, 광변환 효율이 향상되는 원리를 규명했다.
“저희 연구팀은 기존 유기태양전지 전극소재가 갖고 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은나노선 물질을 합성해 투명전극으로 제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조된 은나노선은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ITO와 비슷한 전기적, 광학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ITO 대체가 가능하게 된 것이죠. 또한 투명전극을 대면적으로 제작할 경우 고가인 진공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값싼 용액공정을 이용했으므로 제조 단가를 저렴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은(Ag)은 본질적으로 우수한 유연성을 갖고 있어요. 때문에 스스로 유연성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기에 차세대 유연투명전극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오영제 박사팀은 은을 변형해 태양전지에 사용했다. 은나노선이 포함된 용액을 플라스틱 기판에 코팅하는 방식을 이용, 저렴한 용액 공정을 활용해 롤투롤(Roll-To-Roll) 방식의 대면적 투명전극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은나노선은 투명전극의 생산 단가를 크게 낮춰 가격경쟁력을 갖게 했습니다. 때문에 이를 이용해 투명전극으로 ITO와 은나노선을 각각 사용하고 나머지 구성 물질은 모두 같게 해 유기태양전지로 제작했어요. 그 결과 은나노선의 투명전극을 사용한 유기태양전지 샘플의 광전변환효율이 30% 이상 크게 증진돼 ITO 대체에 큰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변환 효율이 이렇듯 크게 상승된 원인을 학술적으로도 규명해 은나노선 대체의 타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었죠.”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기존의 기술과 달리 오영제 박사팀의 기술은 금속 나노입자들을 추가적으로 코팅 하지 않고서도 높은 광전변환효율을 얻을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인듐(ITO)을 사용한 기존의 유기태양전지는 제조시 광전변환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금속 나노입자들을 추가적으로 코팅해 태양전지 내 구성된 광활성층에서의 빛 흡수효과를 높여 유기태양전지의 광전변환효율을 높였다. 그러나 본 연구 결과는 투명전극으로 사용된 은나노선이 우수한 전기적, 광학적 특성을 나타냈다. 동시에 은이 금속이기 때문에 빛 산란(scattering) 및 빛 가둠(light trapping) 효과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음을 제시할 수 있었다.
“개발한 기술은 대면적으로 제작이 가능하고 저가인데다 유연성이 높아 휘어지는 태양전지 에 적합합니다. 뿐만 아니라 은나노선 투명전극의 낮은 표면 거칠기와 우수한 전기적, 광학적 특성으로 인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터치스크린 판넬 및 OLED 등 많은 유연한 전자소자에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어 인듐주석산화물을 대체할 투명전극 사업화에 적합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 기존에도 인듐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는 대다수 진행된 바 있다. 고가의 인듐 소재를 대체 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의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이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금속 그리드(metal grids), CNT(carbon nano tube), 그래핀(graphene) 및 전도성 고분자 등의 새로운 소재 연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금속 그리드의 경우 매우 우수한 전기적 특성을 나타내지만 표면거칠기가 높을 뿐 아니라 투광도 등에 있어 소자 제조에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CNT 또는 전도성고분자의 경우 투명전극으로 사용하는 게 부적합해요. 해당 소재들은 전극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낮은 면저항 특성을 나타냅니다. 때문에 디바이스 구성에 필요한 낮은 면저항 특성을 얻기 위해서는 막의 두께가 두꺼워져야 하죠. 그러나 막이 두꺼울수록 투광도는 떨어지게 돼 있어요. 즉, 높은 투광도를 요구하는 투명전극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죠.”
그래핀의 경우 수 나노미터(nm) 크기에 0.2 나노미터(nm) 정도의 두께를 갖기 때문에 잉크 제조 시 분산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해 투명전극 막으로 형성할 경우에도 대면적화를 이루는 게 만만치 않다. 더욱이 그래핀산화물(GO)을 그래핀으로 환원시켜 사용할 경우 오랜 시간의 환원과정을 거쳐야 투명전도막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오랜 시간 동안 환원 시킨 그래핀이라 하더라도 투광도는 높지만 그 면저항 값은 ITO에 비해 아직도 300%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어 사용에 부적합하다.
