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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행만 객원기자
2006-12-29

“우리의 삶 속에는 겨레과학이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전시연구팀 정동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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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종과 함께 한 해를 끝내고 시작한다. 2006년이 얼마 안 남은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보신각 타종을 들으며 2006년 병술년을 보내고 또 2007년 정해(丁亥)년을 맞게 될 것이다.


조선 초 태조 5년(1396년)부터 도성의 4대문을 일제히 여닫기 위해 친 타종은 이제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의식을 넘어 매일 타종되고 있다. 타종의식은 종소리가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로 고대 철기시대부터 신라를 거쳐서 오랫동안 사용돼 왔고 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하는 상징이다.


종의 복원으로 본 선조의 과학 지혜


천년의 소리를 그대로 간직한 우리의 범종 소리는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듯이 은은하면서도 애달프게 사람의 마음에 울려 퍼진다. 그것은 바로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가 만들어낸 종소리, 즉 ‘맥놀이’ 현상 탓이다. (* 맥놀이 현상 : 두 개 이상의 음파가 하나로 합쳐졌다 흩어졌다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현상.)


겨레과학을 연구하는 정동찬 팀장은 “다른 나라에도 종은 많지만 우리 한국 종만의 독특한 음색은 절대로 흉내 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종이 그런 음색을 낼 수 있는 비결은 우리나라 범종만이 갖고 있는 종 상부의 음관과 종구 바로 밑에 있는 명동 때문이다. 입구가 좁고 출구가 깔대기형 기둥의 모습을 한 음관의 구조는 몸통 전체에서 전해 오는 진동파와 음관에서 나오는 소리파를 상호 작용시켜서 울림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림통인 명동 역시 타종 시에 공명진동을 일으켜 긴 여운을 남기는 역할을 한다. 명동의 진동수가 맥놀이를 일으키는 주진동수와 같을 경우, 범종 소리 특유의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른바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 신종을 만든 우리의 조상은 현대 첨단공학의 음향학, 진동학 등의 설계와 주조 및 타종 방식을 이미 접목해 세계 유일의 종을 만든 것이다.


이 기술이 바로 밀납주조기술이다. 고른 합금을 만들어내는 비법, 마지막까지 공기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슬기, 흙을 볶아 거푸집을 만들고 기름, 밀랍, 송진 등 천연소재의 정확한 파악 등은 현대의 첨단과학으로도 잡아내기 힘든 훌륭한 과학슬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3월 중순, 국립중앙과학관(관장 조청원)은 청동종 밀랍 주조기술을 이용해 국내 최초로 국보급 과학문화재인 통일신라시대 선림원종을 복원시켰다. (* 밀납주조기법은 주형틀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섬세한 모양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후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범종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주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서울대 이장무 교수팀은 복원된 선림원종의 소리를 음향 측정한 결과, 타종 직후 약 0.75초부터 기본 진동수의 음파가 '맥놀이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했다.


@img10@


우리 선조가 창안해낸 밀납주조기술이 현대에 와서 복원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한 사람이 문화재복원가 윤광주 선생이다.


경주에서 활동하는 윤광주 선생은 경주 감포 앞바다에서 뻘돌(니암)을 찾아냈다. 뻘돌이란 아주 미세한 갯벌 흙이 오래돼서 돌이 된 것이다.


“종을 만들 때, 주물 틀을 만들려면 합금기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뻘돌을 사용하면 쇳물을 부어서 주물을 할 때, 가스가 잘 빠져나오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야 기공이 생기지 않는데 니암이 그 요건을 충족시키고 아울러 미려한 문양을 내는 장점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종이 맥놀이 현상으로 아름다운 음색을 낼 수 있고 미려한 문양으로 시각적인 미를 갖출 수 있는 것은 우리 겨레만의 과학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서양과학 속의 겨레과학의 우수성


종에서 조상의 신비를 들을 수 있다면 매일 매일의 밥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상의 지혜가 바로 김치와 한국인의 영양식 청국장이다. 청국장은 특유의 냄새로 집에서 만들거나 끓여 먹기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현대 사회 최고의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항암 효과는 물론 다이어트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


이 외에도 우리 조상의 지혜는 평범한 삶의 현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허리 모양이 볼록한 옹기는 사이에 바람이 잘 통해서 온도가 고르게 되고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 닥나무와 닥풀로 만드는 전통 한지는 질기고 촉감이 부드럽다. 이외에도 전통기와, 맷돌, 등잔, 가마 등도 외국에서 발견할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이다.


@img11@원래 고고학을 전공한 정 팀장은 고고학적 지식으로 우리 겨레의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생활 속의 도구들에서 선조의 과학정신을 찾고 있다.


