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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학기술인의 리더십 실력인가, 네트워크인가? 한국과 영국, 여성의 연구 리더십 성장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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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과학기술분야에 진출하여 활동을 시작하고 또한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 마리 퀴리가 방사능 원소를 발견하여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으며 파리 대학의 여자교수가 된 이래로 여성이 과학기술분야에 참여하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지만, 아직도 대학에서의 여자교수 비율은 영국이나 한국에서 매우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과학 연구 분야에서 여성의 리더십은 왜 이리 약한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제2차 한영포럼의 제2세션에서는 ‘연구 활동에서의 여성의 리더십’을 주제로 과학기술공학(SET) 분야에서의 여성의 리더십이 실력 때문인지 아니면 네트워크 부재 때문인지 혹은 전반적인 사회문화 때문인지를 두고 각각 영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리더들의 발표가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먼저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런던대학교 약학과 교수가 되었고 ‘미국 뉴 인베스티게이터 상(American New Investigator Award)’을 수상했으며 현재 암치료를 위한 나노신약개발연구에 앞장서고 있는 제오마 유체부(Ijeoma Uchegbu) 교수의 발표와 한국의 대표적인 생명과학자로 BT분야를 도입하고 발전시키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여성과학기술인 리더십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나도선 울산의대 교수 겸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의 발표를 소개한다.


“여성과학자 롤 모델, 멘토가 정말로 필요하다”


짧은 머리가 매력적인 제레오마 유체부 교수는 “여성의 자리는...”이라는 제목 하에 먼저, 한 연구자가 연구 분야의 리더로 성장하는 일반적인 과정을 소개했다. 영국에서는 보통 초·중등학교를 마치고 만 23세가 되면 대학을 졸업하며, 27세 정도면 박사과정을 마치게 되고 30세까지는 포스트 닥 과정을 거쳐서 35세 정도가 되면 대학연구소의 정식 연구원으로 취직을 하다가 대략 40세가 되면 정식교수가 되어 연구실을 이끌며 선도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여성의 경우도 예외가 있을 수 없고 일반적으로는 동일한 패턴을 따르게 된다. 하지만 유체부 교수는 “여성들은 정해진 패턴의 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심각한 누수현상(leaks)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수능시험과 같은 GCSE 제도를 거쳐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교과목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3개의 과목을 선택하여 ‘A 레벨’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이것의 점수가 대학 진학의 필수사항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수학 과목을 선택하여 ‘A 레벨’ 시험을 통과하는 학생의 비율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의 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공계 대학으로의 진입을 보장하는 ‘A 레벨’에서 이미 여학생들의 누수현상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초·중·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에서의 성취도가 거의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막상 이공계 분야로의 초기 진입에서부터 여성은 심각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학력이 높아갈수록 이공계 진출경로에서 여성의 누수현상은 점점 더 심해집니다. 예를 들면, ‘A 레벨’을 통과한 학생들 중에서 공학 분야로 진출하는 여학생은 남학생의 20%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학 분야에 진출한 대학생들 중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여학생은 남학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유체부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찾았다. 제일 먼저 “학교과학교육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과학교육이 일상생활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데, 여학생들은 그 내재된 특성상 가정생활과 연관된 문제에 더욱 친밀도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과학교과 시간에는 그러한 것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 그녀는 “이공계로 진출하는 경우에 어떤 직업들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여학생들은 체계적인 안내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신도 과학자로 성장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제대로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유체부 교수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여학생들이 보면서 따르고 싶은 롤 모델의 여성과학자들이 충분치 않다는 것, 그리고 어려울 때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현재 영국에서는 학위를 취득한 여성연구자들이 대학교수로 진입하기를 많이 꺼려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한편으로는 대학의 문화, 연구계의 문화, 더 나아가서는 채용의 문화가 아직도 여성친화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그러한 문화 때문에 아예 도전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오늘날 영국 대학에서는 화학과 교수 중 3%, 물리학과 교수 중 4% 그리고 수학과 교수 중 2%만이 여성입니다. 이는 대학교수로 진입하게 되는 40세 전후의 여성의 상황이 무척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이 시기에 결혼과 함께 육아를 책임지게 되며 부모까지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연구에 전념하면서 남성중심의 경쟁사회를 헤쳐 나가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30∼40세 때 가장 활발하며,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이 35세 이전에 나왔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는 굉장히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성연구자들이 성장과정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격려를 해주거나 조언을 해주는 여성 멘토가 절대적으로 부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런던 동부의 가난한 핵크니 지역에서 이혼한 엄마와 함께 어렵게 성장했던 유체부 교수는 톱 레벨 과학자로 성장해오기까지의 자신의 열정적인 경험을 토대로 후배 여성과학자들이 직면하게 될 각종 장벽을 극복하는 세 가지 제언을 내놓았다. 첫째, 세상에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니 항상 유연해지자. 둘째,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셋째, 후배들은 나의 적이 아니라 따뜻한 우군임을 명심하고, 시간을 내고 노력을 들여 후배 멘토링에 적극 힘써라.


