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은 2010년을 ‘생물다양성의 해’로 지정하고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각종 개발 및 오염, 기후변화 등이 지구촌의 생물다양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1억종에 달하는 생물다양성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심해이다.
지난 9월 30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갤러리 ‘팔레 드 서울’에서는 제27회 융합카페가 열려 이런 심해 생태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보이지 않는 세계: 심해’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융합카페에서는 김동성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심해 생태계와 생명’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심해저에는 수만km의 커다란 산맥과 수천km에 이르는 해구, 수백km 뻗어있는 해저 협곡이 있고, 심해 평원에는 높이 수천m의 해산이 있다. 심해에는 이렇게 다양한 지질학적 환경에 걸맞게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지형이나 수심이 달라지면 당연히 해수의 움직이는 방향이 변하고, 생물이 뿌리를 내리는 방법과 먹이를 잡는 방법도 달라진다, 결국 심해 환경에 따라 다른 생활형을 가진 독특한 생물 군집이 형성된다.
식물이 살 수 없는 심해저에서는 광합성에 의한 유기물질 생산이 불가능하다. 또 심해는 육지보다 수천 배나 높은 기압을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육지와는 아주 다른 환경, 즉 유기물이 적고, 생물의 서식밀도가 낮은 아주 엄밀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물은 무엇인가 육지와 다른 적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번식 위해 성전환도 감행
김 연구원은 심해 생물들의 대표적인 전략 몇 가지를 소개했다. 그 첫 번째는 감각 기관의 특수화이다. 어두운 심해에서 빛을 내는 발광 기관을 발달시키면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움직임을 느끼는 진동(소리) 감각 기관을 발달시키거나, 자신이 필요한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수용기 (chemoreceptors)를 발달시킨 종류도 있다.
또 다른 적응 전략은 먹이를 구하는 방법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육식성, 잡식성 생물은 몸집이 커지고 근육질이 된다. 한편 뻘이나 모래 속에서 먹이가 되는 퇴적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인내형 생물은 몸집을 작게 만들고 운동기관을 버린다.
번식 전략도 달라진다. 심해생물은 어떤 크기의 알을 얼마나 자주 산란할지를 고심해 선택한다. 암수가 쉽게 만나기 힘든 조건이기 때문에 수컷이 암컷에 기생하거나 우연히 만난 상대방에 맞춰 성전환을 하는 경우도 있다.
덩치 작은 생물이 에너지 효율 유리
아주 적은 양의 유기물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심해 생물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연유로 대형저서생물에 비해 중형저서생물(0.032-1mm 사이의 생물)이 상대적으로 많이 살고 있다. 몸집이 작으면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대형저서생물의 일부가 중형저서생물의 크기까지 작아진 경우도 있다.
심해 중형저서생물의 군집 중 가장 많은 것은 유공충류와 선충류다. 가장 오래된 생물의 하나인 유공충류는 석회질로 된 껍데기에 싸여 있는데, 먹이를 잡는 가늘고 긴 위족을 갖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선충류는 몸이 가늘고 양끝이 뾰족한 줄 모양으로 생긴 적응력이 탁월한 생물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해양 어디에나 쉽게 적응해내는 저서성 요각류다. 이 외에도 마디로 이루어진 몸에 털이 많이 나있는 다모류나 짧고 뭉툭한 몸통에 4쌍의 다리를 가진 완보동물 등이 있다.
화학합성생태계의 근원, 해저열수구
이러한 심해생물들은 특이하게도 특정한 곳에 모여 군집을 이루고 있다. 바로 열수분출구 생물군집이다. 바다의 밑바닥에 300℃ 정도의 아주 높은 온도를 지닌 온천지의 존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됐던 것이다. 지하 깊은 곳으로부터 뿜어 오르는 차가운 물에 포함된 유황가스나 메탄 등의 물질은 심해저에서의 화학합성생태계를 이루게 하는 근원이다.
그렇다면 이런 신비의 세계에는 과연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을까. 김 연구원에 따르면 열수분출구에 가까이 갈수록 심해 새우와 말미잘, 눈이 퇴화된 게, 새우류 등 갑각류의 밀도가 서서히 높아진다.
분출구 근방 수m에는 홍합류, 흰패각조개류, 그리고 커다란 관벌레가 용암의 틈 사이에 밀집하고 있다. 이 생물은 황갈색의 관에서 아가미와 비슷한 움직임을 갖는 선홍색 혀 모양의 구조를 수중에 내놓고 있다. 이 관 위로 진화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소형 권패류가 떼를 지어 있다.
30℃ 이상의 고온인 열수를 분출하는 굴뚝 표면에는 갯지렁이처럼 털이 많은 다모류가 자리잡고 있다. 이 분출구의 위에는 심해 게 종류가 지나다니면서 다모류를 잡아먹는다.
이러한 해저열수구 생물군집의 가장 큰 특징은 높은 생물량이다. 비슷한 수심의 심해저에는 생물량이 많아야 1g/m2 정도인데 비해, 해저열수구는 대표적인 동물의 생물량만 15kg/m2을 넘을 정도다.
- 김청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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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0-10-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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