즉, 오영제 교수팀의 해당 연구는 은나노선의 저가 양산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원료로 해 대면적화 시켰으므로 면저항과 투광도 및 유연성을 동시에 필요한 조건으로 해결한 점이 차별점으로 언급되는 것이다.
은나노선 가격, 저렴한 용액법으로 단가 낮춰
해당 연구결과가 나왔을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 부분이 있다. 바로 은나노선의 가격을 어떻게 저렴하게 만들었을까에 대한 것이다. 오영제 교수에 따르면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은나노선의 국내 판매가는 초창기에 비해 1/4정도 이상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비싼 편이다. 이러한 이유는 균질한 품질을 갖도록 양산하는 게 쉽지 않고 선발 외국 업체의 특허장벽이 높을 뿐 아니라 제한적으로 독점 판매 되기 때문이다.
“저희 연구팀에서는 저렴한 용액법을 통해 대량생산이 용이한 은나노선 제조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한국 및 미국에 특허 등록 함으로써 은나노선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기에 은나노선이 갖는 장점을 제품에 충분히 활용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오영제 박사팀이 구현한, 은나노선을 저렴하게 생산하는 용액법은 은나노선의 직경 및 길이 조절을 가능케 한다. 기존에 사용된 방법으로 전기화학적 방법, 화학증착법, 용액법(수용액 중에서), 수열합성법 등이 알려져 있지만 해당 방법들은 각각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전기화학적 방법 및 화학증착법은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으며 합성 부생성물의 제거공정이 추가로 요구됐다. 이에 반해 용액법은 그 방법 자체가 공정이 간편했다. 이처럼 개발된 연구는 당장 상용화 진입이 가능할 정도로 연구의 완성도가 매우 높은 상태다.
“지금 우리나라는 디스플레이 등을 포함한 여러 전자산업 군에서 세계 선두입니다. 하지만 디바이스 제조에 있어 필요한 투명전극 만큼은 지금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요. 바로 이 점이 제가 연구를 진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ITO를 대체할 산화물계 소재를 연구하던 중 근래 융·복합 연구의 추세에 맞게 역으로 발상의 전환을 갖게 됐어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잖아요. 투명전극의 국산화로 기존의 독점적인 기술 우위를 보여 왔던 선진국을 앞서 나가, 소재부품의 대일 역조 개선은 물론 세계적 선도기술로 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바람으로 시작한 연구지만 과정 중에는 여러 크고 작은 어려움이 존재했다. 무엇보다 탁도와 표면거칠기를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투명전극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탁도(Haze)를 낮추고 표면거칠기를 낮춰야 합니다. 이는 은나노선을 코팅함으로써 생길 수 밖에 없는 문제점이었죠. 이러한 문제들은 은나노선의 두께 및 길이를 조절해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표면거칠기는 버퍼층 및 오버 코팅(over coating) 층을 이용해 해결 할 수 있었죠.”
연구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오영제 박사는 “모든 해답은 자연에 있다”고 대답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인 만큼 기존의 관념에서 탈출 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악보에서 쉼표는 노래하지 않지만 이것도 음악의 일부이듯, 앞으로만 빨리 달리려 하지 말고 쉬어 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해당 연구결과로 개발된 대면적 투명전극이 향수 2~3년 내에 유연성을 갖는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및 태양전지 등 전자장치에 적용된다면 큰 파급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오영제 박사는 “분명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은나노선 활용 측면에서 보면 투명전극 소재로 사용되는 은 나노선의 양산기술이 이미 확보됐고 또 이를 이용한 용액공정용 은나노선 잉크가 준비가 돼 있지만 투명전극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소자별 입증화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기태양전지 및 터치스크린판넬 투명전극 용으로 연구실 장비 및 롤투롤을 이용한 프로토타입은 이미 완성 된 상태입니다. 다만 여기서 면발광, LED, 스마트 윈도우, 발열 창호, 자동차 발열유리, 태양전지, 스마트 나노센서, 디스플레이 소자화 등을 실증한다면 완성도는 배가 될 것입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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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2-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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