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유전공학,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조만간 인류의 건강을 책임질 연구 결과가 곧 나올 것이라는 뉴스가 많습니다. 그러나 유전자 연구로 단백질 연구가 소홀해져서는 안됩니다. 단백질에서도 유전공학에 못지않은 놀라운 성과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0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이스라엘의 아론 치카노베르(Aaron Ciechanover) 교수가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제19회 국제화학교육대회’에 참석했다. 그는 기조강연을 통해 수명이 다한, 단백질을 분해하는 작용을 하는 인체 내 단백질인 ‘유비퀴틴’에 대한 연구가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과학자들의 이론과 실험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인체 내 단백질인 유비퀴틴(ubiquitine)이 이제 곧 의약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할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임상실험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효능을 확인하는 연구가 끝나면 암은 물론 불치병 치료에 많은 기여를 하리라고 믿습니다.”
이스라엘 과학기술의 요람인 테크니온 공대(Technion-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암과 혈관생물학 연구소(Cancer and Vascular Biology)’를 이끌고 있는 치카노베르 교수는 이날 ‘유비퀴틴-의존성 단백질분해 시스템 : 기본 메커니즘에서 인간의 질병과 신약개발에 이르기까지’라는 주제로 50여 분간 강연했다.
그는 "유비퀴틴은 단백질 분해기능을 방해하는 물질을 막아주는 물질을 갖고 있는데 이 물질은 인체 내의 암세포를 줄여주는 놀랄 만한 효과가 있었다"며 "이를 활용한 약품이 개발돼 최근에는 최종적으로 이 약품의 효능을 확인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량단백질을 제거해”
76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인체 내 단백질의 하나인 유비퀴틴은 1975년 송아지의 이자(췌장)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후 세균을 뺀 모든 생물체의 거의 모든 조직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역할이나 기능이 밝혀진 것은 1980년대 초의 일이다. 유비퀴틴은 라틴어 ‘ubique’에서 유래한 용어로 우리말로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모든 곳에 있다’는 뜻이다. 정보통신용어로 완전히 자리잡은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유래도 마찬가지다.
이 단백질은 수명이 다한 단백질에 꼬리표처럼 달라붙어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좀(proteasome)으로 이동한 뒤 프로테아좀이 단백질을 분해하는 순간 떨어져 나와 다시 똑같은 역할을 되풀이한다. 즉 재생이 가능한 단백질로 단백질 분해에 관여한다.
세부 과정을 보면 먼저 세 가지 효소와 작용해 수명이 다한 단백질에 붙은 뒤, 연쇄반응을 통해 여러 개의 유비퀴틴 띠를 형성한다. 그러면 유비퀴틴의 유도에 따라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좀이 유비퀴틴이 붙은 단백질을 조각조각 파괴해 제거한다.
그리고 단백질이 분해되는 것과 동시에 단백질에 붙어 있던 유비퀴틴은 떨어져 나와 다시 활동한다. 이렇듯 단백질 분해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비퀴틴의 구조나 역할이 밝혀지면 자궁경부암, 낭포성섬유증 등 각종 난치병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치카노베르 교수의 지적이다. 그리고 상당한 진척을 보고 있다.
“단백질 연구, 무궁무진해”
치카노베르 교수는 1980년대 초 세포주기 조절 등 생명현상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 분해과정이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내 질병치료와 신약개발 등에 획기적 길을 열어준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다시 말해서 유비퀴틴의 메커니즘을 규명한 공로다. 동료인 이스라엘의 생화학자 헤르슈코(Avram Hershko)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즈(Irwin Rose) 교수와 공동으로 받았다.
한편 치카노베르 교수는 “단백질 연구는 지금도 연구할 분야가 무궁무진한데도 불구하고 요즘은 유전자에 의한 생명과학에 너무 지나친 나머지 단백질 연구가 매력을 잃고 있고 전공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단백질 연구는 생명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명윤리와 관계없이 지속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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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6-09-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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