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우리가 몰랐던 젖산의 새로운 기능

[과학자의 연구실] [인터뷰] 염영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

‘젖산은 피로물질이다’

아마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젖산을 정의하는 방법은 이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젖산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면, 사람들은 젖산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국내 연구진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젖산의 새로운 기전을 규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염영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 유전체구조연구센터 박사팀이 젖산이 세포성장과 혈관생성에 중요한 신호물질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는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저널인 ‘셀(Cell)’ 지 4월 16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되기도 했다.

염영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구조연구센터 박사 ⓒ 염영일

염영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구조연구센터 박사 ⓒ 염영일

세포신호전달체계 조절하는 젖산

젖산은 급격한 운동을 했을 때 근육통증을 유발하는 피로물질로 알려져 있다. 근육세포에서 해당작용(glycolysis)으로 세포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분해될 때 생산 및 분비되는 물질로 전해진 것이다. 또한 산소가 적은 저산소 상황에서 해당작용이 활성화 될 때도 다량으로 생성되며, 세포 증식 활동이 활발한 암세포에서 이런 상황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람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물은 포도당을 완전히 산화(연소)시켜서 많은 양의 에너지와 환원력을 생산하고, 이로써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포도당이 완전 연소되지 못하고 해당작용(glycolysis)을 통해 불완전하게 분해되면서 부산물로써 젖산(lactate)이 만들어지죠. 저산소 조건은 세포가 혈관공급을 능가할 정도로 왕성하게 자라는 경우(태아의 발달이나 암)나 급격한 운동시에 근육세포에서 자주 나타나요. 이 때 젖산이 다량으로 생산·분비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젖산은 근육통증을 유발하는 피로물질로써 알려져 왔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젖산이 오히려 저산소 상태에서도 세포가 정상적으로 생존해 성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저산소 상태에 빠진 조직에 새로운 혈관공급을 유도함으로써 세포가 저산소 상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호물질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 기전으로써 젖산의 세포신호작용을 매개하는 유전자 ‘NDRG3’를 발견한 것이죠. 젖산과 ‘NDRG3’의 작용들이 암세포에서 일어날 경우 암의 성장과 진행을 촉진하는 강력한 신호가 되는 반면, 젖산의 생성이나 ‘NDRG3’를 억제할 경우 현저한 암 억제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연구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동안 저산소 상태에서 암세포에 의한 젖산 생성이 암의 악성화와 관련 있다는 사실이 일부 보고된 바 있으나, 암세포에서의 젖산의 역할과 세부적인 작용기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젖산이 단순한 피로물질이나 노폐물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최근 들어 여러 연구에서 보고 된 바 있어요. 실제로 몸에서 만들어진 젖산이 혈액을 타고 간으로 들어가 새롭게 포도당으로 재생된다는 것은 상당히 오래 전에 알려졌고, 최근에는 젖산이 혈관 생성과 관련이 있다거나 면역세포의 기능을 억제한다거나 뇌와 지방조직의 기능을 조절한다는 사실도 보고됐습니다. 하지만 젖산이 어떻게 이러한 기능들과 연관돼 있는지를 밝혀줄 신호전달체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를 연구하기 위해 저희 실험실은 젖산 그 자체보다 암에서 흔히 나타나는 저산소 조건에서 세포 반응이 어떻게 조절되는지에 관심을 뒀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죠.”

염영일 박사팀은 암세포에서 저산소 반응을 조절하는 새로운 유전자를 찾는 실험을 통해 수십 개의 후보유전자를 찾았다. 실험 도중 수십개의 후보유전자 중 ‘NDRG3’ 유전자가 매우 흥미로운 특성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NDRG3 단백질이 기존 저산소 반응의 마스터 조절자(master regulator)로써 잘 알려진 HIF 단백질처럼 산소에 의해 발현이 조절되고, 산소가 부족한 저산소 조건에서는 세포내에 다량으로 축적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또한 NDRG3가 HIF에 대비되는 새로운 저산소 반응 조절인자임을 알게 된 것이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저산소 반응의 다양한 현상들이 HIF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면이 매우 많았고, 또 HIF만 억제해서는 저산소 현상과 관련된 질병(고형암 등)을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NDRG3는 HIF만을 표적으로 하는 암 치료법의 한계를 극복하게 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젖산 및 NDRG3 작용에 대한 흐름도 ⓒ 한국연구재단

젖산 및 NDRG3 작용에 대한 흐름도 ⓒ 한국연구재단

많은 난관도 끈질긴 인내로 버텨내

염영일 박사팀이 젖산의 새로운 기전을 발견할 수 있던 것은 NDRG3와 HIF의 특성들을 비교하는 작업을 시작하면서다. 연구팀은 NDRG3의 특성에 대한 논리적 당위성을 따라가던 중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NDRG3의 연구를 깊이 있게 진행해가던 도중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어요. NDRG3가 HIF처럼 산소에 의해 조절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산소 조건에서 HIF와는 상당히 다르게 조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가 산성이나 알칼리 조건에서 수소이온의 농도를 감지하듯 NDRG3는 젖산과 결합하는 성질을 통해 저산소 조건에서 젖산의 생성을 감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결과 젖산 의존적으로 세포 내에 축적돼 세포에 성장 및 혈관공급을 위한 신호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현상들은 저산소 조건에서 만들어진 젖산이 NDRG3 단백질을 통해서 세포신호를 일으키고 그 결과 세포가 저산소 상황을 극복하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악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체의 오묘한 자기방어 기전이라고나 할까요.”

이번 연구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던 비결을 묻자 염영일 박사는 “끈질긴 도전과 인내, 그리고 열정”이라고 답했다. “무엇보다 제1저자가 오랜 기간 동안 힘든 난관을 인내했다”는 그는 “NDRG3와 HIF의 차이점에 주목하고 이를 풀어내는 게 중요했는데 연구진 모두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이 연구만 약 7~8년 진행했어요. 연구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실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난관에 부딪힌 적도 많았습니다. 연구 방향성을 찾지 못해 마음 속에 큰 갈등을 겪은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모두 합심한 결과 잘 극복할 수 있었어요. 연구 막바지에는 젖산에 관한 다른 연구 논문들이 보고될 때마다 가슴을 졸이기도 했어요.(웃음) 그 기억들을 잊을 수가 없네요.”

연구를 통해 NDRG3가 이 문제를 풀어줄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는 유추가 나오자 연구팀 모두가 환호 했다. 무엇보다 NDRG3가 HIF와는 다른 기전에 의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기전으로 저산소 반응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의 흥분은 매우 컸다.

“젖산과 관련된 연구는 마치 정글이나 동굴을 탐험하는 과정 같았어요.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과 약간의 직감으로 조금씩 더듬어 나가야 했죠. 그만큼 막막한 가운데 진행했지만, 그래서인지 더 뿌듯합니다. 연구를 잘 활용한다면 근위축증 환자나 노인성 근육 약화 등 근 질환자의 근육증대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근육노화와 관련된 연구와 젖산균 만성감염과 관련된 질환의 연구에도 활용가치가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이번 연구를 계기로 젖산이 새롭게 조명되기를 바랍니다. 그 결과들을 관련 질병의 치료제 개발이나 건강 증진법 개발 등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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