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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7

유전자에서 밈으로, 혼돈의 시대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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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른으로, 하나의 생명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변화하는 순간은 ‘내가 누구인가’를 처음으로 묻는 때일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순간, 수백만년 동안 아무도 정확한 확답을 내리지 못한 난제에 부딪치게 됨으로써, 아이는 훌쩍 자라게 된다.

사람이 왜 살아갈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명확하고도 잔인한 해석은 1976년 리차드 도킨스가 지은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제시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아예 ‘인간은 유전자가 조종하는 기계’라고 말한다.

유전자에게 있어 절대절명의 핵심 과제는 ‘존재하라, 그리고 번식하라’이며, 생명은 단지 유전자의 존재와 번식을 보장하기 위한 그릇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유전자에게 있어 개별 생명체의 죽고 삶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만약 한 생명체가 자신을 담기에 적당한 그릇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이를 멸종시키고 다른 것으로 갈아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도킨스는 인간이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 ‘인간의 정신’도 이기적인 유전자와 같은 입장에서 정의한다. 그는 문화 역시 복제와 변이와 도태를 거듭하는 독립된 일종의 인자라고 규정했고, 이를 ‘유전자(gene, 진)’에 대응해서 ‘밈(mem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전에는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개인의 정신이며, 인간만이 지닌 영혼의 반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를 반박하며 밈은 유전자처럼 복제되면서 퍼져나가는 습성이 있고, 복제되고 변형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환경에 적응한) 밈만 선택되어 존속되고, 나머지는 도태된다고 말한다.

종종 밈은 유전자보다 더욱더 강력한 힘을 지니기도 한다. 선대에서 후대로 제한적인 자손들에게만 전달되는 유전자와는 달리, 밈은 인간의 뇌에서 뇌로 직접 전달되기에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도 있고, 더욱더 오랜 세월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몇 백년 동안이나 인구에 회자되며, 시대에 맞춰 각종 변형된 모습을 선보이며 세계 곳곳으로 점점 더 널리, 다양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는 복제와 변형과 선택과 존속의 치열한 과정 속에서 살아남은 승자의 당당한 모습인 것이다.

요즘 들어 밈은 진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듯 보인다. 과학의 발달은 정보의 소통을 쉽고 빠르게 함과 동시에, 더더욱 많은 밈을 생성하고 전파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요즘 들어 사회의 기본 가치가 흔들리고 복잡해지는 것을 인간 본성이 폭주하는 것이 아니라, 밈들의 폭발적인 진화와 경쟁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유전자의 진화에도 새로운 생명체가 유입되는 과정에서는 혼란이 일어나지만 결국 환경에 적응한 것들만 살아남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생명체의 떼죽음이나 황폐화, 멸종 등의 시행착오가 일어나지만, 결국 유전자는 안정되게 자신을 복제해 줄 생명체로 옮겨 가며 자신의 존속을 보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느끼는 혼란 역시 밈들의 춘추전국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간의 뇌가 어느 정도 커지고 기억이 가능하면서 존재가 보장되어 생겨난 밈이 그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스스로 자원(인간의 뇌)을 두고 경쟁체제에 돌입한 것은 아닐까. 혼란스런 시기가 지나고 나면 자연선택된 밈들이 다시 균형을 잡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생각 역시 일종의 밈의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저작권자 2004-02-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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