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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5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현실 최상규 前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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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범죄는 지능화·흉포화되고 있다. 각종 범죄는 종래의 진술 또는 자백위주의 수사방식으로는 사건 해결은커녕 인권침해의 논란과 진술의 불확실성, 신빙성, 번복 등의 문제로 사건해결의 혼미를 초래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곧 과학수사의 부재 또는 미흡의 원인으로 돌려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과학수사는 증거 위주의 범죄사실 증명을 엄격히 총족시킴으로써 법관 및 수사관계자의 합리적, 과학적 심증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대 범죄는 강력범죄는 물론 유해식품, 환경오염, 약화(藥禍)사고, 마약사범, 교통사고, 화재사건 및 문서변조 등 다양화되고 흉포화, 지능화 되고 있다. 1980년대 초 사회적으로 크게 여론을 일으켰던 윤 노파 살인사건과 P여대생 살인사건 등은 아직도 미궁으로 남아있다. 이는 증거 위주의 수사방식이 도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자백이 왕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라는 묘한 유행어까지 낳게 했다.


이 사건들로 인해 자백, 진술위주의 관행적인 우리나라 수사방식이 급속하게 증거 위주의 과학수사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강력사건 등은 국민의 안녕과 질서, 복지 등 민생치안과 직결되어 있으며, 이들 사건해결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찰 수사의 과학화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경찰수사의 과학화라는 명제는 어제 오늘의 염원이 아니다. 항상 거론되어 왔으며, 그 중요성 또한 누누이 강조되어 왔다. 더구나 새천년을 맞이하여 지방자치 경찰제 도입이라는 국가적인 큰 과업이 눈앞에 닥친 이 시점에는 획기적인 과학수사의 발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과학수사 연구감정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바로 국과수의 근본적인 체질개선과 그 위상의 정립이 획기적으로 변화될 때만이 과학수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다.


과학수사의 혁명이라 할 만큼 획기적인 감정기법인 유전자(DNA) 지문 분석법이 개발돼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분석법으로 한 방울의 혈액이나 정액 또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을 대상으로 특정한 개체를 식별하여 범죄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DNA는 1940년대에 모든 생물종의 세포핵 안에 들어있는 유전자의 본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1953년에는 왓슨과 크릭에 의해 이중나선(二重螺旋)형의 구조를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1985년 영국의 라이체스터 대학 유전학 교수인 제프리(Jeffrey) 박사는 DNA 상에 소위 미니세터라이트(mini-satellite)라고 불리는 DNA 단편을 발견하였다. 이 부위는 극도로 개인차가 심하여 모든 개체에서 검출된 패턴이 마치 손가락의 지문과도 같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DNA 지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범죄수사에 지문과 함께 DNA 지문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87년 11월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성범죄에서 DNA 지문법을 적용, 범인에게 22년의 징역형 선고를 내리게 한 것이 최초였다. 이후 캐나다에서는 1989년 4월, 연금을 받는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발생한 연속 강간사건에서 용의자의 혈액과 현장에서 발견된 정액의 DNA형을 분석 대조한 것이 최초이다. 그 결과 둘의 DNA가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 용의자는 범인으로 확증되어 7년형을 선고 받았다.


국내에서의 DNA 지문분석은 1992년 5월 의정부에서 발생한 어린이 강간 추행사건을 해결한 것이 최초이다. 그 후 강력사건은 물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 괌에서 일어난 항공기 추락사고(1997), 화성씨랜드 화재사고(1999),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2003) 등 대규모 인명피해 사건에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등 DNA 지문법은 사회에 큰 공헌을 해 왔다.


최근에는 DNA 분석기법이 자동화되어, 자동염기서열 분석기를 이용하여 동시에 많은 종류의 유전자를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변화·발전하고 있다. 한편 이 밖에도 세포핵 밖 세포질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염기서열법에 의해 분석하는 모계(母係)유전 DNA의 분석, 부계(父系)유전인 Y 염색체상에 존재하는 Y유전자 좌위(Y-STR)등의 분석을 통한 개인 식별 및 신원확인 등이 발전되어 보편화 되고 있다.


향후 머지않아 동시에 수많은 유전자 종류의 분석이 가능한 획기적인 감정기법인 유전자 칩(DNA chip)의 확립 및 활용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다.


DNA 분석기법은 향후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발전과 더불어 무한한 변화와 개발의 여지가 많을 것으로 전망되며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범죄사건 해결에 시급한 ‘유전자자료 은행’의 가동이 아직 제도화 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실정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빨리 유전자분석 업무의 확대 발전으로 강력범·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DNA 형의 분석은 물론 인도적 차원에서 무연고 변사체나, 미아의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자료를 전산 입력·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체제가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수준 높은 체제로 발돋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전을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2005-03-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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