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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객원편집위원
2005-05-03

"유교적 가치도 혁신와 개혁 필요" 빅토르 웨이 주한 벨기에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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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변화와 혁신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변화와 혁신은 이 시대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도그마적인 권위만을 주장한다면 그 종교는 극단주의, 근본주의라는 오명을 쓰게 되고 외면당하게 된다. 결국 종교의 사명을 다 못하는 것이다. 누구 한 편을 지적할 필요 없이 따져보면 중동(中東) 분쟁도 그러한 맥락이다.


지난 달 성균관대학에서는 약간은 이색적인 강연이 있었다. 아름다운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점점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의 유학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주한 벨기에 대사의 강연이었다. 지난 6백 여 년간 우리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역할을 했던 유교가 입지가 좁아지는 마당에 그것도 외국대사의 유교에 대한 관심은 꽤나 이례적이고 흥미있는 일이다.


‘외교관이 바라본 한국의 미래와 유교’라는 재목으로 한시간 동안 강연한 빅토르 웨이(Victor Wei) 대사는 “유교가 주는 아름다운 철학과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낡은 사고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그러나 한국의 유교는 그 유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유교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儒家)적인 사상은 언제나 유효하지만 그 사상을 주관하는 제도나 기관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면 유교는 구시대의 산물로,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으로 외면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빅토르 웨이 대사는 유교와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유교가 자본주의와 산업화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논리”라고 반박하고 “오히려 유교가 주는 검소함, 정직성 등이 아시아의 4마리 용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주장했다.


웨이 대사는 “특히 가족이라는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가 무너지고 있고 사회가 점점 황폐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가족을 중요시하는 유가적 가치는 어떤 형태든 간에 남녀간의 결합에 곡 필요한 가치와 덕목이 되는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983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자대학 총장이 미국의 모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그 소감을 “유교의 질곡(桎梏)에서 한국여성을 해방시켜준 미국에 감사한다”로 답한 적이 있다. 그러나 웨이 대사의 강연 내용을 빌리면 ‘유교의 질곡’이 아니라 ‘조선사회의 질곡’이라는 표현이 더욱 더 적절할 것이다. 유교가 질곡이라는 수갑을 채운 것이 아니라 유교를 등에 업은 당시 사회가 채운 것이기 때문이다.


194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난 웨이 대사는 3살 때 벨기에로 이민했으며 84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가봉에서 대사로 근무했으며 벨기에 외교부에서 반테러 부문 책임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다음은 웨이 대사의 강연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부모가 중국인, 儒敎에 애정이 많아

나는 유학에 대해 강의를 할 만한 적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 유학의 요람인 성균관대학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중국어도 잘 할 줄 모르고 유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다. 더구나 유학 경전을 읽어 본 적도 없다.


나는 벨기에서 자랐고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도 벨기에서 받았다. 그래서 전형적인 유럽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출신인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유학(儒學)이 무엇인가를 어느 정도 알게 됐고 커서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여기에서 강의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은 아마 이러한 나의 가족적인 배경과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경험일 것이다. 여러 나라의 각기 다른 정치적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외교관으로서는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학에 대한 나의 애정도 그러한 맥락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유학은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통치철학의 개념으로도 생각할 수 있고 민중적인 삶과 문화의 한 양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종교로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유가사상에 밝은 루슈쉬엔이 제시한 세가지 구분을 인용해서 말하고자 한다.



유교는 통치이념만이 아니다

첫째, 정치적인 구분으로서의 유가다. 그 것은 한 기관(주로 왕조나 국가를 뜻함)의 통치의 이데올로기로 쓰였다. 한국의 조선, 중국의 여러 왕조에서 이런 사례를 볼 수 있다. 두 번 째는 종교로서의 유가다. 이 것은 철학이기도 하고 종교적인 측면도 있다. 마지막으로 ‘민속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유가다. 교육, 가족의 중요성, 불교와 도교와의 관계. 심지어는 ‘미신(superstition)’이라는 종교들과도 잘 결합되는 신앙으로서의 유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신앙(민속)적인 측면에서 유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베트남, 일본 등지에서는 지금도 많이 남아 활동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영향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조선시대와 비교할 때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결혼제도를 보자. 신랑과 신부가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부모가 짝을 짓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 한국의 갓 결혼한 젊은 남녀들이 2-3년 내에 4분의 1이 이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


그리고 제사(祭祀)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물론 지금도 행해지고 있지만 핵가족 등의 영향으로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과 문화에 영향력이 더 커

그러나 여전히 그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은 교육이다. 교육열이 그것을 대변해 준다. 요즘 대학생들은 시험을 볼 때 ‘컨닝’을 하기도 하는 데, 공자시대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현대 교육은 수백 명의 학생을 꼭 같은 커리큘럼에 넣어 결과를 기대한다. 과거에는 배우고 싶은 사람이 선생을 찾아가서 이루어지는 사적교육(私的敎育)이 전부였다. 그래서 시험이라는 것도 없었다.


