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감이 감도는 강원도 최전방 동부전선. 야간 조명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철책선 주위에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빛과 함께 간간이 북한의 선전방송이 들릴 뿐 새벽의 고요함에 휩싸여 있다. 시계 바늘이 3시를 가리키자, 초병들의 영롱하던 눈빛은 사라지고, 눈꺼풀은 이내 무거워졌다.
어느새 구름이 몰려오더니 별빛과 달빛마저 가려버렸다. 멀리서 뇌우가 포성처럼 들리더니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했다.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자 졸음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초소 앞의 철책선 너머에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으나 초병들은 고라니와 같은 산짐승들의 출몰로 오인하는 분위기이었다.
이때 잠들지 않는 사냥개처럼 풀숲에서 눈을 번뜩이며 이상 징후를 노려보는 물체가 있었다. 갑자기 이 물체에서 빨간 레이저 광선이 어둠을 뚫고, 똑바로 앞을 향해 뻗어나갔다. 이어 서치라이트가 주변을 대낮같이 비추는 가운데 중기관총이 적막을 깨트리며, 불을 뿜었다.
몰래 철책선을 넘으려던 적들은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숲속에 숨어있던 물체가 요란한 엔진 음을 내면서 날쌔게 적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 물체의 정체는 이동형 전방감시로봇. 365일 24시간 잠들지 않는 이 로봇은 이동 물체를 스스로 감시하고, 표적을 추격하며 사격을 하도록 설계됐다.
이런 로봇들을 견마로봇이라고 부른다. 지난 10일 국방부에서 열린 무기체계전시회에서는 한국형 견마로봇이 선을 보였다. 무선 제어가 가능한 길이 2.8미터, 무게 1톤의 이 로봇은 레이저 측정기와 열상카메라를 탑재, 야간에 적을 감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2.7mm 중기관총, 40mm 유탄 발사기 등으로 무장한 이 차륜형 로봇은 도망가는 적을 빠르게 쫓아가서 엄청난 화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 방탄 기능을 갖고 있어서 부상병을 싣고 이동이 가능하다.
도로에서만 활용이 가능한 차륜형 견마로봇 대신에 산악지대나 바윗길에서도 이동하고, 무거운 짐도 운반하는 다족형 견마로봇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한국형 ‘견마로봇’ 개발 착수
견마로봇의 임무 중의 하나가 바로 집 지키는 개의 역할이다. 견마로봇의 하나인 정찰감시로봇은 펄스 파형의 적외선을 상시 주위에 방사시켜 반사된 적외선의 양에 따라서 이상 여부를 탐지해낸다.
맨 꼭대기에 장착된 안정화 감시장치는 각종 영상정보를 무선으로 근처에 있는 지휘통제차량의 중앙처리장치로 보낸다. 군 관계자는 “이 지휘통제차량 내 원격운영장치는 동시에 4대의 견마로봇을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상 물체가 중앙처리장치에 감지되면 레이저 거리 측정기가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레이저 장치는 빛을 공진(모든 물체는 ‘고유주파수’를 갖고 있는데 이 고유 주파수와 같은 에너지의 주파수가 더해지면 물체가 무한 진동하게 된다)시켜 만든다.
이 레이저빔의 주사를 통해 거리와 위치가 감지되면 GPS 항법장치와 지형감지센서를 이용해 주ㆍ야간에도 주행할 수 있고 적을 추격해 제압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견마로봇의 경우 굴곡이 심한 지형이나 참호, 1m 이하의 장애물도 통과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암휠(arm-wheel)형 로봇 차량의 경우, 계단과 같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다리를 들어 올려 계단에 올려 놓고 바퀴를 회전·구동시켜 통과할 수 있다. 이 로봇 차량이 불균일한 지형을 주행 시 암휠에 다양한 충격이 전달되는데, 이는 현가장치에 의해 흡수된다. 차체에 가해지는 충격량에 정비례해 현가장치에서의 길이가 변화된다. 총 4개의 현가장치가 차체 기울기에 맞게 다른 비율로 조절돼 자세가 제어된다.
차륜형 견마로봇의 경우, 바퀴에 가해지는 외력을 상쇄하는 반대 모멘트를 발생시키는 탄성부재를 갖는 현가장치를 장착한 것도 있다. 이런 장비는 차륜형 견마로봇이 험한 야지에서 자유로운 작전을 가능케 한다.
눈 덮인 산에서 보행 가능한 로봇 개발
기원전 3세기경 눈 덮인 알프스 산맥. 대병력과 거대한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던 한니발 장군은 얼어붙은 알프스 한가운데서 길이 막혔을 때, “우리는 길을 반드시 찾을 것이다 아니면 길을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군했지만 알프스 산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지금도 진격하는 부대는 거대한 산맥을 넘기 위해 나귀, 말, 코끼리 등의 짐승을 이용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달라진 미래의 전장에선 견마로봇이 무거운 짐을 높은 산 위로 운반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개발되고 있는 로봇이 바로 ‘족형 로봇(Legged Robot)’이다. 인공 눈, 초소형모터, 촉각센서, 인공근육 등의 부품으로 이뤄진 이 로봇은 높고 험한 빙판 바윗길을 무거운 짐을 싣고도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미국의 보스톤 다이내믹스 사는 ‘빅독(Big Dog)’이라는 나귀를 닮은 족형 로봇을 개발해 선보였다. 옆에서 사람이 발로 차도 중심을 잡는 이 로봇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이후 황소만한 크기의 ‘알파독(Alpha Dog)’은 4족 보행을 하며 180kg의 짐을 싣고 32km나 이동할 수 있었다. 6족 보행의 렉스(RHex) 로봇은 진흙, 모래, 언덕, 계단 등 불규칙한 지면이나 물속에서도 운행이 가능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족형 로봇의 구동은 열악한 지형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전달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다. LQR 제어 기법을 이용한 로봇다리의 다중입력 유압시스템 제어를 통해 속도가 바뀌어도 관성이나 토크(회전력) 등에 대해 균형 조정 능력을 갖고 있다.
유압시스템을 통해 액추에이터(Actuator)는 피스톤을 왕복운동시키고 소형 모터의 회전운동을 통해 족형 로봇을 구동시킨다. 각각의 다리는 서보밸브로 공급되는 유체의 압력에 의해 피스톤에 작용하는 힘을 조절해 움직임을 제어한다.
우리나라도 미래의 전장을 위한 전투 로봇 개발에 이미 착수했다. 지난 2006년 11월 20일 충남 계룡대에 야전군 실무자와 국방과학연구소의 싱크탱크들이 모여 달라진 미래 전투 환경에 활용될 군사용 로봇 기술개발을 논의했다.
이날 논문 발표 이외에도 8개 업체가 생산한 23종의 로봇이 실외에 전시됐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단연 다족형 견마로봇. 기술이 업그레이드된 견마로봇은 오는 10월 1일 거행되는 건군 65주년 기념식날 국민들에 선보일 예정이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3-09-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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