우체부 교수가 제안한 ‘적극적인 후배 멘토링’은 특별히 참가자들의 동감을 이끌어냈으며, 종합세션에서 나도선 이사장 등 한국 측의 경험과 공유되어 활발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여성 연구리더십 성장에서 사회리더십으로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나도선 울산의대 교수 겸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은 먼저 한국의 대표적인 세 개의 과학단체 기관들의 여성 현황을 소개하면서 “한국 과학기술계에는 사실상 여성의 리더십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과학기술한림원의 경우에는 207명의 종신회원 중 여성은 3명에 불과하며, 공학한림원의 경우에도 650명 종신회원 중에서 여성은 2명뿐이다. 387개의 과학기술공학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의 단체회장 중 12개의 단체장만이 여성이나 이들 단체들은 회원 대부분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950명의 이사회 멤버 중에서 여성은 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의 원인에 대해 나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문화적 배경 때문입니다만, 현재 한국 사회는 여성과학자를 양성하고 여성과학자들을 연구계 및 사회의 리더로 발굴하는 일에 폭넓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여성 연구자들에게는 고무적인 상황입니다.”


1985년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1990년까지 한국과학기술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현재까지 울산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는 나 이사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신이 한국의 BT 분야 성장에 여러 개척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 이사장은 자신이 그러한 역할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계가 가장 활발하게 급변하는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자신이 몇 안 되는 소수의 여성 과학자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는 도중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상 여성은 과학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 참석가능한 모든 학회와 심포지엄에 참가했으며, 남성 과학자들과의 연구 교류를 통해 대표적인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그러는 과정에 동료 커뮤니티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 이사장은 한국생화학분자생화학회의의 학회지 편집위원장과 부회장을 거쳐 2005년에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회장에 선임되었다.


“학회에서의 리더십 발현은 자연스럽게 과학단체의 리더십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연구 리더십의 성장으로 나 이사장은 2004년에 과학한림원의 종신회원이 되었고 과학기술관련 단체의 최초 여성 기관장이라는 명예를 안고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제 자신의 리더십 성장과정을 통해서 볼 때 과학자 커뮤니티 리더들과의 네트워킹의 경험은 리더십 배양에서뿐만 아니라 연구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 이사장은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이 네트워킹에 약할 뿐만 아니라 네트워킹을 하기에도 여러 가지로 열악한 상황이었으며 자신이 포함된 세대가 거의 여성 과학기술계의 선두주자였기 때문에 여성 멘토가 없었다는 점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2001년에 400명의 여성들을 모아 결성하게 된 여성생명과학포럼(WBF)은 바로 후배 여성들에게 멘토가 되어주기 위해 시작한 일로 오늘날에는 회원이 1000명으로 확대되었다.

WBF의 초대회장으로 일하면서 나 이사장은 정부에 적극 건의하여 여성과학자들이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노력했으며 여성리더십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과 워크숍을 개최했고, 각종 정보와 소식을 담은 뉴스레터를 발송함으로써 젊은 여성과학자들의 리더십 배양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로레알 유네스코 상을 공동으로 제정 수상하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WBF의 성과와 반응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했습니다. 저는 다른 분야의 여성들에게도 네트워킹을 독려했으며 2003년에는 16개 단체들로 연합된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의 여성과학기술인 전체를 대표하게 된 KOFWST는 61명의 여성과학자들의 삶을 소개하는 ‘여성, 과학을 만나다’를 출간함으로써 다시 한번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아모레-퍼시픽 상을 처음으로 제정함으로써 보다 많은 여성과학자들이 과학도로 성장하고 또한 리더로 나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었다.


나 이사장은 민간차원의 노력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 정책도 급격하게 변화했으며, 특히 참여정부 하에서 최초의 여성부총리, 최초의 여성정보과학기술보좌관, 최초의 여성식약청장 등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정부정책과 네트워킹 그리고 멘토링은 여성의 연구리더십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고, 그 결과 중 하나로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국가 주요 연구사업단의 단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들은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여성채용목표제를 넘어 여성승진목표제를 실행하면서 보다 고위직에 여성이 진출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산업체에서도 이러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 이사장은 여성연구원의 비율이 30%에 육박한 한국의 주요 기업에 아직 여성 간부의 비율이 낮은 것은 여성을 고용한 역사가 매우 짧기 때문이며 이는 5년 내지 10년 안에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표를 정리하면서 나 이사장은 여성의 리더십 성장의 4단계를 설명했다. 첫째는 보다 많은 여성과학자들이 SET 분야로 진출하도록 준비시키는 준비(Preparation), 둘째는 진출한 여성들을 성공적인 연구자의 길로 안내하는 멘토링(Mentoring), 셋째는 다른 여성들로부터의 경험을 배우면서 리더십을 훈련하는 네트웍킹(Networking), 넷째는 동료 및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주는 공유(Sharing). 성공적인 경험에 기초하여 열정적으로 발표를 마친 나 이사장은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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