다른 가치관의 하나로 윗사람을 공경하는 일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유교적인 질서다.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또 한국의 유가를 이해하는 데 기억할 만한 특징은 유교와 미신적 행위와의 결합이다. 유가는 원래 대단히 합리적인 교훈을 주기 때문에 미신을 배격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활동까지 반대하지 않는다. 유가는 무엇보다 인간중심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유가의 사상이 합리적인데도 왜 그 속에서 과학이 등장하지 않았는지에 많은 의구심을 갖고 그리고 그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유가의 합리성이란 과학이 본래 갖고 있는 수학적 이론이나 논리, 실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서의 합리성에 기초하고 있다. 서양의 합리성이란 곧 수학과 과학을 의미하지만 유가의 합리주의란 인간의 도덕과 규범에 근거한 합리성이라는 말이다.


서양의 합리주의는 과학에, 유교의 합리주의는 인간에

유럽의 르네상스시대에 과학의 등장은 나침반, 화약, 인쇄술의 발명에 힘입은 바가 크다. 화약의 발견으로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쉽게 침략당하거나 병합되지 않게 됐다. 인쇄술은 교육의 보편화를 가져왔다. 나침반은 장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사실 이 세가지 발명은 아시아(중국)에서 이미 발견된 것들이다. 유가는 서양의 종교와 달리 과학에 반대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의 덕목에 관심을 많이 기울인 나머지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어떤 형식이든 간에 글로벌화는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의 철학과 종교는 교류를 통해 접근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유가도 스스로 재창조를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상당한 뿌리를 내렸을 때 새로운 화합으로, 그리고 그 도전을 흡수하면서 탄생한 것이 주자학(朱子學)이다. 신유가(新儒家)다. 그리고 현대의 신유가는 서양철학의 기초가 되는 심리학 또는 형이상학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다. 현대 유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라면 그 것은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을 형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도야(陶冶)하는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자기도야는 수신(修身)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종교에서는 ‘종교적 실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유가는 겸손함, 근면, 정직과 같은 도덕성을 배양하고 또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교육시키는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유가와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근대화가 시작됐을 때 중국과 한국은 아시아 유교국가 중 제일 먼저 유교를 낡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서 버렸다.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생각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유교적 가치 덕분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1970년대 말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싱가포르의 이광요(李光耀) 수상은 아시아의 신흥경제발전 국가를 4마리 호랑이(또는 용)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그는 이 4개국(한국,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성공비결은 아시아적 가치인 유교가 큰 주역을 했다고 주장했다.


외국 학자들 가운데는 이러한 견해에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웨버(Max Webber,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는 유교가 자본주의에 걸림돌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피터 버그(Peter Burg)는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주장했다. 누가 옳고 그른가. 그리고 그 증명을 누가 할 것인가. 그러나 유학의 종교적인 가치인 근면과 겸손, 정직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정치시스템의 실패에 관해서 이야기 해 보자. 재미있게도 공자나 공자의 논어를 읽어 보면 정치체계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없다. 공자가 관료제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유토피아(Utopia)를 통해 이상국가를 주장한 서양의 토마스 모어(Thomas More)와 비교할 수는 없다. 유교를 통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그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Max Weber의 주장은 틀려

공자는 관료제는 조화와 교육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성인은 법에 대한 호소를 피하고자 했다. 대신 모범을 통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나 ‘당신의 마음을 바로 잡으면 천하가 편해질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유가라고 불리는 하나의 정치적인 기관(organization, 또는 system)은 그 시대의 요구나 필요성에 의한 것이지 유교의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유가를 상당히 변형시킨 것이다.


한국의 조선(朝鮮)은 유교이념을 가진 정치가들에 의해 세워졌는지는 모르지만 공자가 저술한 경전이나 공자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유교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는 정치체제의 흥망이 유교경전이 더 이상 유효하냐 아니냐 하고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교가치 간직하기 위해 혁신과 개혁 필요

유가의 미래에 대해 한마디 하고 강의를 끝마치고자 한다. 미래를 진단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엄청난 부자가 됐을 것이고 여기에서 여러분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민중적인 차원이나 영역에서 유가의 가치와 세계관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지적 자산이 되고 있다.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이어서 유가에만 있는 특정한 덕목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교가 유교의 고유한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교도 한국의 유교도 개혁과 혁신이라는 흐름에 제외될 수가 없다. 그러한 노력이 유교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길이다.

김형근 객원편집위원
저작권자 2005-05-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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