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만화에서 등장할 법한, 영국군의 퍼니 전차

[밀리터리 과학상식] 상륙군의 선봉을 개척한 기묘한 차량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유럽 대륙은 거의 전부가 추축국의 손에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연합국은 이미 이때부터 유럽 본토에 대한 상륙 작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런 연합국이 1942년 8월 19일에 프랑스 디에프에 실시한 디에프 상륙 작전은 나중에 반드시 진행할 본격 유럽 본토 상륙 작전의 예행연습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디에프 상륙 작전은 대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육해공군 통틀어 10,500명(그중 상륙군은 6,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지만, 전사, 부상, 포로 및 실종자를 합쳐 4,100여 명에 달하는 괴멸적인 인명피해를 낸 채 철수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디에프 상륙 작전의 쓰디쓴 실패를 통해 연합군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중에는 장차 상륙할 프랑스 해안의 지형지물과, 독일군의 방어 설비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었다. 이에 1943년, 영국군 총참모장 앨런 브룩 장군은 퍼시 호바트 장군에게 이 과제를 수행할 특수 차량 개발 및 승무원 육성 임무를 맡겼다. 호바트 장군은 기존의 여러 군용 차량을 개조한 차량들로 이에 답했다. 개조의 대상 차량들은 특히 영국군과 미군의 주력 전차이던 <처칠> 전차와 <셔먼> 전차가 주류였다.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호바트 장군이 개발한 특수 차량들은 하나같이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괴상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 차량들에는 퍼니(Funny: 우스운) 전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처칠 AVRE와 셔먼 DD 전차는 그 파격적인 외모와 성능 면에서 자세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공병용 돌격차량 처칠 AVRE

AVRE는 공병용 돌격 차량을 뜻하는 영어 명칭 Assault Vehicle Royal Engineers의 약자다. 영국군의 주력 전차 처칠의 차대를 이용한 공병 차량이다. 일단 이 차량은 주포로 일반적인 대전차포가 아닌, 구경 290mm 박격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이 포의 유효 사거리는 약 140m에 불과했지만 거기서 발사되는 18kg 짜리 유탄의 위력은 독일군의 방어 설비나 도로 장애물 제거에 가히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처칠 AVRE 전차에 장착되었던 290mm 박격포 ⒸIWM

그 외에도 이 차량은 다양한 특수 장비를 실을 수 있었다.

우선 <보빈>이라는 캔버스 가설 장비가 있었다. 폭 3m의 캔버스를 지면에 까는 장비다. 상륙 지역의 토질이 연약할 경우 차량들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는데, 이 캔버스를 깔고 그 위로 다니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다.

취약지에 캔버스 카페트를 까는 보빈 ⒸIWM

초호용 장비인 <패신>도 있었다. 사실 이건 장비라고 말하기는 좀 낯간지러운 것이, 철사로 묶은 통나무 묶음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의 대전차호나 도랑 등을 만나면 이 패신을 그 속으로 굴려넣고, 그 위로 차량이나 보병이 통행할 수 있었다.

<패신>으로 감당이 안 되는 폭의 장애물 돌파를 위한 길이 9m짜리 강습 교량 <스몰 박스 거더>도 있었다. 30초만에 가설이 가능했다. 더 큰 교량을 가설할 수 있는 ARK 전차는 아예 차량의 일부를 교량으로 쓰는 방식이었다.

쇠사슬에 매달린 철구를 휘둘러 지뢰를 제거하는 마인 플레일을 단 셔먼 전차 ⒸIWM

호바트 장군은 지뢰원 돌파 장비도 만들었다. 땅을 뒤집어 파서 지뢰를 캐내고 폭발시키는 쟁기형 지뢰원 돌파 장비인 <불스혼 플로>까지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지뢰원 돌파 장비인 <마인 플레일>은 여러 의미에서 혁신적이었다. 이 장비는 중심 축에 쇠사슬로 여러 개의 철구가 매달린 형태다. 작동시키면 전차의 엔진 동력 일부를 받은 중심축이 고속으로 회전하고, 원심력이 작용해 쇠사슬이 쫙 펴지면서 철구를 땅에 휘둘러 부딪친다. 철구가 지뢰를 건드리면 폭발하는 것이다. 이들 지뢰원 돌파 장비들은 다른 차종에도 사용이 가능했다.

그 외에도 장애물 제거용 유선 조종 폭약 <더블 어니언>도 장비할 수 있었다. 30m 거리를 두고 격발이 가능했다.

스몰 박스 거더 교량을 가설하는 처칠 AVRE 전차 ⒸIWM

해안 상륙작전을 위한 셔먼DD 전차

셔면DD는 미제 M-4 셔먼 전차를 개조한 이 차량은 상륙 작전에 걸맞은 수륙양용 전차다. 상륙함을 출발한 후 독립적으로 해상을 항행, 바로 상륙해 상륙군에게 화력 지원을 할 수 있다. 차체 중량이 30톤에 육박하는 셔먼 전차를 물에 띄우려면 그만한 부력이 있어야 한다. 이 차량은 차체 전체를 배의 선체 모양으로 둘러싸는 방수 캔버스(일단 육지에 올라오면 시야 및 사각 확보를 위해 접어버릴 수도 있다)를 설치해 충분한 부피를 확보, 부력 문제를 해결했다.

셔먼 DD 전차. 스크린을 내린 모습 ⒸIWM

수상에서의 추진은 엔진과 연결된 스크루 프로펠러를 사용한다. 명칭인 DD는 이러한 추진 체계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중 구동을 뜻하는 Duplex Drive의 약자다. 일견 괜찮은 발상이었지만 문제점도 컸다. 캔버스가 전개된 상태에서는 전차의 주포를 사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캔버스는 방탄 재질이 아니기 때문에 적의 공격으로 터지면 물이 새고 만다. 못 퍼내면? 침몰이다.

셔먼 DD 전차의 스크린을 올린 뒷모습. ⒸIWM

 

 

혁신적 아이디어, 전후에 여러 공병 차량에 영향을

그 외에도 호바트 장군은 다양한 <퍼니 전차>들을 만들어냈다. 처칠 전차에 화염방사기를 탑재한 화염방사전차 <크로커다일>도 있었다. 미국제 <그랜트> 전차에 탐조등을 탑재한 조명 전차도 있었다. 그러나 그 혁신성 면에서 위의 두 차량을 능가할 물건은 별로 없었다. 이들 퍼니 전차들은 모두 영국 육군의 제79기갑사단 소속으로, 필요에 따라 다른 연합군 부대에 파견을 보내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스크린을 펴고 도하 중인 브래들리 장갑차 ⒸNARA

“최고의 칭찬은 모방”이라던가? 퍼니 전차들이 실전에서 보여준 성능에 대해서도 이 말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 퍼니 전차들의 컨셉을 모방해 만들어진 차량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스몰 박스 거더는 오늘날 여러 가교 전차의 원형을 제시했다. 미군의 M-728 전투공병전차는 처칠 AVRE처럼 대구경 단포신의 165mm 구경 주포를 탑재했다. 독일 연방군은 M-48 전차에 마인 플레일을 탑재해 지뢰 제거용으로 운용하고 있다. 미군의 브래들리 장갑차는 셔먼 DD 전차처럼 수상 주행용 스크린을 장비하여 수륙양용 성능을 갖추었다.

독일 연방군의 마인 플레일식 지뢰제거차량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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