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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프 화합을 의미하는 ‘콩코드’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

지난 3월 2일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하늘을 처음으로 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금은 콩코드를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기에 이 날은 한낱 ‘과거의 오늘’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직도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놀라운 성능을 발휘한 비행 기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완벽한 아름다움,극단적인 성능을 지닌 사상 최초의 상용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 위키백과

완벽한 아름다움,극단적인 성능을 지닌 사상 최초의 상용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 위키백과

콩코드는 영어로 ‘Concorde’ 이다. ‘Concord’가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콩코드는 영국과 프랑스가 협력해 만든 다국적 비행기이지만 그 이름은 프랑스식 이름인 ‘Concorde’다. 오늘은 콩코드의 탄생과 그 이름에 관한 사연을 알아보자.

이웃나라 치고 오랜 선린(善隣)인 경우는 쉽게 찾기 어렵다. 해협을 마주한 두 나라지만 이 두 나라만큼 역사적인 앙숙도 없다. 14~15세기에는 ‘100년 전쟁’을, 18세기에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도권을 두고 ‘프렌치-인디언’ 전쟁을 벌였으며,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전쟁을 치를 때 프랑스는 영국이 미워 미국을 지원했다. 프랑스 혁명 후에 집권한 나폴레옹은 영국을 ‘제재국가’의 목록에 올려 유럽에서 고립시키려 했다.

이후로도 모든 면에서 껄끄러운 경쟁자 혹은 만만찮은 호적수가 되었던 두 나라는 20세기에 있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는 독일에 대항하는 혈맹이 되었다. 그런 두 나라가 전후에 손을 잡고 시작한 대담한 프로젝트의 결과가 바로 콩코드였다. 그런데 이번에 두 나라의 공공의 적은 동쪽이 아닌, 대서양 서쪽 너머의 신흥 강대국 미국이었다.

콩코드. 뉴욕 인트래피드 항공우주박물관. ⓒ 박지욱

콩코드. 뉴욕 인트래피드 항공우주박물관. ⓒ 박지욱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은 전승국이나 패전국이나 할 것 없이 처참한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야 했다. 반면에 대서양 건너에 있는 미국은 달랐다. 본토는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았고, 유럽 국가들이 물고 뜯으며 싸우는 동안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전쟁을 치르며 과학, 기술, 산업이 급성장했는데 항공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미국은 전후에 급성장한 항공 여객 시장의 일인자가 되었다. 전쟁 중 군수품과 병력을 싣고 대서양 하늘을 날아갔던 미국 수송기들은 전쟁이 끝나자 미국 민간 항공사로 옷을 갈아 입은 후 유럽으로 날아갔다. 이 시절, 미국인들은 돈을 모아 유럽의 명소를 유람하는 것이 꿈이었다.미국인들은 미국 항공사의 티켓을 끊고, 미국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실제로 1960년까지 국제선에 취항하는 여객기는 모두 미국 회사인 보잉, 더글러스, 록히드의 제품이었다.

그러자 영국이 먼저 미국에 맞서 고개를 들었다. 이제 영국도오랜 병치레를 끝냈다는 의미로 사상 최초의 제트여객기인 ‘D.H. 코멧(Comet)’을 띄었다. 너무 빨랐던 코멧은 공중 분해되는 대참사를 겪었다. 미국산 대형 프로펠러 여객기를 순식간에 뛰어넘고 국가적 자존심을 살리고 싶었던 영국 항공기술의 꿈은 ‘이카루스’의 신화를 그대로 따라갔다.

영국의 도전에 미국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영국이 실패한 제트여객기를 미국도 곧 내놓았고, 1958년 미국 보잉의 ‘B707’과 더글러스의 ‘DC-8’ 같은 제트여객기가 나오면서 11시간의 비행 시간을 7시간으로 줄이며 대서양을 건넜다. 더 많은 미국 관광객들이 유럽으로, 특히 프랑스로 쏟아졌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시켜준 미국이 고맙기는 했지만 엄청난 미국인들이 몰려와 하루 5달러면 충분한 싼 값으로 프랑스를 헤집고 다니고, 미국 호텔 체인이 곳곳에 들어서고, 그러면서 프랑스가 서서히 미국화 되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뭔가 멋진 방법, 그것도 미국이 생각지도 못한 프랑스다운 세련미로 미국에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증오하는 이웃, 영국에 솔깃한 제안을 했다. 제트여객기를 뛰어넘는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해 유럽의 자존심을 세우자고.

