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아주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훨씬 정적인 우주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오래 된 은하들 가운데 3분의 1은 서로 충돌하거나 합병 중이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5억 광년 떨어진 목수자리의 마차바퀴 은하는 두 개의 은하가 충돌하면서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충격파가 주위에 퍼져 나가 마차바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마차바퀴 은하는 충돌하기 전에는 우리 은하처럼 평범한 나선 은하였다. 그런데 충돌 때의 충격파가 시속 30만km의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가면서 반지처럼 생긴 고리가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적어도 수십 억 개의 별들이 태어나고 있다.
이 반지 모양의 고리는 지름이 무려 15만 광년이나 돼 우린 은하 전체가 들어가고도 남는다. 은하와 은하가 부딪치면 우주의 가스가 모여 있는 성간물질이 중력의 교란을 받아 뭉치면서 별이 새로 태어나게 된다. 말하자면 은하와 은하는 서로 합쳐져 결혼하면서 새로운 아기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곤충의 더듬이처럼 긴 꼬리를 갖고 있는 ‘안테나 은하’도 NGC4038과 NGC4039 등 두 개의 은하가 충돌해 만들어진 것이다. 두 개의 은하 중심부가 부딪쳐 만들어진 것이 오렌지색 부분이고, 밝은 푸른 색 부분은 충돌로 인해 별들이 새로 만들어지는 부분이다. 두 개의 은하가 충돌하는 중심부에서 찬란한 불꽃놀이 쇼가 벌어지면서 1천 개의 밝은 어린 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별의 씨앗은 너비가 수십-수백 광년이나 되는 거대한 수소구름이다. 이 구름은 충돌 때 생긴 중력의 교란으로 마치 폭죽이 연달아 터지듯이 수소 저장고의 가스를 수축시켜 달구면서 별들을 탄생시킨다.
우리 은하도 다른 은하와 충돌한 증거가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은하와 충돌한 은하의 일부 성단이 지금도 우리 은하면과 직각을 이루며 회전하고 있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은하는 우리 은하계와 같은 나선 은하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타원 은하이다. 타원 은하는 타원처럼 둥글다. 대체로 타원 은하는 두 개 은하의 충돌로 만들어졌다고 보면 맞다.
서울대 이명균 교수팀도 6천만 광년 거리에 있는 처녀자리의 M49 타원 은하를 관측해 이 은하가 두 개 은하의 충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교수는 1백억 년 전 우주 탄생 초기의 은하 형성 단계에는 은하가 합쳐지는 현상이 매우 자주 일어났다고 강조한다.
사실 우리 은하도 두 개의 은하가 충돌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밝혀낸 것도 바로 한국의 학자이다. 연세대 박사과정 윤석진 연구원과 이영욱 교수는 우리 은하가 우리 은하보다 약 10억 년 젊은 은하와 충돌해 합병됐다는 사실을 밝혀내 이를 2002년 7월 26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때 우리 은하에 포획된 별들은 우리 은하와 거의 직각을 이루면서 다른 궤도를 지금도 돌고 있다.
은하만 충돌하는 게 아니라 블랙홀도 충돌한다. 대부분 은하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있다. 우리 은하 내에도 두 개의 거대한 블랙홀이 있다. 지구로부터 4억 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두 블랙홀은 앞으로 수억 년 안에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로 합쳐지면서 어마어마한 중력파를 발산해 우주의 시공간 구조를 휘게 할 것으로 예측된다.
강력한 X선을 방출하는 두 개의 블랙홀은 지금은 3천 광년 떨어져 있지만 시속 3만5천㎞로 서로를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가까워지고 있다. 갈수록 회전 속도가 빨라져 수억 년 뒤에는 시속 10억㎞의 엄청난 속도로 충돌하게 된다. 이때 엄청난 중력파와 방사선이 방출돼 우주는 마치 조용한 연못에 돌을 던진 것처럼 겉잡을 수 없는 파장이 일면서 우주의 공간 구조가 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태양이 속한 우리 은하도 40억 년 뒤에는 바로 옆에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와 충돌하게 된다. 지금도 매일 안드로메다와 우리 은하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이때 은하뿐 아니라 두 은하 중심의 거대 블랙홀도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우주의 충돌과 합병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된다. 수억 년 수십억 년 이후까지 과연 인류가 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만일 살아 있다면 우리는 그때 달처럼 큰 안드로메다 은하를 볼 수 있게 되고 무수한 새 별이 갑자기 밤하늘에 나타나는 장관을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격변 속에서 우리는 운명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의 합병으로 우주에는 새로운 별이 탄생하고 또 새로운 생명체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만들어져 생명을 이어 나갈 것이다.
- 신동호 뉴스와이어 편집장
- 저작권자 2005-09-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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