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사람과 영장류를 갈라놓다

쓴맛에 둔감해지면서 많은 음식 섭취

2015.03.05 09:02 이슬기 객원기자

속담 중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라는 속담이 있다. 속담의 뜻과는 별개로 쓴맛을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쓴맛은 미각 중 기본적인 맛의 하나인데, 다른 기본적인 맛에 비하면 미각을 느낄 때까지의 시간이 길고 맛이 오래 남아 가시지 않는 특징이 있다.

동물이 쓴맛을 느끼는 것은 자기방어기구의 일종이다. 그래서 쓴맛을 느끼면 삼키기 직전에 토해 내고 독극물의 해로부터 모면하게 된다. 쓴맛을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애초에 쓴맛은 다른 맛처럼 즐기기가 힘들다.

지금까지 맛과 관련된 연구는 대부분 짠맛이나 단맛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쓴맛도 하나의 독자적인 연구 분야로서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흡연자는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하며, 쓴맛을 이용하여 당뇨병 치료의 원리가 개발되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쓴맛이 사람과 영장류의 운명을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사실 동물들도 맛을 느낀다. 고래와 돌고래는 오로지 짠맛만 느끼며, 자이언트 판다는 고기에서 나는 감칠맛을 느끼지 못한다. 반대로 개는 짠맛에 둔하며, 고양이와 호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생리 중 하나이다. 쓴 맛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애초에 쓴맛은 자기방어기구의 일종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쓴맛을 다른 맛처럼 즐기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생리 중 하나이다. 쓴 맛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애초에 쓴맛은 자기방어기구의 일종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쓴맛을 다른 맛처럼 즐기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ScienceTimes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된 것일까. 사람은 다른 영장류보다 쓴맛을 느끼는 것이 둔하다. 사람이 동물과는 다르게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미각이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쓴맛에 대한 감각이 둔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지 페리(George H. Perry) 펜실베니아 주립대학(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USA) 교수팀은 침팬지와 현생인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비교하였고, 그 결과 쓴맛을 감지하는 유전자가 있고 없음을 밝혀냈다. 이 유전자는 침팬지에게서만 발견됐다. (원문링크)

‘TAS2R62’와 ‘TAS2R64’ 유전자는 감자나 마의 일종인 얌 등 뿌리채소의 쓴맛을 감지하는 유전자이다. 즉, 이 유전자가 있다는 것은 감자를 비롯한 뿌리채소를 먹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경우, 이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뿌리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더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 유전자가 사라진 시기는 160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는 인류가 최초로 탄생한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때이다. 불을 이용해 요리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뿌리채소를 불에 구워 쓴맛을 없애는 요리법을 터득하면서, 쓴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쓴맛이 없어진 것은 사람의 뇌 진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불에 구워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게 되자 인간의 턱과 치아는 점차 작아졌고, 뇌가 발달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 날것보다 요리한 음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사람은 쓴맛에 둔해진 대신 요리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도구와 불을 사용하여 문화를 발전시켰다. 사람이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와는 다르게 진화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라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사람과 영장류의 운명이 갈리게 된 것이다.

흡연자, 쓴맛 잘 못 느낀다

쓴맛은 결국 사람과 영장류의 운명을 갈라놓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람은 쓴맛에 둔해졌기에 더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흡연자들이 바로 이 쓴맛에 둔하다는 것이다. 담배를 끊어도 둔해진 쓴맛에 대한 감각은 회복이 불가하다.

넬리 야콥(Nelly jacob)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병원 (Hôpitaux Universitaires La Pitié salpêtrière, République française) 박사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전에 담배를 피우다 끊은 사람을 대상으로 쓴맛을 얼마나 잘 느끼는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원문링크)

그 결과, 현재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19.8퍼센트(%), 전에 담배를 피우다 끊은 사람은 26.5퍼센트(%)가 카페인의 쓴맛을 정확하게 느끼지 못했다.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사람은 13.4퍼센트(%)가 쓴맛에 둔했다. 카페인이 연구에 활용된 이유는 바로 극히 소량인 경우에도 혀의 미각수용체가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담배연기 속의 어떤 독성 물질이 혀의 미각기관인 미뢰에 영향을 미쳐 특정 미각을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전에 담배를 피우다 끊은 사람도 쓴맛에 둔한 것은 한번 손상된 미각은 회복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것이 또 한번 입증된 셈이다.

쓴맛을 제외한 다른 3가지 미각에는 흡연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쓴맛을 둔하게 느낀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쓴맛은 기본 맛 중 한가지이며, 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쓴맛 이용한 당뇨병 치료 원리 개발되기도

한의학에서는 입안에서 쓴맛을 느끼는 것을 하나의 병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계획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담에 열이 생겨 위로 넘쳐 올라와 일어나기 때문으로 보는데, 국내 연구진이 바로 이 쓴맛을 이용하여 당뇨병의 치료 원리를 개발하였다. 장현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팀이다. (원문링크)

연구팀은 소장 내분비세포를 이용하여 ‘GLP-1 호르몬’ 분비를 유도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쓴 물질 중 하나인 ‘데나토니움’을 이용하여 소장 내분비세포를 자극하였다. 이를 통해 ‘GLP-1 호르몬’의 분비를 유도한 것이다. 이 호르몬은 식후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데, 식욕을 줄여주며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

당뇨 환자의 90퍼센트(%)이상을 차지하는 제2 당뇨병 환자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주사 공포증과 다양한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연구는 쓴맛으로 체내 ‘GLP-1 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즉, 제2 당뇨병 환자들이 비교적 안전하며 적은 고통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GLP-1 호르몬은 당뇨나 비만과 같은 대사증후군 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체내에서 활발하게 분비된다면, 당뇨병 치료를 하는데 있어 근본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쓴맛이 나는 물질은 일반적으로 물에 녹지 않는다. 쓴 맛은 단독으로 느끼면 불쾌한 경우가 많지만, 다른 맛에 소량을 가하면 맛을 두드러지게 하기도 한다. 맥주의 홉이 그러하고 커피나 차의 쓴맛이 그 예이다. 쓴 맛을 무조건 좋지 않게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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