사실 초음속 여객기는 영국,프랑스가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쉬드 아비아시옹(Sud Aviation)사는 ‘슈퍼 까라벨(Super-Caravelle)’, 영국의 BAC(British Aircraft Corporation)사는 ‘브리스톨223(Bristol 223)’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미국도 나중에는 소련이 ‘Tu-144’라는 초음속 여객기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B2707’을 개발하려 했지만 경제성 이유로 중단한다).

하지만 엄청난 개발비가 발목을 잡았는데 두 나라가 공동 개발하게 되면서 추진력을 얻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국가 차원의 조약을 맺었고(1962년), 개발비, 제작, 구입 물량도 정확히 반반으로 나누었다.

드디어 시제기인 콩코드 1호가 50년 전인 1969년 3월 2일에 프랑스 툴루주에서 이륙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 등을 해결하고 실전에 배치하는 데는 다시 7년이 걸렸다. 콩코드는 시험용을 포함해 모두 20대를 만들었고, 그중 14대가 에어프랑스(AF)와 영국항공(BA)의 로고를 달고 승객을 실어 날랐다.

콩코드 내부.음속의 2배,순항고도는 17km이다.시애틀 항공우주박물관. ⓒ 박지욱

콩코드 내부.음속의 2배,순항고도는 17km이다.시애틀 항공우주박물관. ⓒ 박지욱

두나라가 손을 모아 만든 작품의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 지는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프랑스도 합작 사업인 이상 ‘슈퍼 까라벨’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가능하면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같은 뜻을 가지며, 철자도 같으면 금상첨화였다. 그런 이름이 뭐가 있을까?

영국에서는 ‘얼라이언스(Alliance)’, ‘유로파(Europa)’ 등을 후보로 올렸고, 드골 대통령은 ‘콩코드’를 처음 입에 올렸다(1963년). 영국과 프랑스의 제작사들도 콩코드를 마음에 들어했다. 콩코드의 뜻이 ‘화합’이니 두 나라의 오랜 역사를 고려하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이름이 아닌가? 더구나 영어와 프랑스어의 철자도 비슷했다!

하지만 철자는 비슷할 뿐이지 분명히 달랐다. 영국인들이 보기에는 ‘e’가 하나 더 붙은 콩코드는 프랑스어였다. 영국인들은 ‘e’가 붙은 콩코드는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프랑스제’라는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영국에서는 ‘e’를 빼버리면 이것이 어디 화합의 정신에 맞는 일인가? 이미 프랑스어가 많이 침투한 영어가 양보해야 할까?

1967년 12월에 프랑스의 툴루즈 공장에서 콩코드 1호기 시제품이 나왔을 때 이 자리에 참석한 영국 기술부 장관 앤서니 벤(Anthony W Benn)은 공개적으로 ‘e’가 있는 콩코드를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다만 영어 ‘Concord’의 마지막에 붙은 ‘e’는 탁월함(exellence), 잉글랜드(England), 유럽(Europe), 협약(entente)을 뜻하는 의미로 붙는 것이라고 했다.

영국에서는 이 발언이 이런저런 ‘불화’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영국도 ‘e’있는 콩코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관사(a, the) 없이 Concorde 로만 부른다. 영국이 만든 최초의 제트여객기 코멧은‘the Comet’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Concorde를 고유명사로 보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콩코드. 시애틀 항공우주박물관. ⓒ 박지욱

콩코드. 시애틀 항공우주박물관. ⓒ 박지욱

콩코드의 운명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양국의 ‘화합’으로 만든 아름다운 여객기였지만 치솟는 기름값과는 ‘화합’하지 못했고,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다른 항공사들의 지갑을 열지 못했다. 소음 문제는 땅 위에 사는 인간들에게, 엄청난 고도에서 내뿜는 매연은 오존층과 불화를 일으켰다. 2000년에 대형 참사를 겪은 후 2003년에 고별비행을 마지막으로 운항 27년 만에 날개를 접고 항공 역사의 무대에서 은퇴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9년에 인류는 달에 발자국을 찍었고, 지금도 건재한 점보 B747을 띄웠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콩코드를 띄웠다. 경제성과 생산성의 함수와 그래프를 우선하는 21세기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시대가 바로 1960년대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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