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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0

우리나라 전자제품의 역사를 다시 쓴다. - (20) 전자공학 연구원 이영길 위니아 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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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참으로 많은 종류의 전자제품이 있다.

컴퓨터,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제품, 에어콘, 전화 등 당장 없으면 몹시 불편을 느끼는 의식주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우리 생활로 들어온 경로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서양의 누군가에 의해 개발되었고, 이로 인해 세계 굴지의 기업이 생겨나고, 얼마 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생산이 시작되고 역수출되는 일련의 공식적인 과정이 있다.

새로운 전자제품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는 초기에는 비싼 특허료와 기술 도입비를 지불하고 복사해서 싼 가격으로 공급하는 수준이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우리 기술진들은 더 좋은 기능을 가진 전자제품으로 변신시켜 새로운 발명특허료를 받아가며 세계 곳곳에 역수출하여 우리나라 외화획득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해왔다.

이런 전자제품의 홍수 속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전자공학도에 의해 개발되어 짧은 시간 안에 전국 가정 보급률 30%를 차지하고, 외국으로 수출하기까지 하는 토종가전 제품이 있다. 세계 식품 전문가들이 가장 과학적이고 완벽한 식품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는 우리의 전통 음식 김치를 과학적으로 보관하려고 노력한 결과로 탄생한 김치 냉장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치는 발효 식품이기 때문에 덜 익어도 너무 익어도 맛이 없다. 그래서 조상들은 김장을 하면 마당 한구석 그늘진 곳에 땅을 파서 김칫독을 묻어 김치가 너무 익는 것을 방지했다. 우리나라 11월 하순의 땅 속 온도인 5도와 한겨울의 땅 속 온도인 영하 1도 사이에서 보관하면 오랫동안 신선한 김치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대 도시생활에서 이렇게 김치를 보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기에 언제부턴가 김장김치를 어느 정도 익힌 후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해 왔다. 서양음식 문화에 맞게 개발된 냉장고 안에서 우리 고유의 유산균 식품인 김치가 제대로 맛이 들 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에 김치 냄새가 배는 것을 참지 못하는 주부들의 불만을 귀담아 듣고 조상의 지혜를 면밀히 조사하여 적용한 결과 한국인에게 필요한 냉장고가 탄생했다. 탄산가스 잔류량을 늘리는 급속냉각 방식을 통해 김치 특유의 아삭아삭하고 톡 쏘는 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하고 보관식품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음이온 생성 시스템을 적용했다고 하니 이 어찌 엄청난 진화가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가전제품의 대부분은 서양의 생활양식에 적합한 제품들이다. 최근에는 별다른 이유 없이 서양의 변화를 그대로 모방해 가전제품들이 대형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 문화에 적합하게 개발된 김치 냉장고는 세계 각국에 가전제품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김치냉장고의 성공신화는 최근 영국 경영대학원(MBA)의 교재(The Rhetoric and Reality of Marketing)에 ‘만도-골리앗과 싸운 다윗’이라는 제목으로 7쪽에 걸쳐 자세히 실렸다고 한다. 김치냉장고를 개발하면서 김치를 100만 포기나 담근 이야기, 대기업인 삼성이나 LG전자보다 취약한 유통 시스템을 가지고도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해 사후 품질보증을 강화하고 매출액의 5%를 지속적으로 연구개발비에 투자한 사례 등이 전 세계로 소개되고 있다.

최근 LG가 인도 현지에서 몇 년 동안의 고전을 이겨내고 인도인에게 편리한 TV 개발에 성공하여 인도 TV의 명품이라는 칭찬과 인도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는 쾌거를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금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싼 가격으로 많은 전자제품의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개발 업무에 노고를 아끼지 않은 전자공학도들의 덕분임을 감사하며 이들의 직업세계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전자공학 연구원이란?

전자공학은 반도체, 정보통신, 제어공학 및 컴퓨터를 망라하는 학문으로,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회로의 설계, 그 신호를 필요로 하는 곳까지 효율적으로 전송하는 방법과 신호에 따라 계통의 특성을 제어하는 방식 등을 연구한다. 전자공학자들은 전자 제품의 설계, 연구, 개발, 검사업무를 수행하거나 제품 생산을 관리, 감독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제품 개발을 위해 기존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분석하여 차별화할 요소를 찾아 실생활에서 쓰이고, 제품화할 만큼 안정하고 확실한가의 여부를 판단한다. 제품개발에 필요한 부품과 부속품들을 직접 설계하고 검사하는 일도 한다.

전자공학 연구원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4년제 이상의 공학계열 대학에서 전자, 전기, 통신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자회로, 전자장론, 통신제어 시스템, 반도체, 마이크로 웨브, 양자공학, 전자자기학 및 현대물리학을 중심으로 전자공학 일반에 대한 이론을 터득해야 한다. 전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필요로 하므로 수학, 물리 등과 같은 과목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적합하다. 또한 실험 실습에 필요한 논리적 사고 능력을 겸비하는 것이 유리하다. 전자공학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미래지향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현재 채용상황과 전망은?

