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멋진 걸 하나 보여주겠다고 마음먹고 시범 실험을 했는데, 애들의 반응이 이렇게 나오면 정말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이런 경험은 거의 없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실험이라도 일단 실험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아이들은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반응이 훨씬 더 자주 보인다.
“ 와!” “ 한 번 더! 한 번 더!”
얼마 전 2학년 이과계열 학생들과 알칼리 금속의 성질에 대한 실험을 했다.
“얘들아, 이 은백색의 무른 금속을 물에 넣으면 터진다.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난 후, 쌀알 크기로 자른 금속들을 조별로 나눠주었다. 잠시 후 테이블 마다 “어, 어” “우와!” 등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트륨이 물에 녹으면서 발생한 수소 기체를 시험관에 모아 불을 붙이는 실험에 이르면 흥분은 더 도를 더해간다.
“?s!” “ 아, 이게 참고서에 나오는 ‘퍽’ 소리를 내며 탄다는 거구나!”
참고서에 수소는 ‘퍽’소리를 내며 탄다고만 나와 있다. 어느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이렇게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자, 이젠 운동장에 나갈 차례다.”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더 큰 기대감을 표시한다.
미리 예고했던 대로 고무로 만든 커다란 대야와 나트륨 병을 들고 운동장에 나간다.
한 아이에게 물을 받아오게 한 다음, 대야 주변에 아이들을 모이게 한다.
“얘들아, 이걸 봐라. 이게 저 대야에 던질 나트륨이야. 너희가 실험실에서 썼던 나트륨 크기와 비교해봐”
족히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는 된다.
“ 우와” “선생님, 제가 던질게요.” “어서 던져 봐요” “학교를 폭파시켜요”
아이들 이구동성으로 난리다.
“얘들아, 위험하니까 대야에서 7m 이상 떨어져야 된다. 그리고 폭발하고나면 생기는 흰 연기는 몸에 나쁘니까 절대 맡지 마.”
나는 살금살금 대야로 다가가서 핀셋으로 잡고 있던 나트륨을 대야에 던지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며 도망친다. 어떤 아이들은 카메라 폰, 디지털카메라를 꺼내어 동영상 촬영을 시작하기도 한다.
처음엔 부글거리며 흰 연기만 나오던 나트륨이 잠시 후, “꽝!” 하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폭발한다.
그 큰소리 때문에 건너편 건물에서 수업을 하던 아이들까지 놀라 쳐다본다.
“한번 더해요. 선생님”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그래, 이 맛에 실험하는 거지’
화학을 가르치는데 실험을 빼놓고 재미를 말할 수 있을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에서도 실험으로 가장 어필할 수 있는 교과가 바로 화학일 것이다. 실제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실험을 한주 이상 하지 않으면 스스로 지겹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실험을 준비하려면 예비 실험도 해봐야하고, 기구, 약품도 챙겨야 해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기대에 찬 표정을 생각하면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뭘 그렇게 고달프게 사느냐고 하지만, 화학 시간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에 실험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할 수 없다. 얼마 전 작년에 졸업한 제자 녀석이 찾아온 적이 있다. 친구들과 대충 비교해보니 과학고를 제외하고는 자기만큼 실험을 많이 해본 사람이 없더라나. 하긴 그 아이들은 3학년 때도 계속 실험을 경험하였다.
수능 시험의 압력 속에서도 실험을 해대고, 또 그 실험을 시험 문제에 출제하는 악랄한(?) 교사를 꿋꿋하게 견디면서 화학 수업 시간에 즐겁게 임해주었던 졸업생 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미소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실험 바구니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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