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와서 가장 많이 바뀐 점은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없앴다는 것입니다.” 독일 항공 우주센터 ‘복합구조 및 적응시스템 연구소’(Institut für Faserverbundleichtbau und Adaptronik) 에서 일하는 고승희 연구원을 만났다.
독일 항공우주센터(Deutsches Zentrum für Luft- und Raumfahrt e.V., 이하, DLR)는 독일 정부 산하 항공우주, 에너지, 교통, 보안, 디지털화 연구 기관이다. 쾰른에 본거지를 두고 있으며, 2021년 2월 현재 베를린, 브라운슈바이크, 본 등의 지역에 54개의 기관, 약 10,000명의 연구원과 직원이 일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주개발과 항공기술연구로 시작하였으나 기후변화와 모빌리티 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술개발 전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고승희 연구원이 일하는 복합구조 및 적응시스템 연구소는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브라운슈바이크시에 위치하고 있고, 시스템 경량 시공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기관으로 고성능 재료, 섬유 복합재 구조에 대한 효율적 제조 과정 및 디지털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배출이 없는 미래를 위한 지능형 경량화 시스템 연구’라는 모토를 가진 복합구조 및 적응시스템 연구소©️DLR
여기에서 고승희 연구원은 소형항공기의 구조물을 더 가볍게 제작하는 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하나의 형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기법인 모핑 기술을 적용한 기술이 고 연구원이 집중하는 분야이다. DLR에서 일하기 직전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TU Braunschweig)의 ‘항공기 설계 및 경량구조 연구소’(Institut für Flugzeugbau und Leichtbau)에서 모핑 기술을 적용한 민간 항공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 하고 있었는데, 당시 브라운 슈바이크 공과대학에서는 모핑 기술을 적용하여 비행기 날개의 돌풍하중을 감소시키는 구조를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러한 경험이 현 DLR 연구소의 채용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모핑 기술은 미국과 독일에서 크게 발전하였는데,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같은 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모핑 기술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큰 자산이 되어 주었다. 독일은 대학 연구소 단위에서만 개발과 시험이 이루어지기 전에 대학 내 학생 단체 등 아마추어 그룹에서도 상당히 혁신적인 제작과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쩌면 무모해 보일지 모르는 시도처럼 보일지 몰라도 성과에 대한 아무런 압박 없이 자유롭게 만들어보고 실험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베이스가 탄탄하다. 또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산업 구조는 항공 분야의 발전에 좀 더 유리한 편이다. 즉, 큰 항공기 회사도 많지만, 무인기나 드론 관련 벤처 기업이 많기 때문에 R&D 산학협력이 잘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연구개발은 연구자의 지속가능한 삶에서부터
고승희 연구원이 독일에 오기로 결심한 것은 연구방향 뿐만 아니라 본인이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다. 처음 외국에서 연구를 지속하고자 했을 때, 독일 외에 고려했던 나라는 미국이다. 당시 한국의 지도교수님께서 미국에서 포닥을 하시면서 모핑 기술을 접하셨고, 미국에서 모핑 분야를 선도하는 저명한 분과 함께 연구 하셨기 때문에 좋은 네트워킹을 이루어 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독일로 방향을 잡았다. 미국이 동양인 여성으로서 혼자 지내기에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여성 연구자로서 긴 호흡을 가진 미래를 상상했을 때는 아무래도 독일이 본인이 그리던 삶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삶과 연구의 균형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유리한 곳이 어디일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독일항공우주센터(DLR) 고승희 연구원
한국과 미국은 성과 중심주의라는 측면에서 매우 닮아 있었다. 한국에서 고 연구원은 비행실험이 있으면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있는 경우도 있었고, 주말에도 가족, 친구와 보내는 시간보다 연구실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때와 비교 했을 때, 자신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택한 독일은 꽤 만족스럽다.