일반적으로 전자공학도들은 가전 업계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관련 산업, 반도체 관련 산업, 통신관련 업체는 물론 자동차, 선박, 항공기, 자동화 및 계측기, 의료전자, 전자부품, 전자재료 분야 등의 여러 방면의 연구개발부서나 생산 부서로 진출하여 전공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보화 기술 사회로의 변혁에 따라 자동차 산업이나 선박, 항공기 산업 부문 등으로의 진로가 확대되고 있으며 21세기를 선도할 기술 분야로 인력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공업계측제어기사, 전자기사, 전자계산기기사, 전기기사, 정보통신기사, 전파통신기사, 공업계측제어기사,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초보자들의 취업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100만 포기 김치로 완성된 발명왕 - 이영길 위니아 연구소 차장

이영길 차장 위니아 만도(주) 소속 위니아 연구소 개발3팀에서 김치냉장고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LG산전에 입사하여 국내 최초로 오픈형 쇼케이스 개발하여 국내 시판했고 회사 내 발명왕을 수상했다. 92년에 위니아 만도로 옮겨와 김치냉장고 개발에 참여하여 직무발명 경진대회 장려상(발명진흥협회장), 각 종 공로상과 우수발명상을 수상한바 있다. ’02, ’03, ’04년 연속 위니아만도 발명왕을 수상했다. 국내특허/실용신안 120건과 국제특허 12건을 등록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된 동기 및 과정은?

어릴 때부터 특별히 발명에 대한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로 직장생활 하면서 모든 사물을 보는 방법을 새롭게 터득했다. 특히 장난감과 가전제품을 접하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렇게 변경하면 안될까? 등등 가만 놔두는 법이 없는 중증 호기심 환자라고나 할까?

적성과 집안환경, 나름대로 개방대학을 목표로 한 진학 등을 고려하여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더니 부모님 반대가 심했으나 성적이 안돼 공업고등학교로 갈수밖에 없다는 말로 설득시켰다. 사회적인 이미지만 없다면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할 것이다.

공업고등학교에서 전자공학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 아까워 대학에서 전자공학를 전공했다.

막상 취업해 보니 기계와, 냉동공학 관련 업무가 많았다. 특히 상품화에 관련된 개발업무는 많은 분야를 알고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전자공학을 전공하였지만 직장에서 처음으로 접한 업무도 오픈형 쇼케이스 개발업무였고, 현재에도 김치냉장고 연구의 근본은 다를 바 없이 냉동공학과 기계공학, 제어기술, 김치연구에 필요한 미생물학, 식품영양학 분야를 활용하여 제품 개발 연구에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소재와 신물질 연구 결과를 제품에 접목하려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보통 상품화 연구를 종합 예술이라고 할 만큼 광범위한 연구가 되고 있다.

최근에 하시는 일은?

일반적으로 기업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크게 기초 연구와 상품화 연구로 구분된다.

상품화 연구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상품을 개선하고 신상품을 발굴하여 상품화하는 연구로 기업 매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연구를 말한다.

김치냉장고의 개발업무는 대표적인 상품화 연구로 그동안 대기업에서 20여년간 이끌어왔던 서구형 냉장고를 한국형 냉장고로 이끈 연구개발 업무이다. 서구형 냉장고는 건조식품과 동결식품 위주로 보관하는 냉장고로 개발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음식문화는 건조식품보다는 국물이 있는 음식과 반찬류(김치와 같이 야채를 이용한 발효식품 류)가 주로 보관되므로 무엇보다도 건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것과 보관식품 종류에 따라 보관온도를 달리하는 연구로 한국형 냉장고 토종1호 제품인 김치 냉장고와 같은 한국형 냉장고를 개발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연구개발 업무를 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하는 일에 대해 느끼는 보람과 어려운 점은?

지금은 큰 보람과 기쁨을 안겨준 김치냉장고도 그냥 내게로 다가온 것이 아니다. 개발 프로젝트가 하루아침에 보류되어 연구개발 과제 없이 몇 달씩 방황하며 직장을 그만 둘까라는 생각을 했던 시절도 있었다. 제 이름 석자는 뚜렷하게 새겨 놓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시련을 이겨내어 오늘날의 김치냉장고를 탄생 시켰다. 신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보통 몇 십억 또는 몇 백억씩 투자가 뒤따르게 된다. 이렇게 막대한 투자비를 들이는데도 불구하고 신통하게 제품이 개발되지 않을 때와 소비자의 반응이 없을 때, 제품에 문제가 발견될 때 무지무지 스트레스 받는다.

시스템을 제어하는 800여 가지의 제어방법에 관한 연구를 3년 여간 끌어 오면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면서도 굴하지 않은 결과 95년에 비로소 세계에 내놓을만한 최초 토종 전자제품 김치냉장고가 나왔다.

각종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위기감과 함께 인간의 힘은 무한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특별한 애착과 집념으로 개발한 제품이 시장에서 소비자로 하여금 사랑받는 순간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고통이 날아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가능에 끊임없이 도전하는가 보다. 누가 김치냉장고의 사회 파급 효과로 엄청난 고용 창출은 물론 시장전체 규모가 약 150만대로 약1조 시장으로 성장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느 공업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공고생의 희망이 되었다는 편지는 정말로 가슴 벅찬 보람을 느끼게 했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

연구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고유영역이 아니라고 본다. 특히 상품화를 연구하는 연구원은 무엇보다도 폭넓은 연구 기반이 생명이다. 특정분야의 지식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많은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익히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다양한 기술을 접해라. 모든 경험은 향후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둘째, 모든 제품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라. “왜 이럴까?, 왜 이렇게 하면 안될까?”를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 생각이 튼튼한 사람이 되기 바란다.

셋째, 새로운 아이디어는 메모하고 구체화를 시켜라. 가능하면 현실성이 있을 때까지 끈기 있게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넷째, 재미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라. 공부도 마찬가지 한 과목이라도 1등하면 자신감이 생겨 다른 과목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직접 해보고 다른 일에도 적용하기 바란다.

다섯째, 자신의 능력를 높게 평가하라. 자신을 믿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숨어 있던 잠재 능력들이 발휘된다.

실업계 고등학교나 이공계 대학, 명문대와 지방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자신이 얼마만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일하느냐가 중요하며,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

<정리=한효순 박사, 한국과학문화재단 객원선임연구원>

저작권자 2004-03-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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