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는 바람이다. 봄이 되면 때로는 산 너머 남촌에서 해마다 오는 봄바람을 읊은 시 구절이, 또 때로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지는 거리의 노래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아련하게 울려 퍼진다.
바람은 따스한 봄날 사람들로부터 더 큰 주목을 받지만, 평소에도 우리를 항상 둘러싸고 있는 중요한 환경요소이다. 인간이 일정한 장소에 자리를 잡아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정주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일조와 온도, 습도, 통풍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살 집을 구할 때 일조 등은 매우 꼼꼼히 따지면서 바람에 대해 신경 쓰는 경우는 실상 많지 않다.
미세먼지와 열섬현상의 해법 ‘바람길’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점점 건물은 높아지고 녹지면적은 줄어들면서 도시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고 있다. 바람은 쾌적한 생활환경의 원천이기에 바람이 불지 않는 도시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부정적이고 파급력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으면서 도시 내 공기 속 오염물질이 바깥으로 배출되지 않고 계속 쌓이고 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미세먼지. 먼지는 대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상 물질인데, 크기에 따라 총먼지(50㎛ 이하)와 미세먼지(PM10, 10㎛ 이하), 초미세먼지(PM2.5, 2.5㎛ 이하)로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때문에 미세먼지에 더욱 예민한 상황이다.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지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는데 2012년 이후 감소세가 정체되고 있다. 여전히 미세먼지 농도는 WHO 권고기준(20㎍/㎥)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이며, 미세먼지 주의보 일수는 계속 증가해 사람들의 우려를 높이고 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서는 발생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바람으로 날려버리는 게 효과적이다.
도시의 평균기온이 주변보다 높은 도시 열섬현상은 건물의 초고층화로 바람 통로가 차단되면서 더 심각해진다. ⓒ 미 해양대기국(NOAA)
도시의 평균기온이 주변 지역보다 2∼3℃ 높아서 온도 분포도를 그려보면 마치 도시가 섬처럼 나타나는 도시 열섬현상(Urban Heat-Island)도 바람과 밀접히 관련된다. 열섬현상은 도시 내 인공열의 증가, 대기오염으로 인한 온실효과 등이 원인인데 도시 중심지에 초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바람 통로가 막히면서 더 심각해지고 있다. 도시 열섬현상은 여름철 열대야와 폭염을 유발하며 전력소비량 증가, 생태계 교란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사람들이 길이 있으면 목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듯, 바람도 복잡한 도시 안에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면 끊이지 않고 원활하게 흐를 수 있다. 도시 내 바람이 다닐 길에 대해 1979년 세계적인 기호학자인 군터 크레스 런던대 교수는 독일어의 통풍(Ventilation)과 기차(Bahn)라는 단어를 합쳐 ‘바람길’(Ventilationbahn)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바람길은 산이나 바다 등 도시 외곽에서 생성된 신선한 공기가 녹지와 물, 오프스페이스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도시 안에서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람길이 생기면 도시 외부의 차고 신선한 공기가 계속 유입돼 도시 내의 미세먼지가 부유하는 오염된 공기를 교체해 주고, 녹지 등 도시 내 그린 인프라들과 연결돼 미세먼지를 흡착해 저감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바람길은 도시의 대기오염과 열환경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친환경성을 가지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바람길을 도입하려고 할 때 도시 내에 바람의 흐름을 가로막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토지이용의 효율성과 경제성 추구하면서 초고층 건물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는 아파트들이다.
건물과 부딪히는 바람의 다양한 변신
아파트가 바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관계다. 또 다른 정주요건 요소인 일조는 태양의 고도와 아파트 단지의 배치방향 등에 따라 쉽게 계산해볼 수 있지만 바람은 기후와 지형, 건축물 배치와 높이 등 주변의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으며 매우 복잡한 흐름으로 나타난다. 먼저 바람이 건물을 만날 때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으로부터 힌트를 찾아보자.
비슷한 건물이 늘어서 있으면 그사이 공간으로 들어선 바람은 통로를 빠르게 흐르는 통로 효과(Channel Effect)가 나타난다. 아파트 단지에서 동들을 나란히 세워 중앙 통로를 만들면 그 안쪽 바람의 흐름이 빨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서 건물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면 그 사이로 흐름이 빨라지는 벤츄리 효과(Venturi Effect)가 발생한다. 가끔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빌딩풍이라는 돌풍이 발생해 풍해(風害)를 일으키는데, 빌딩풍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층부에 바람이 부딪혀 떨어지는 와류풍(Vortex Flow) 등과 함께 벤츄리 효과 때문이다.