특히 여성 연구자로서 결혼과 출산의 과정에서도 배제되지 않고, 복지 제도를 누릴 수 있다는 점도 선택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실제 DLR에서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성 연구자들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는 없다. 출산 휴가를 쓰고 다시 복귀할 수 있고, 주 40시간 풀타임으로 일하던 연구자들도 아이가 어려 돌봄이 필요한 경우 20~30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여 가능한 만큼 일하는 제도가 있다. 이는 여성 연구자뿐 아니라 남성 연구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놀라웠던 중 하나가 아이가 있는 남성 연구자들이 아이들 데리고 연구실에 나온다는 것이었어요. 부인이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인데, 유치원까지 못 가는 상황이라면 그냥 편하게 아이들 데리고 연구실에 나오는 거죠. 다른 직원들도 그런 일이 종종 있다는 듯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또한 9시부터 6시까지 근무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독일은 부득이한 경우라도 법적으로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오래 일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6시 이후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게 당연한 문화이다. “그러다 보니 집중력도 높은 것 같아요. 다들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연구합니다.” 여성 연구자이기에 고려했던 부분이지만, 이는 모든 연구자에게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토대가 된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함께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연구 문화
“처음 독일에서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내가 원해왔던 거지만,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문화에 대해서 속으로 많이 놀라기도 했고, 적응하는데에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에서 실수하면 안 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고 연구원. 실수하지 않기 위해 더 꼼꼼하게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시간이 촉박해져 다시 실수라는 수렁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독일에서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에도 이러한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험에서 실수를 없게 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반복하던 고 연구원에게 함께 하던 교수가 해 준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뭘 고민하고 있냐고 묻길래, 실패할 것 같아서, 어떻게 실패를 하지 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그 교수가 하는 말이 ‘실수 없이 안 되는 건 없어,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일단 해. 그래서 왜 실수했는지, 왜 안 됐는지를 기록하고, 그다음에 보충하고, 또다시 실험을 해보면 되는 거야.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라고 하는 거에요. 생각해보면 정말 당연한 말인 건데, 그동안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시도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 고 연구원은 최대한 많이 시도해보려고 한다. 자기 것을 연구하다가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함께 연구하는 팀원들에게 물어본다. 우리 팀에 물어볼 것이 없다면, 다른 팀에도 물어본다. 이곳에서는 질문이 자유롭다. 물어보는 사람에게 더 자세히 가르쳐준다. 자신들이 해오며 겪었던 시행착오를 상세하게 공유하고, 이후 이를 적용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 하자고 제안도 한다. 실수 없이 자기 분야에만 열심히 해야 했던 한국과는 많이 다른 문화였다.
구조적으로도 이를 장려하는 문화가 있다. 1년에 한 번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모여서 자기 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다. 보통은 자기 부서에서 연구되는 것만 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주제 발표 시간에 다른 부서의 연구를 살펴보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확인한다. “이런 문화 덕분에 독일에서의 연구는 처음부터 혼자 삽질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연구 과정을 지켜보며 자기의 주제에 대해 더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선행 연구자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기회도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선후배 관계나 상하 관계가 아니고, 그저 몇 년 더 연구를 많이 한 사람으로서, 그 이후에 들어온 신입 연구자들이 기존 연구에서 최대한 시너지를 많이 얻을 수 있게 만드는 분위기가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서구 문화권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분위기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이곳에서는 더욱 협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고, ‘모두 같이 가는 것’이라는 팀웍이 중요했다. 신생 연구자로서 혼자 모든 걸 다 알아야 할 부담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알고, 최대한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자신의 연구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처음 연구실에 왔을 때 다른 연구원들이 “승희, 너에게 필요한 것이 뭐야?” 라고 호의적으로 물었던 그 질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구와 삶의 균형 사이에서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기회를 얻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단점이에요.” 고 연구원은 독일에 코로나가 발생한 직후인 2020년 3월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연구소에 나가서 제작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다른 연구원들도 집에서 일하고 있다. 화상 회의가 익숙해지기도 했고,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그 전만큼 동료들과 얼굴 맞대고 일하며 직접 배울 수 있는 것이 적어진 것은 아쉽다.
“그전에는 곁눈질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고, 다른 팀에서도 어떤 것이 진행되고 있는지 잠시라도 대화 나눌 기회들이 많았는데, 재택근무 장기화로 그게 없다는 것이 아쉬워요.”
이 시간을 자신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고 연구원은 현재 경량화 항공기 구조를 만드는 연구에 매진 하고 있다. 관련한 소재부터, 이를 위한 기술 개발까지의 분야를 다룬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100% 그 분야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라도 팀웍을 통해 보충되는 분야가 있고, 배워가면서 자신의 연구 분야가 변화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하는 것이 연구의 묘미이다.
독일 항공우주연구센터에서 연구와 삶의 균형을 찾아 나가는 고승희 연구원은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위해, 또 그것을 지탱할 삶을 위해 새로운 문을 두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로 덧붙였다.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연락하고 물어보는 게 상대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지만, 독일 교수님들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두드리라.’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한국과 독일에서의 연구 경험을 모두 긍정적으로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고 연구원의 성장이 기대된다.
* 본 기사의 내용은 사이언스타임즈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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