“우리 과학기술계는 이런 도구들이 과학기술과는 무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일례로, 우리가 시골에서 흔히 쓰는 가마솥의 경우, 무게가 30kg이 넘습니다. 뚜껑 밑의 두께가 위보다 2배 두껍습니다. 그 이유는 현대의 압력밥솥과 똑같은 이치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무거워야 높은 압력을 유지할 수 있고 두께가 똑같으면 위쪽은 밥이 타버리게 됩니다. 밥솥의 열과 압력을 고르게 유지시키려고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보면 우리 옛 도구나 기술들이 얼마나 현대과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게 된다.


정 팀장은 “흔히 낭만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상징되는 물레방아는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원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꿔주고 직선운동을 상하운동으로 전환해주는 캠과 캠축의 원리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농사지을 때 쓰는 가래와 쟁기는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중심점에 모아지는 운동의 힘을 이용한 것으로 벡터의 원리를 응용하고 있다. 물레는 큰 바퀴의 적은 회전이 작은 바퀴의 많은 회전을 이끌어내는 풀리와 벨트의 원리를 이용했고 가락바퀴는 플라이휠의 원리를, 목화솜의 씨를 빼내는 씨아는 나무로 기어를 깎아 맞추어서 힘을 전달하는 원리로 만들어졌다.


물론 민족고유의 유산에 현대과학의 용어들을 대입시키는 데는 무리함이 따른다. 그만큼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는 데 소홀했다는 반성도 따른다. 정 팀장은 우리 도구에는 우리 나름의 고유한 과학용어가 있다고 했다.


두드려 만든 놋그릇은 방짜라고 한다. 방짜는 구리 78%, 주석 22%의 아주 질 좋은 합금을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비해서 질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퉁짜라고 했고 이외에도 진짜, 가짜, 순짜라는 고유의 언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작업에 쓰이는 공정에도 우리 용어가 있다. 두드려 피는 것을 내핌질, 우그리는 것을 우김질, 쇳물을 붓는 것을 부질, 갈아내는 것을 가질 등이라고 한다.


정 팀장의 설명을 듣다보면 과학이 아직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시대에 조상들의 지혜가 삶에 벌써 이용되고 있었다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인슈타인의 사망날짜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서양과학사의 연보를 꿰뚫어보는 우리들이 왜 아직도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는 무지했는지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다.


왜 이제 겨레과학인가?


최첨단 서양과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겨레과학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전시연구팀장으로 근무하는 정동찬 씨는 모두 서양과학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시대에 외로이 민족의 과학을 주창하고 전파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이 '겨레과학'이다. 정 팀장은 “우리 과학기술사의 경우, 너무 서양과학의 테두리에 얽매여 겨레의 역동적인 과학슬기의 맥과 뿌리를 인식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서양의 자연철학이나 인물, 문헌중심의 과학기술에 치우쳐 우리 민족의 과학기술을 인식하려다 보니까 겨우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과학 사고를 한 문헌을 남겼다고 하는 박제가, 홍대용 등 실학시대의 인물들만을 과학자로 인식하려고 하고 좀 시기를 올라가도 세종대왕의 과학기술까지밖에 논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까 유물로도 겨우 문헌에 등장하는 삼국시대의 첨성대나 조선시대의 해시계, 자격루쯤이나 과학문화재로 인식하는 아주 편협한 역사인식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정 팀장이 추구하는 겨레과학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선조들이 선사시대부터 사용해온 물질문화는 과학기술이 없이는 탄생할 수가 없습니다. 옹기, 조선낫, 한지, 숯, 먹, 벼루 등은 우리 생활 속에서 밀접히 쓰이는 데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이런 반성을 바탕으로 우리 과학에서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img12@“과학에 업적을 많이 낸 원로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과학에 문화가 없음을 안타까워합니다. 과학이 모든 국민들과 친근해지려면 문화로 포장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화는 선조로부터 배우고 공유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도 문화로 인식하고 접목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반 위에서 탄생한 겨레과학은 자연을 이용하고 보전해오면서 겨레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 일궈낸 자연과 문화유산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천문지리, 군사기술, 인쇄기술만을 우리 한국과학기술사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한계를 넘어서 시간적으로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겨레의 모든 자연과 문화유산을 과학적 관점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겨레과학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겨레과학은 에밀레종을 예로 들 경우, 기존의 종의 크기, 소리 등 물리적인 이야기보다는 누가(Who), 무엇을(What) 갖고, 왜(Why), 어떻게(How) 만들었나? 등의 관점에서 조사하고 밝혀내고 또 인식을 시켜나가는 노력이다.


정 팀장은 “앞으로도 우리 겨레의 혼이 담긴 도구들을 조사하고 분석해서 겨레과학을 계속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조행만 객원기자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06-12-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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