나란히 있는 건물을 바람이 넘어갈 때는 뒤쪽 건물 앞면에 부딪히면서 압력이 높아져 상층부와 다르게 지표면에서는 앞쪽 건물 뒷면으로 바람이 부는 차압 효과(Pressure Connection Effect)가 나타난다. 일자형 아파트에 수직으로 바람이 불 때 그사이 공간의 오염된 공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피라미드처럼 건물의 높이가 점진적으로 높아지면 상공으로 바람이 흐르고 지표면 풍속은 저하되는 피라미드 효과(Pyramid Effect)가 나타난다. 아파트가 주변 건물들과 어우러져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면, 지표면 공기는 정체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높이와 규모가 비슷한 건물들이 밀집된 경우에는 상공으로 바람이 빠르게 통과하고 지표면은 바람이 없는 차폐 효과(Shelter Effect)가 나타난다. 이 역시 아파트 밀집으로 인한 지표면의 공기 정체를 시사한다.
건축물과 관련된 다양한 바람 효과들. 바람이 건축물과 만나면 다양한 변화가 나타난다. ⓒ 대한건축학회 『건축환경계획』
이 외에도 바람의 흐름과 관련해 아파트 건축물 자체에 고려할 요소들도 여럿 있다. 아파트 외형이 일(一)자인 판상형 아파트는 모든 세대를 남향으로 배치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배치 형태에 따라 바람길을 수직으로 가로막을 수도 있다. 반면 타워형(탑상형)은 주동 자체가 판상형보다 폭이 좁고 서로 엇갈리게 배치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단지 내 통풍이 원활하다.
‘집은 삶을 담는 기계’라는 말을 남긴 근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는 1927년 건물을 2층 레벨까지 들어 올려서 지상층을 개방하는 필로티(Pilotis)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건물을 공중으로 들어 올림으로써 건물은 더 위생적으로 되고 필로티 공간은 사람과 자동차 그리고 공기의 이동통로가 되는 구조다.
아파트에서 필로티는 1층 전체 또는 일부만 단위세대를 설치하지 않는 형식으로 활용돼 뻥 뚫린 공간을 만들어낸다. 바람의 주된 방향과 같은 축으로 필로티를 설치하면 건물의 차폐율을 낮출 수 있고, 건물 내 맞통풍처럼 공기를 효과적으로 흐르게 할 수 있다.
건폐율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을 말하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건폐율이 50% 이상이 되면 원활한 통풍이 이뤄지기 어렵다. 건폐율은 작으면 작을수록 바람에 더 좋다.
차폐율은 아파트 주동의 입면적비와 주동측 벽간 이격거리의 관계에서 구해지는 비율이다. 공간에서 건물이 얼마나 들어차 있는지 개방감을 보여주는데, 차폐율이 높은 아파트 단지는 콘크리트 장벽을 연상케 한다. 바람이 잘 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폐율이 낮아야 한다.
바람길과 수평인 판상형과 타워형이 통풍에 유리
아파트는 한 번 건설되면 최소 40년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게 된다. 따라서 아파트를 건설할 때는 바람 등 정주요건인 환경요소들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 단지의 바람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전통적으로 풍동실험(Wind Tunnel)이 많이 사용된다. 이는 실험실 내 작은 규모로 실제와 똑같은 아파트 단지 배치 모형을 만든 후 인공적인 바람을 발생시켜 건물에 가해지는 다양한 영향과 바람의 거동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전산유체역학(CFD, Computational fluid dynamics)으로 공기의 유동을 시뮬레이션해 바람이 형성되는 형태, 속도, 방향 등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방법으로 최적의 바람길 성능을 나타내는 아파트 단지 배치계획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아파트의 배치형태(왼쪽)와 단지 내 풍속 변화 분석결과(오른쪽). 바람길과 수직 방향인 판상형 배치(a)와 혼합형 배치(d)는 내부 풍속이 느려져(오른쪽 그림의 파란색) 대기오염 물질이 정체할 가능성이 크다. ⓒ 국토연구원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국토·환경계획 연계 방안 연구』에 따르면, 바람길과 수직 방향으로 배치된 판상형 아파트에서 중앙녹지(바람길) 지역은 유입류 대비 130% 정도 풍속이 증가하나 단지 내부는 풍속이 약해져(파란색으로 표시) 대기오염 물질 분산이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바람길과 수평 방향으로 배치된 판상형 아파트의 경우 중앙녹지 지역은 유입류 대비 143% 정도 풍속이 증가하며 대기가 정체된 면적은 상당히 작아 대기오염 물질 분산에 가장 유리했다.
고층으로 서로 엇갈리게 배치한 타워형 아파트에서 중앙녹지는 유입류 대비 170% 풍속이 증가하나 단지 내부 풍속은 약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물질 배출은 바람길과 수평 방향으로 배치된 판상형 아파트보다는 못하지만 그 외 다른 배치 형태들보다는 양호하다.
판상형과 타워형을 섞은 혼합형 배치의 경우 중앙녹지 지역은 유입률 대비 156% 풍속이 증가하나 건축물 내부의 풍속은 상당히 약해져 대기 오염물질이 정체할 가능성이 수직방향으로 배치된 판상형 아파트 다음으로 매우 높았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바람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산과 숲,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공기가 우리 일상에 더 가까워지고 대기 중 오염물질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아파트 외부 공간에서 바람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면 바람이 잘 흐르고 미세먼지 농도가 낮은 지역에 어린이 놀이터와 공원 등 이용자가 많은 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계획에서 바람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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