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 조지 스티븐슨에 의해서 최초의 증기기관차가 제작되었다. 세계 최초의 공공철도는 1825년 9월 석탄과 화물수송을 목적으로 영국의 스톡톤과 다링톤 사이의 40km 구간에 놓여진 시속 16km의 단선철도였다. 내연기관의 개발에 힘입은 디젤기관차의 개발과 전기철도의 등장으로, 19세기는 철도교통의 시대라고 할 만큼 철도가 눈부시게 성장하였다. 미국에서는 1828년 발티모어에서 엘리코트 밀까지 놓인 철도를 시점으로 20여년 동안 무려 6,000마일의 철도가 놓였다.
헐리우드 서부영화에 주로 등장하던 개척 시대에는 언제나 철도부설사업이 단골 메뉴가 되었는데, 이는 그만큼 철도가 개발과 산업화의 열기를 대변하는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자 미국의 포드가 주도한 실용적 모델의 자동차가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철도는 자동차 교통에 밀려 쇠퇴 일로를 걷게 되었다.
철도는 자동차에 비하면, 미리 놓여진 궤도 이외로 이동할 수 없어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되며, 사적 소유가 불가능하고, 공공서비스 부문이어서 경영의 간섭이 많아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운 점 등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부터 1960년 사이에 철도교통은 분명 더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사양산업이었다. 그러던 철도가 근현대에 와서 다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철도산업이 약점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항공교통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도는 선박과 더불어 전형적인 대형 물류수단으로 활용되었는데 이것은 이들 시스템이 에너지 효율이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도는 승용차에 비하여 18배, 버스에 비하여는 4배 정도 에너지 효율이 좋다고 평가되고 있다.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더 많은 물류를 운반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자연스럽게 철도가 환경친화적인 교통수단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철도는 정비된 궤도 시스템을 사용함으로써 안전성과 정시성에서도 다른 교통수단에 비하여 우수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가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며, 심각한 도심 교통체증의 한계를 드러낸 점과 대별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철도가 다시 대중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위와 같은 장점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첨단 기술사업이 시작되고 난 이후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새로운 기술에 의한 새로운 철도가 등장했던 것이다. 고속철도나 자기부상 열차의 개발은 철도 부활의 상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64년 일본의 신칸센으로부터 시작하여 프랑스의 TGV와 독일의 ICE를 중심으로 경쟁적인 고속철도 개발사업이 추진되었다. 한국도 2003년 자체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고속철도로 시속 300km를 돌파하는 진기록을 세우며 세계 5번째의 고속철도 개발국이 되었고 철도기술연구원에서 주관한 고속철도개발사업은 산업자원부로부터 2003년의 10대 기술로 선정되었다. 또한 2004년 4월 1일에는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중요한 획을 긋는 고속철도의 개통이 시작되었다. 험난했던 우리의 근·현대사와 100년의 역사를 함께 하였던 한국철도는 이렇게 고속철도 시대로 화려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철도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의 개통으로 시작되었다. 수운이나 우마차, 인력거나 자전거 등에 의존하던 당시의 우리나라에서 철도의 개통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치사적 관점에서보면 우리 철도역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과 식량과 자원을 수탈하고, 대륙 진출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수립한「조선철도 12년 계획」에 기초하여 추진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경인선의 뒤를 이어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었고 러일전쟁의 전쟁물자 공급수단으로 사용된 경의선은 일본군에 의하여 군용 부설철도로 1906년에 개통되었다. 1914년에는 대전과 목포 사이의 호남선이 개통되었고, 1929년에는 조치원과 충주를 잇는 충북선, 1936년에는 전라선, 1939년에는 꿈과 낭만이 가득한 경춘선이 개통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남북분단과 전쟁이라는 수난의 시대가 이어지면서 철도 역시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다행히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자 한국 철도는 다시 경제발전과 지역사회 개발의 주역으로 부상하였다. 이때에는 주로 우암선, 울산선, 김포선, 영동선, 태백선, 충북선 등과 같은 산업선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증기기관차를 디젤기관차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8월부터다. 디젤기관차는 증기압을 이용하던 기관차에 비하여 견인마력이 크고 연료의 무게를 줄일 수 있어 전철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현대에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기·전자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제어기능이 보완된 디젤전기기관차는 오늘날에도 무궁화 열차를 끌고 매일 수백 km의 철로를 쉬지 않고 누비고 있다. 철도 100년을 기념하던 1999년 당시의 기록으로 철도청에서 관리하는 기관차는 총 2,896량으로 디젤기관차 491량, 전기기관차 94량, 디젤동차 614량, 전기동차 1,697량으로 48년 정부 수립당시의 증기기관차 631량의 기록과 비교하여 볼 만하다.
철도규모는 차량분야 뿐만 아니라 시설, 전기, 운영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성장 발전하였다. 이 중에서 중요한 지표들만 살펴보자면, 시설 분야의 경우 최초로 33.2km의 경인선으로 시작한 철로는 100년 후에 6,580km로 연장되었고 이중 복선화 선로가 916km, 전철화 선로가 661.3km에 이른다. 선로 위에는 3,119개의 교량과 460개의 터널이 건설되었다. 컴퓨터 전산망을 이용한 자동제어기술의 발달은 철도의 고속화를 가능하게 한 가장 핵심적인 발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초기의 철도는 7개 역과 119명의 철도 종사원으로 시작하였지만 100년 후에는 631개의 역과 35,040명의 종사원을 가지는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밖에도 1925년 서울역사 준공, 1963년 9월 철도청이 당시 교통부로부터 외청으로 독립, 1974년 8월 경부선 새마을호 운행 개시, 1988년 1월 철도박물관 개관, 1994년 12월 경부고속철도 운영 준비단 발족, 1995년 12월 국유철도의 운영에 관한 특례법 제정, 1996년 3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창립, 1997년 10월 철도청 인테넷 홈페이지 개설 등은 철도 연혁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내용들이다.
정부는 철도의 현대화를 위해 2020년까지 철도분야에 약 80~90조원을 투입함으로써 총 영업거리 5,000km, 복선화, 전철화 및 자동화율 약 80%를 달성한다는 내용을 담은 ‘21세기 국가철도망 구축 기본계획’을 수립한 바가 있다. 본 계획에서는 한반도 종단 X자형 고속철도망 구축을 위하여, 경부고속철도의 1단계(서울~대구) 개통과 대구~부산 구간 전철화 운행, 2008년까지 고속신선 건설 계획 등을 예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이 완료되는 시점에서의 우리나라 교통체계는 철도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로의 전기를 맞을 것이다. 지역발전을 촉진하고 도시교통난을 해소하여, 국토의 균형발전과 물류난 해소에 이바지하고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서 철도가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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