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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이론물리학자 조순탁 /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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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주암리에는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30호로 지정된 대지면적 2651㎡ 규모의 ‘조순탁 가옥’이 있다. 1934년에 건립된 이 넓은 반가(班家)는 솟을대문과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가옥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이론물리학자로서 우리나라 물리학 교육과 토착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조순탁 박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울렌벡 이론(Choh-Uhlenbeck Theory)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초창기 우리나라 물리학 교육과 토착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한 국내 최초의 1.5MeV 싸이클로트론 입자가속기 건조를 주도하는 등 40여 년간 교수, 한국물리학회장 및 한국과학기술원장 등을 역임하며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으며 오늘날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조순탁은 이 가옥이 건립되기 9년 전인 1925년 1월 4일 전남 승주(현 순천시) 주암리에서 죽천 조학종공과 함양 박씨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생 후 학교는 서울에서 다녀 1937년 서울 교동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경기 공립중학교를 졸업했다.

1944년 일본 제3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교토대학 이학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광복을 맞아 중도 귀국했다. 그 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다시 편입학하여 1947년에 1회로 졸업했다.

한국과학기술원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조순탁 박사. ⓒ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한국과학기술원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조순탁 박사. ⓒ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그 당시 서울대 물리학과는 정식으로 물리학을 가르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조순탁은 중도 귀국 후 교육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학생의 신분으로서 후배들을 가르쳐야 할 형편이었다.

서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전임강사에서 시작해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교수 생활을 한 그는 거의 독학으로 물리학을 시작해 후배 양성을 하다가 만학으로 미국 유학에 올랐다. 1955년 봄 미국 미시간대학으로 간 그는 거기서 그 당시 세계 통계 물리학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대학자 울렌벡(George E. Uhlenbeck) 교수를 만나 비평형 통계역학 분야의 숙제로 여겨지던 어려운 과제 하나를 맡게 됐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조-울렌벡 이론'

6개월가량 그 문제만 파고들었으나 진전이 없자 그를 지도하던 울렌벡 교수가 오히려 당황해 하며 그에게 좀 더 쉬운 문제를 권했다. 울렌벡 교수의 권유대로 플라즈마와 관련된 문제를 연구하던 중 갑자기 이전 과제에 대한 힌트가 떠올라 결국 그는 일사천리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논문이 바로 ‘고밀도 기체의 운동학적 이론’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으로서, 이른바 ‘조-울렌벡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이론이다. 1946년 러시아 학자 보골리보프(Bogoliubov)는 이상 기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볼츠만 방정식을 바탕으로 실제 기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제시했는데, 이를 삼체 충돌까지 포함하는 고차원 이론으로 발전시켜 볼츠만 방정식을 일반화시킨 학자가 바로 조순탁이다.

즉, 조-울렌벡 방정식은 밀도가 작지 않은 계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볼츠만 방정식을 일반화시킨 최초의 체계적인 운동학 방정식으로 운동학이론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비평형 통계 역학이론은 운동학이론과 시간상관함수를 사용한 접근법의 큰 두 가지 방법론으로 분류되는데, 조순탁은 운동학이론 학파에 속한다.

그의 박사 논문은 정식으로 학술지에 게재된 적은 없지만, 대학원 교재에서 하나의 장으로 기재되어 있을 만큼 고밀도의 기체에 대한 비평형 통계역학 분야에서는 수없이 인용된 유명한 업적이다.

1958년 미시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64년에 새로 개교한 서강대학교로 옮겨 10년간 이공대학장 등을 역임하면서 후학 양성과 교육행정에 주력했다. 1967년에는 미국 록펠러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1974년 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장으로 취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KAIST가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KAIST가 안정기에 접어들게 된 데에는 조순탁 원장의 역할이 컸는데, 이 같은 공로로 그는 연임에 성공해 KAIST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6년간 원장직을 맡았다.

우리나라 통계물리학 발전을 선도해

1980년 그는 원장 직에서 내려와 KAIST 물리학과 평교수로 근무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구해온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조그만 계산기에 몬테 칼로 시뮬레이션올 해서 기본이 되는 물리적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 그 같은 일은 그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결과였는데, 이 같은 일화만 봐도 나이에 상관하지 않는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 통계물리학의 발전을 선도한 이로도 기억된다. 1973년 한국물리학회에 열 및 통계물리 분과를 설치해 한국의 통계물리학 발전을 주도했으며, 서강대 재직시 시행한 수요세미나는 우리나라 통계물리학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이론물리학자이면서도 실험 물리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 학문이 진정으로 뿌리를 내리려면 이론과 실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1983년 한양대학교 교수로 취임해 동대학 교육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다음 1990년 정년 퇴직했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통계물리 월례 강연회 및 발표장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젊은 후학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이 같은 업적 및 공로로 녹조근조 훈장 및 국민훈장 동백장, 국민훈장 모란장, 대한민국 학술원상, 성곡학술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또한 1981년 대한민국학술원 정회원, 1995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에 추대됐으며, 1995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일반물리학’, ‘양자역학’, ‘고체물리학’, ‘수리물리학’, ‘통계역학’ 등이 있다. 그는 1996년 세상을 떠났으며, 2008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그가 타계한 후 물리학회 주최로 열린 1주기 추모 통계물리 국제학회에 참석한 현대 운동학이론의 주류인 네덜란드의 대표 학자 에른스트(M. H. Ernst)는 조순탁 교수의 업적을 현대 운동학이론을 잉태한 요람으로 평가했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5-01-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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