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은 ‘Devil Post’ 또는 ‘천하 대장군’의 이름으로, 오늘날 외국인 사이에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민속 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대부분 장승에 대해 듣거나 보았기 때문에 장승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 말 마을 입구에는 빠짐없이 장승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나라를 찾아온 외국인들은 길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던 장승을 한국 문화의 낙후성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가난하고 무기력한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매달린 미신적인 우상 숭배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에 기독교를 뿌리내리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쓸 때였다. 그런 외국인들의 눈에 장승은 이교도의 생활 풍습으로 보였음은 물론이고, 꼭 없애 버려야 할 민속 신앙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얼마 전에도 지방 자치 단체에서 장승 건립을 추진하자, 일부 종교인들이 이것을 완강히 반대하며 설치물을 훼손했다는 기사가 종종 보인다. 그들이 장승 설치를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종교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과학 기술이 발달된 시대에 미신을 의미하는 장승을 정부에서 공인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종교인뿐만 아니라 일부 지식인들이 힘을 더하기도 한다.
원시 신앙에는 미신이라는 요소가 깔려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부 종교에서 장승을 미신으로 몰아붙여 배척하는 운동을 펼치는 것은 서양의 문화적인 잣대에 익숙하고, 정작 우리 나라의 문화 전통에는 문외한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특히 일부 종교인들이 주관적인 생각에서 샤머니즘을 떨쳐버리고 부수어야 할 것으로 무시할 때 문제가 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과학이라는 단어 자체는 알지 못했지만 과학을 생활화했다. 조상들이 믿음을 갖고 지켜 왔던 풍습이 오늘날에는 미신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중에는 그 나름대로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많다.
우리의 전통적 민간신앙이 지니는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와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우상숭배와 미신으로 보거나 원시신앙의 차원에서 다루면 여러 가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로 만든 장승이나 솟대를 대체로 10∼20년마다 새로 세웠다. 일반적으로 장승이나 솟대는 3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왔다고 추정하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150번에서 300번이나 계속 만들어 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조상들이 여러 가지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수천 년 동안 계속 이것을 새로 만들어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장승이나 솟대 등을 통하여 자신들의 기대와 믿음에 걸맞는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인식한다. 믿음이 순기능으로 작용할 때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우리 유산 가운데 과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매우 많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장승은 이정표나 마을의 수호신으로, 동네 어귀나 길가에 세워진 사람 모양의 조각 형상물이다. 보통 장승은 남녀로 쌍을 이루어 세우는데, 이것을 각각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으로 불린다. 동•서•남•북•중앙에 다섯 장승이 서 있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는 음양오행 사상이 깔려 있다.
장승의 가장 큰 구실은 마을을 지키는 것이다. 돌림병이나 흉년을 가져오는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흔히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웠다. 그러나 장승의 구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남 지방에서는 마을과 마을 사이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한 표시로 장승을 세웠고, 지리산 실상사나 화왕산 관룡사에서는 절 입구에 장승을 세워 절을 지키게 했다. 사람들은 풍수지리에 따라 땅 기운이 약한 곳에 장승을 세우기도 했고, 마을 밖의 장승은 만남의 장소 표지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대개 장승은 음력 정월 열나흘 날 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전국의 장승들은 거의 모두 같은 날 태어난 형제들이다. 원래 장승은 남녀의 성 구별이 없었는데 뒷날 부부상으로 바뀌었다.
장승을 남녀 쌍으로 세울 때는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하거나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게 했다. 장승을 부부로 만든 것도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의미가 크다. 장승 부부를 마주 보게 할 때는 대장군은 동쪽에, 여장군은 서쪽에 세운다. 그래서 옛날에는 나그네가 장승을 보고 방향을 알 수도 있었다.
장승은 대부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부라린 두 눈, 툭 불거진 눈망울, 치켜든 눈썹, 뭉퉁한 코 등 장승이 이처럼 무섭고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마을에 해를 끼치려는 잡귀들에 겁을 주어 내쫓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매우 해학적이고 자애로워 보인다. 전형적인 한국인 얼굴이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모두가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장승 중에는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한 것도 있어 서양의 사탄과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외국인들이 자신들 주관과 선입견에 따라 외형상 사탄과 유사하다고 보고 기독교 전파의 장애로 판단했고 국내의 일부 종교인들도 장승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데 그것은 장승을 사탄의 개념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장승과 사탄은 원천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종호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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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4-08-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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