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예인 아빠들의 다정한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다. 가수 이적은 37일 된 딸을 위해 자장가를 부르는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다. 아기 이름이 세인이라서 곡명이 ‘세인송’이란다.
작곡가이자 방송인인 주영훈은 딸을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미니홈피에 올렸고, 가수 김진표와 윤도현, 타블로도 트위터 등을 통해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육아에 푹 빠진 아빠의 모습은 많은 팬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남성들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줄 법도 하다. 한편으로는 짐승남이니 초콜릿 복근이니 하면서 남성미를 부추기는 열풍이 부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바라는 듯하니 말이다. 남성이야말로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가 괜히 나온 게 아닌 모양이다.
아빠의 자식 사랑
포유류는 동물 중에서 유달리 엄마 홀로 자식을 돌보는 축에 속한다. 시튼 동물기에 자주 나오는 늑대처럼 새끼와 어미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주는 아빠도 있긴 하지만, 아빠가 새끼를 돌보는 포유류 종은 5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포유류 중에서 우리가 속한 영장류는 좀 다르다. 원시적인 부류를 제외하고, 영장류는 대부분 크고 작은 가족이나 무리를 이루어 산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영장류 아빠는 상대적으로 육아에 기여하는 비율이 높다.
물론 영장류가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아빠 역할을 충실히 하는 동물은 많다. 엄마가 알을 낳은 뒤 먹이를 찾아 멀리 해안을 향해 떠나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알을 품은 채 2개월을 버티는 아빠 황제펭귄이나, 새끼가 알에서 나올 때까지 바위에 붙은 알들을 지극정성으로 홀로 돌보는 큰가시고기 아빠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표적인 사례다.
새들은 대개 부부가 함께 새끼를 돌보며, 물고기 중에는 수컷이 홀로 알이나 새끼를 돌보는 사례가 많다. 사람은 어느 쪽에 들까?
주위에서 늘 볼 수 있듯이, 사람은 사실 어느 쪽이 표준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씨만 뿌려놓고 떠나버리는 아빠가 있는 반면, 자식이 다 클 때까지 애지중지 돌보는 것으로 부족하다는 듯이 학부모가 된 자식의 뒷바라지까지 마다 않는 아빠도 있다. 또 이혼하거나 사별하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빠 혼자 자식을 키우는 사례도 있다.
어느 쪽이든 다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아빠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능력과 성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뜻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영장류이니,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육아 행동이 우리가 타고난 성향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성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침팬지나 고릴라 아비처럼 어미와 자식을 돌보긴 하지만, 아주 충실하다고 말하기는 좀 그런 수준이 우리의 표준일까?
안타깝게도 아빠의 육아 문제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드물며, 그마저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만이 옳다’ 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도 새라 블래퍼 르디(Sarah Blaffer Hrdy), 데이비드 기어리(David C. Geary), 피터 그레이(Peter Gray), 레베카 시어(Rebecca Sear) 등 연구자들과 함께 알아보자.
육아를 일종의 ‘투자’로 여기기도
1972년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는 육아를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보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이 분야에 혁신을 일으켰다. 그는 부모가 다른 자손에게 투자할 능력을 희생하여 어느 한 자손에게 투자하는 것을 ‘부모 투자(parental investment)’라고 했다. 생물의 생존 목적은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낳아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에 쓸 자원을 어느 한 자손에게 투자한다면? 한 생물이 쓸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므로, 그 자원을 부모 투자에 돌리면, 자손을 더 불리는 데 들어갈 자원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렇다면 육아 대신에 자손을 불리는 데 자원을 쓰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이 말을 뒤집으면, 한정된 자원을 육아에 투자하는 쪽이 자손을 불리는 쪽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부모 투자가 이루어질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자손의 생존율이 높아지는 등 여러 가지로 이점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문제는 암수는 선천적으로 자손에게 자원을 투자하는 비율이 다르다는 점이다. 사람을 예로 들면, 여성의 난자는 크며 자원을 많이 잡아먹는다. 게다가 여성은 열 달 동안 태아를 뱃속에서 키워야 하며, 낳은 뒤에도 젖을 먹여야 한다. 반면에 남성의 정자는 아주 작으며, 만드는 데에도 자원이 얼마 들지 않는다. 또 정자만 뿌려놓고 사라질 수도 있다. 즉 육아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아도 자손과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이 사라지면 여성은 홀로 자손을 키워야 한다. 자손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여성은 육아 부담을 나누어질 만한 남성을 짝으로 선택하는 전략을 진화시켰다. 한편 남성도 좋은 짝을 얻기 위해 육아 부담을 떠맡는 전략을 택했다. 이것이 핵가족 중심의 가정과 그것을 토대로 한 인류 사회를 구성한 토대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럴 듯한 이론이다.
