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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조행만 기자
2010-05-12

유전병, 하늘이 내리는 형벌 아니다 21세기는 맞춤의학 시대… 유전병 연구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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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직장이 있는 박미영씨(28. 가명)는 오늘도 바쁜 출근준비를 서두른다. 급하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신속하게 말린 다음 한껏 모양을 낸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미영씨는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역세권에서 훨씬 벗어난 그녀의 집에서 지하철역까지는 대략  20분 거리. 오늘따라 늦은 미영씨는 바쁘게 집을 나선다.

그러나 미영씨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느려 보인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잰걸음으로 서둘러도 시원치 않은데 그녀의 걸음걸이는 왠지 천하태평의 소걸음이다.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것도 아닌 미경씨의 뒷모습은 많이 꾸부정해 보이고, 얼굴 표정은 더욱 불안해보인다.

서둘러야 할 출근길에 매우 천천히 걷는 미경씨. 그 이유는 그녀에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고민이 한 가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엘러스―단로스(Ehlers-Danlos ED)' 증후군환자다. 이 병은 피부 표피 밑에 있는 결합조직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질환이다. 이 질환에 걸린 환자는 피부에 탄력이 없어져 잡아당기면 쭉 늘어나는 것이 특징. 관절에도 이상이 생기기 쉽고, 활처럼 휘어지기도 한다.

피부가 약해서 멍이 잘 들고, 상처가 생기면 잘 낫지 않고 흉으로 남는다. 또 세포조직 손상이 쉽게 와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혈관 파열 등의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바쁜 미영씨가 빨리 걷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열성 유전자의 발견

지난 2001년 네덜란드 네이메헌 대학병원(Univ. Medical Center Nijmegen)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Univ. of California)의 과학자들은 공동으로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에 작용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테나신 X(tenascin X)’이라는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다. 그런데 피부와 연골조직이 유지되려면 교원질(collagen)이란 단백질이 필수적이며, 주로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은 이 콜라겐 단백질의 부족이 가져오는 질환이다.

이에 대해 이들이 새로 발견한 유전자가 발현시키는 테나신 X는 교원질과는 다른 물질로, 이 단백질 결핍에 의해서도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이 발병하는 것으로 판명된 것.

그리고 이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테나신 X 결핍에 따른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은 전형적인 증후군과 다르다는 사실과, 전형적인 증후군의 경우 흉터 형성이 쉽게 일어나는 데 비해 새로 발견한 유전자에 의한 증후군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밝혀냈다. 

또 하나 중요한 발견은 다른 유형의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이 세대를 따라서 후손에게 그대로 유전되는데 비해, 테나신 X 결핍을 동반하는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은 그런 현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테나신 X 단백질 발현 유전자를 열성(recessive) 유전자로 결론 내렸다.

오늘날 유전체 연구는 과학의 어느 분야보다도 활발하며, 다행스럽게 상당수가 희귀 난치성 질환의 유전자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이미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으며, 유전적으로 우성과 열성 유전 모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귀질환, 사전검사가 중요해

과거에 희귀 유전병은 예방과 치료가 전혀 불가능한 천형(天刑)으로 인식되면서 부모와 자식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고통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동안 미영씨 역시 다른 질환자들처럼 무조건 이 병의 보유 여부를 숨기려고만 했다. 어쨋든 겉보기에 멀쩡하고, 증상이 심하지 않아 조심해서 살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주해 왔다.

그러나 요즘 들어 미영씨는 자신의 질환에 대해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내년 5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 대에 그 유전질환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심정은 그녀 역시 다른 부모와 마찬가지이다.

결혼을 포기할 생각도 해본 미경씨는 용기를 내 상담기관에 문의를 했다. 그 결과, 그녀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의 증상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자신의 증상은 '척추뒤옆굽음형(Kyphoscoliosis type)'이라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건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척추뒤옆굽음형의 경우, 상염색체 열성 유전으로 나타나며, 이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이 발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상염색체 열성 유전의 경우, 각각의 부모로부터 열성 유전자를 하나씩 물려받았을 때 생긴다”며 “만약에 개인이 하나의 정상 유전자와 하나의 질환 유전자를 받았다면 그 사람은 질환의 보인자(carrier)가 되지만 질병의 증상은 대개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부모가 모두 보인자일 경우, 아이가 질병에 걸릴 확률은 25%, 그 아이가 부모처럼 보인자가 될 확률은 50%, 아이가 정상유전자만 물려받아 유전적으로 정상일 확률은 25%가 된다.

또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은 유전병이기 때문에 임신 중 산전검사가 가능하다. 이 증후군 환자는 임신과 출산 시에 절개부위를 꿰맨 곳, 또는 상처들이 쉽게 찢어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수술 과정을 반드시 피해야 하며, 특별한 합병증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아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다. 미영씨는 유전상담을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희귀 유전병 이제는 다시 바라볼 때

희귀질환을 담당하는 아산병원 유전학 클리닉 관계자는 “과거에 유전병은 천형으로 인식,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다”며, “그렇게 숨기다 보니까 태어날 아이의 예방조치나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이외에도 현재 밝혀진 유전적 희귀질환만 5천여 종에 이른다. 희귀한 이름을 가진 유전병들이 속속 학계에 보고되면서 희귀 유전병의 정체가 속속 밝혀지는 가운데 최근 들어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 환경오염의 심각성, 산모 연령층의 증가 등으로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고 있다.

또 많은 희귀질환이 유전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전적 요인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역시 더욱 증가하는 경향에 있다.

21세기 첨단 생명과학이 유전질환의 비밀을 서서히 벗겨가고 있는 가운데 감추려고만 했던 유전질환자들의 삶도 이제 떳떳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포스트 게놈 시대 유전체학의 눈부신 발전이 질환자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조행만 기자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10-05-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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