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환자라고 하면 주로 중년 남성을 떠올리지만 최근엔 여성 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또 20대와 30대 젊은 여성들 가운데에서도 중증 알코올 중독 환자가 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전문의들은 “젊은 층의 경우 알코올 중독을 병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위험한 현상”이라며 “술을 권하는 사회분위기와 ‘술을 잘 먹는 것도 능력’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입원 환자 20%가 여성경기도 의왕에 위치한 알코올 중독 전문 치료병원에는 현재 198명의 입원환자가 있는데 이중 20%에 달하는 40명이 여성이다.
명절 전후로 입원 환자가 줄어드는 특징을 고려할 때 결코 적은 수가 아닌데 20대가 3명, 30대가 8명으로 20~30대 여성이 27.5%에 달해 충격적이다.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병원의 이종섭 병원장은 “계절성 우울증 등의 이유로 봄가을에 입원환자가 가장 많은 편인데, 입원환자를 기준으로 20대와 30대 여성의 비율이 53%에 달한 적도 있다”며 “미혼 여성의 경우는 아무래도 병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만큼 숨겨진 환자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여성들이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까지 한 이유는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술자리가 계속되고, 혼자 있을 때조차 술을 놓지 못해 결국 병원까지 왔다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을 할 정도의 여성이라면 어려운 가정형편 등 특수한 상황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만난 여성들은 너무나 평범했다. 또 몇몇 여성은 연예인처럼 예쁜 얼굴과 큰 키로 눈길을 끌었는데 특별한 사연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다보니 병원신세까지 지게 됐다”고 말했다.
30살의 또 다른 여성은 “밥 대신 술을 먹을 때가 많았는데 많이 먹으면 한 끼 정도 먹고 나머지는 우유나 과자로 간단하게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며 “술 때문에 속이 마비가 되어 배고픈 것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 병원장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알코올 중독 환자가 늘어나는 데에는 저알콜 소주와 연예인의 술 광고가 큰 영향을 미친다”며 “술 마시는 것을 편하게 해 전체 알코올 흡수량을 늘리고 술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만난 36살의 한 여성은 “직장 상사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 은근히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술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먹게 했고 그런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술을 안 먹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고백했다.
한편 병원에서 만난 입원 여성 환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술을 자주 마시는 것이 병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주변에 워낙 많은 여성들이 술을 먹기 때문에 치료를 생각한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산다는 34살의 한 여성은 “술을 자주 마실 때는 술이 깰 시간조차 없었지만 그것이 병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힘든 일이 많아 술을 마시다 보니 술만 깨면 또 힘들어지고, 술을 먹어야 잊어지니까 계속해서 술을 마셨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 여성은 “창피해서 혹은 자신의 지위 때문에 자신의 알코올 중독을 숨기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여러 명 있는 것 같다”며 “주변에서 말려도 왜 그렇게 그 때는 술을 끊지 못했는지 아픈 후회가 밀려온다”고 고백했다.
과음하는 여성, 불임될 수도
특별한 이유 없이 임신이 안 돼 고민인 가정은 부부가 함께 술을 끊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알코올자체가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의 균형을 깨뜨리는데 특히 여성은 임신 및 생리를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호르몬 불균형에 도달할 수 있어서이다.
병원에서 만난 한 37살 여성은 “결혼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임신이 되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술과 담배를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병원의 전용준 원장은 “특히 술을 마시면 프로락틴이라고 하는 유조분비 호르몬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것을 인체는 임신을 한 상태로 인식을 하게 되기 때문에 생리가 없어지게 된다”며 “특히 여성은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효소가 남성의 절반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똑같은 양의 술을 먹었을 때의 피해가 남성보다 2배 이상이다”고 말했다.
전 원장에 따르면 이는 불면증이나 피부미용, 골다공증의 위험을 극도로 높일 수 있다.
소득 증대와 늦은 결혼, 주류업체의 적극적 마케팅 등으로 젊은 여성의 술 소비가 느는 것은 세계적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유달리 급격한 증가세를 보인다. 전 세계에서 여성의 음주량의 늘어나는 속도를 비교한 결과, 한국 여성들의 음주 증가량은 전 세계 평균의 28배 이상으로 보고됐다.
전 원장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여성의 고 위험 음주는 하루 소주 5잔”이라며 “소주를 하루 2잔 이하로 먹고, 음주 뒤에는 적어도 사흘은 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 원장은 특히 “다이어트를 하거나, 임신을 계획 중인 여성은 술을 더욱 멀리하라”고 강조했다.
우울함 달래기에 술 보다는 취미활동이 더 좋아
우울할 때마다 술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러한 습관이 자살위험을 증가시킨다. 특히 우울증 약을 복용중인 환자의 경우 더욱 그러한데 약물이 알코올 성분 때문에 부작용을 일으켜 충동성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병원장은 “우울증 약이나 안정제를 먹는 이유는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치료하기 위해서인데 술을 마시면 오히려 우울한 감정이나 불안한 감정, 충동적인 감정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선진국에서는 ‘우울증 약을 먹을 때 술을 먹으면 우울증이 악화되고 자살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철저히 금지하라는 경고문을 약품에 넣고 있다”고 설명했다.
혼자 있을 때 술 마시는 습관도 자살 위험을 높일 수 있는 나쁜 습관이다. 술의 양을 조절하기 어려울 뿐더러 우울한 마음이 점점 심해져 충동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병원장은 “혼자서 자주 술을 먹는 것은 이미 알코올 의존도가 위험 수준을 넘어선 것일 수도 있다”며 “술을 마시면 순간적인 위안을 받는 듯 느낄 수 있지만 고통을 잠시 뒤로 미룰 뿐인 만큼 술을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데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해 가장 쉬운 술에 기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습관이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만들고, 술이 우울증을 더 악화시키면서 더 많은 술을 원하게 하고, 술에 더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우울증과 술 중독이 더욱 악화되는 것이다.
이 병원장은 “우울할 때 술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면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뒤로 제쳐둘 뿐 아니라 우울한 마음을 더욱 증폭시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높아진다”며 “우울한 기분이 오래 갈 때는 술 보다는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거나 건전한 취미생활을 통해 기분 전환을 하는 게 정신이나 육체 건강상으로도 훨씬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 박미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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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2-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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