하지만 자상하긴 하지만 볼품 없는 남성과 바람둥이이지만 몸짱인 남성 중에서 반드시 전자를 택할 것 같지는 않다. 또 남성으로서는 육아에 투자를 실제로 하는 것보다 그렇게 할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는 사기꾼 형태로 진화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남성도 많다.
이런 사항들을 토대로 르디와 기어리 같은 연구자들은 인류에게서 아빠의 양육 투자가 임의적인 것이라고 본다. 즉 그저 선택 사항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식 돌보기에 불철주야 여념이 없는 아빠도 있는 반면 전혀 무관심한 아빠도 있으며, 육아에 투자하는 정도도 제각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육아에 투자하도록 아빠를 이끄는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
유전학의 발달로 ‘내 자식 확인하기’ 열풍여권 신장이 가부장적인 권위가 철철 넘치던 아빠들의 세계에 일대 타격을 가한 것은 분명하지만, 아빠의 확고부동하던 지위를 더 근원적으로 뒤흔든 것이 있다. 바로 유전학의 발전이다. 유전학이 발전하여 유전자 검사법을 내놓는 순간, 바람 피우기는 남성만의 것이 아님이 여실히 드러났다.
평생 해로하면서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던 새들을 비롯하여, 조사하는 동물마다 암컷이 자기 짝이 아닌 다른 수컷의 알이나 새끼를 낳는 비율이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고귀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고 역설하는 사람들도 동물계에 만연한 이 바람 피우는 문제를 접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는 모양이다. 친자 확인 검사가 당당히 하나의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친자 확인 검사는 DNA 지문 분석법의 일종이다. 1984년 영국의 알렉 제프리스가 개발한 이 분석법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의 혈통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이 분석법을 적용하기 전까지 조류는 약 90퍼센트가 일부일처제를 채택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새끼의 DNA를 조사해보니 10~40퍼센트가 다른 수컷의 새끼였다. 요정굴뚝새는 그 비율이 무려 65퍼센트나 되었다. 심증만 갖고 안절부절못하던 자들에게 물증을 제시한 꼴이라고나 할까.
그 이전인 1977년에 혈액형을 분석하여 영국 리버풀 지역의 아이들을 조사한 바 있는데, 20~30퍼센트가 아빠의 친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006년에 나온 한 연구 결과는 그 비율이 약 2~4퍼센트라고 말한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내 자식이 확실한가 여부가 아빠의 육아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직접 나았으니 자기 자식임을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지만 아빠는 그렇지 못하니까.
또 한 가지 요인은 육아 대 짝짓기의 비용 효과이다. 주변에 새로운 짝을 얻을 가능성이 널려 있으면, 육아에 소홀해지기 쉽다. 한편으로 육아에 투자를 했을 때 그만큼 자식이 보람과 뿌듯함을 안겨준다면 아빠는 육아 쪽에 더 매진할 것이다. 그러니 아빠가 육아에 많은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려면 그만큼 투자한 보람을 안겨줄 필요가 있다.
남성호르몬 넘치는 아빠는 자상함 부족해
“아빠~ 힘내세요” 하는 아이들의 노래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빠는 힘을 내기가 어렵다. 주중에는 아들딸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고, 주말에는 가정에 봉사하느라 만성 피로에 시달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육아에 힘쓰는 아빠는 미혼인 남성보다 핏속에 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테스토스테론은 근육을 늘리고 공격적인 남성 성격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는 물질이다. 한 마디로 몸짱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아빠의 몸에서는 그 호르몬이 적게 분비된다. 그러니 아빠에게서 초콜릿 근육과 자상함을 함께 기대하지는 말자.
물론 혼인하기 전에는 몸짱이었다가 혼인한 뒤에는 자상한 아빠로 변신하는 남성이라면 나무랄 데 없겠지만, 아쉽게도 남성은 아직 그 단계까지 진화하지 못했다.
- 이한음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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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0-05-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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