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에너지를 모르는 것은 바다를 모르는 것과 같아”
물리학(物理學)은 말 그대로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비단 사물뿐이겠는가? 자연의 이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주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이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매달리는 학문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학문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노력 속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왔고, 현대 물리학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아인슈타인을 최고의 과학자로 존경 받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주의 열쇠가 무엇인지를 캐기 위해 도전했기 때문이다.지난 겨울 세계 물리학계는 우주의 비밀을 캐려고 노력하는 한국의 한 물리학자를 주목했다. 물리학의 최대 난제인 암흑에너지가 과연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양자 정보론적 해법을 제시한 고등과학원의 계산과학부 이재원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암흑에너지 연구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막연히 우주의 신비를 캔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 에너지가 어떤 특성을 갖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주는 계속 팽창할 것인지, 그래서 수 백억 년 후 모든 것이 찢겨져 사라지는 빅맆(Big Rip)을 맞을 지에 대한 운명도 결정됩니다.
현재 우주 에너지의 4분의3은 암흑에너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암흑에너지에 대해 실마리를 못 찾는 것은 마치 지표면의 4분의 3을 덮고 있는 바다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모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암흑에너지에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뉴사이언티스트, "흥미로운 시도"라며 칭찬
이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현대 물리학이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암흑에너지문제를 양자정보를 사용하여 풀어내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이 연구에는 연세대 김형찬 연구교수와 대진대 이정재 교수도 참여했다.
작년 8월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학술지
네델란드 유트렉트 대학에서 우주론을 가르치는 토미슬라브 프로코펙 교수도 “아이디어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칭찬하면서 “이 연구는 가상입자들이 어떻게 암흑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물리적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최고 에너지의 아주 합리적인 값을 선택했다”고 평했다. MIT의 저명한 양자정보와 블랙홀 전문가인 세쓰 로이드 교수도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진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우주의 73%가 암흑에너지, 그러나 실체는 오리무중
최신 우주관측에 따르면 현재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에너지 73%와 암흑물질 23%.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일반물질 4%로 이뤄져 있다. 우주를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암흑에너지는 가속페달처럼 우주를 가속팽창 시키는 일종의 반(反)중력이다. 암흑물질은 반대로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겨 우주팽창을 억제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암흑에너지가 암흑물질보다 더 많기 때문에 우주는 가속팽창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암흑물질이 과연 무엇으로 구성돼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엑시온이나 초대칭입자 같은 그럴듯한 후보들이 이미 나왔다. 그러나 암흑에너지는 많은 관측자료와 수 십 개의 모델들이 있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어 물리학의 최대난제로 불린다.
물리학계에 따르면, 물리학자들이 주장한 기존의 암흑에너지 모델들은 대개 자연에서 관찰된 적이 없는 이상한 물질을 가정하거나 부자연스런 수학적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이 교수는 최근 세계 물리학계의 논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물리학의 중요한 논점은 암흑에너지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그와 더불어 모든 힘(forces)의 원리를 하나로 설명하는 통일이론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우주에너지도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척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력과 함께 우주를 이루는 5번째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4개의 힘에, 새롭게 추가될 척력을 갖고 있어”
이 교수가 진행한 연구의 요점은 암흑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기묘한 물질을 동원할 필요가 없으며 양자암호나 양자컴퓨터 이론의 핵심개념인 양자얽힘(entanglement)이나 정보손실 등을 그대로 우주에 적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선 가정이 자연스럽고 최근의 관측결과와도 잘 부합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우주의 영역은 점점 커지는 구형의 블랙홀과 유사하다. 우주에도 블랙홀처럼 빛이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이 있으며 우주의 빈 공간에도 진공양자요동에 의해 가상입자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고 있다.
커지는 지평선은 가상입자들의 양자얽힘 정보를 지워버리고 이 때 양자정보론인 란다우어 원리 에 의해 에너지가 투입돼야 하는데 결국 열에너지로 변한다. 컴퓨터 CPU에서 나오는 열과 비슷한 에너지가 바로 암흑에너지의 정체란 것이다.
또 달리 표현하면 블랙홀의 호킹복사와 유사한 에너지가 우주에선 암흑에너지란 얘기다. 연구팀은 이 이론의 예측 치를 관측된 최신결과와 비교하여 오차범위 내에서 매우 잘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올해 관측위성 플랑크가 진실을 이야기할 것”
이 모델의 예측이 암흑에너지 측정과 세부적인 면까지 일치할 지는 올해 발사될 예정인 우주배경복사 관측 위성 플랑크 등의 관측으로 곧 밝혀질 것이다. 이 교수가 이끄는 팀은 암흑에너지의 현재 값과 시간에 따라 변하는 양상을 예측했는데 이 값들은 대형망원경이나 인공위성을 이용한 초신성이나 우주배경복사, 우주의 거대구조를 관측함으로써 측정할 수 있다. NASA는 최근 암흑에너지 관측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한 바 있다.
이 재원 박사는 또 이 연구가 정보가 물질보다 더 근본적인 우주의 본질일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고 말한다. 현재 연구팀은 이 이론을 보완하면서 또 다른 난제인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에 적용하려 열심히 연구 중이다.
이 교수 연구팀의 연구가 결실을 맺어 우리나라 물리학계 위상이 높아지는 새해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암흑 에너지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21세기 시대에 이 교수의 연구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다.
- 김형근 기자
- hgkim54@hanmail.net
- 저작권자 2008-01-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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