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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대 ‘에오세의 호수’를 다녀오다 [독자투고] 박근홍 방콕 국제학교 1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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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2@어린 시절, 영화 '쥬라기공원'의 그랜트 박사가 모래에서 공룡 뼈를 발굴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붓으로 모래를 쓸어낼 때마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그 멋진 벨로키랍토르 화석에는 왠지 사람을 끄는, 뭔가 신비한 요소가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고생물학자의 실제 생활은 과연 어떨까 많이 궁금했다. 이것이 미국 시카고 대학의 고생물 화석탐사 프로그램, 'Stones and Bones' (돌과 뼈) 에 참여하게 된 첫번째 이유였다.

'Stones and Bones' 프로그램은 고생물학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이 관심과 재능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대학 선수과정이다. 한 달 동안 참가 학생들이 시카고 자연사박물관 (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의 화석 채집팁과 함께 직접 화석을 발굴하고, 그 화석에 대한 처리작업 등에 참여하는 '고생물학 연구자 체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일주일 동안 우리는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에서 이 프로그램의 총 책임자인 큐레이터이자 저명한 고생물 어류학자 그랜디(Lance Grande) 박사의 지도로 지층 분석, 그리고 진화론의 역사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말 그대로 전시물 밖의 박물관의 속내를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박물관 창고에 내려가니 종 · 속 · 과 · 목 · 강 · 문에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화석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석을 서랍이나 선반에 서류처럼 정리해 놓는다는 것이었으며, 대형 포유류나 공룡들의 뼈를 보관하는 곳은 아예 항공기 격납고 같았다. 전시관에 '입신'하지 않은 몸들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박물관 창고에 묻혀 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Stones and Bones' 프로그램에서 주로 발굴하는 지층은 미국 와이오밍주의 그린리버 지층(Green River Formation)으로, 5천 2백만 년 전 신생대 에오세에 존재했던 호수의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물고기나 악어류 등의 수생생물들이 많이 발견된다. 우리가 발굴작업을 한 곳은 와이오밍주 서북의 마을 케머러(Kemmerer)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이곳에서의 화석 발굴작업은 화석 매매가 이뤄지는 화석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더욱 활발해졌고, 매년 7월 이 곳 케머러 마을에서는 발굴된 화석들을 전시하는 '화석축제(Fossil fest)'가 열리고 있다.

화석축제 열리는 케머러 마을에서 발굴작업

@img14@'Stones and Bones' 프로그램에서 매년 발굴 작업을 나가는 곳도 이 지역의 개인 사유 토지이다. 여기서 '영업'을 하는 전문 발굴자의 허락을 받고나서 우리도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발굴한 화석의 반은 규정상 영업자에게 내주어야 했다. 비행기를 타고 솔트레이크 시티에 도착한 후 3 시간 남짓 차를 타고 간 곳이 우리가 발굴작업을 해야 할 채석장이었다.

낮은 언덕(butte) 위에 있는 채석장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풀이 많았다. 도착하고 나서 먼저 한 일은 우리 학생들이 각자 머물 텐트를 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달팽이 화석이 붙어 있는 돌멩이를 주웠고, 여기 저기에 물고기 화석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런 조각들은 우리들이 발굴할 화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박물관 사람들의 말에 흥분되었다.

발굴은 도착한 뒤 두 번째 날부터 시작했다. 화석 발굴작업은 돌에서 뼈를 파내는 것이 아니라 화석이 붙은 돌을 바닥에서 떼어낸다는 점에서 채석이라는 말이 더 적당할 것 같았다. 먼저, 위의 흙이 치워져 퇴적암이 드러난 평평한 곳을 찾고, 약 9평방미터쯤 되는 면적의 둘레를 삽으로 파, 약 50cm 깊이의 '참호'를 만들었다. 여러 곳에다가 이런 작업을 했으므로 이것만으로도 하루가 쉽게 흘러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화석이 묻힌 약 45센티미터 두께의 지층(18 inch layer) 위에 있는 퇴적암을 깨는 작업을 했다. 돌과 모래를 삽으로 계속 파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작업이 있다면 바로 쇠망치로 퇴적암 층들을 깨어 조금씩 벗겨 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랜 시간에 걸쳐 지층들이 겹겹이 퇴적되었기 때문에 지층들을 분리하는 작업은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어떤 돌은 건드리기만 해도 서로 다른 층들이 떨어져 나갔다. 쇠망치로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기다란 끼움 쇠(shim; 쇠로 된 쐐기)를 층들 사이에 박아 넣고 벌어진 틈새로 삽을 끼워 위의 층을 들어 내었다.

이틀 작업으로 물고기 화석을 찾아내

거의 이틀 동안 작업을 한 끝에, 물고기 화석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화석을 찾기 위해서는 주로 해가 뜨거나 질 때 (주로 아침이나 저녁 3∼6시경), 지층의 드러난 면을 자세히 살펴서 그 위에 생긴 그림자를 찾는다. 솟아난 부분들이 물고기일 경우에는 척추 뼈가 특히 돋보이며, 숙련된 사람이면 그 융기들만 보고도 어떤 속의 물고기인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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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린리버 지층에서 주로 발견되는 에오세기 물고기들을 짚고 넘어가자. 'Priscacara:'은 짧고 깊은 몸을 가진 물고기이며, 'Knightia' 다음으로 많이 발견된다. 'Notogoneus'은 호수 밑바닥에 살던 물고기로 주로 찌꺼기를 먹고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Phareodus'은 농어와 가까운 물고기로, 육식성이며, 이따금씩 다른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된다. 'Knightia'은 청어류의 작은 물고기로서, 이 지층에서는 가장 많이 발견된다. 'Diplomystus'은 청어의 친척으로 30cm 정도인데 'Knightia'보다 더 크고, 육식성이다.

너무 파괴되지 않거나, 크기가 충분히 큰, 약 40cm 이상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면, 미리 준비해온 나무로 된 직사각형의 틀을 이용하여 주위에 테두리를 그린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톱으로 금을 그은 곳을 따라 자르고 나서 그 주위의 층을 들어낸 다음, 자른 물고기가 있는 층 밑으로 끼움쇠를 박아 넣고 판을 떼어 낸다. 직사각형의 나무 틀에 맞추어 떼어내는 이유는 화석을 잘라낸 판이 나무상자에 담겨 박물관으로 이송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틀은 나무상자에 꼭 맞도록 크기가 정해져 있으며, 크고 작은 틀이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우선 그 곳을 관리하는 개인 발굴업자가 먼저 화석을 골라 가져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상태가 좋은 화석들은 바로 채석장 가장자리로 옮겨졌다.

모두 물고기만 발견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지층은 바로 먹이사슬 전체가 화석화된 이른바 '보고(Lagerstatten)' 이기 때문에, 앞서 얘기한 달팽이와 더불어 새까지도 발견되었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새는 새로운 종류일 확률이 매우 높아 이번 발굴의 '포인트'를 장식했다. 화석 판매업자가 새 화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어 걱정이 좀 되었지만 나중에 협상한 결과, 박물관이 새를 가져갈 수 있었다.

달팽이와 새 화석도 발견해

2주일을 그 곳에서 보낸 뒤, 시카고로 돌아와서 우리는 물고기 'Knightia' 하나씩을 받았다. 이를 처리작업 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 물고기를 봤을 때는 솟아오른 등뼈밖에 볼 수 없었고, 이것의 뼈가 드러나게 하라고 하는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처음으로 시작한 작업은 'Pin Vising'이란 것으로 가느다란 침으로 현미경으로 보면서 돌을 부분 부분 뼈에서 긁어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돌을 조금 쪼기만 하면 돌이 쉽게 뼈와 비늘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척추를 따라서 빠르게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다음은 'air abrasion machine'이었는데, 이것은 가루가 섞인 공기를 빠르게 분출하는 기계로서, 돌을 마모시켜서 뼈에서부터 벗겨 낸다. 그러나 'Pin vise'로 뼈가 긁힌 구멍도 넓혀지기 때문에 물고기 화석이 종종 마모되었다. 나의 물고기도 이래서 뼈가 벗겨져 구멍 생긴 곳이 많아졌다. 좀 더 느리게 진행했으면 막을 수 있었던 실수였다. 그런데 돌을 벗기면 벗길수록 5천 2백만년 전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쥬라기공원'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을 가지고 사흘 남짓 만에 물고기 화석을 완전히 처리하였다.

물고기가 구멍이 나는 등 다소 손상되기도 했지만, 내 손으로 화석 하나를 처리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여러 종류의 화석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이 방법들보다 더 다양한 기술들이 동원된다. 화석을 포름산에 담궈서 맥석을 부식시키거나, 아니면 화석이 들어있는 돌을 식초에 담근 다음 쪼개기도 한다. 그러나 그린리버에서 발견된 화석의 대부분은 주로 앞서 얘기한 방법으로 처리한다.

그러면 이 물고기 화석들은 어떻게 되는가? 박물관이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종들은 물론 창고에 놓인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한 새처럼 값진 화석은 연구를 거쳐 전시관에 자리잡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여러 물고기는 물고기의 계통 분류 연구에 쓰인다. 현생 어류와 고생물 어류를 같이 놓고 분류를 하면 퇴화됐을 수도 있는 특징도 드러나고, 그만큼 분류도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화석으로 할 수 있는 연구는 이보다 무궁무진하다. 최근에 어느 연구팀은 티라노사우르스 대퇴골에서 단백질을 추출하였고 이 단백질은 현생 생물의 단백질과 비교 분석하는 데 이용되었다.

참으로 한달 동안 값진 경험을 하였다. 5천 2백만 년이 된 화석을 직접 채집하여 처리하면서 그야말로 고생물학이란 타임캡슐을 열고, 그것을 분석하는 작업임을 느꼈다. 몇 천만년 전의 생물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만큼 흥분되는 경험은 이 세상에 몇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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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홍 방콕 국제학교 12학년
저작권자 2008-08-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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