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생명과학·의학
이성규 객원기자
2011-01-27

시계태엽오렌지와 ‘행복의약품’ 정신병에 드리운 국가권력과 제약권력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동명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시계태엽 오렌지(1962년, 앤서니 버기스)’는 본인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힘으로 감겨져야 작동하는 태엽처럼 외부에 의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출간 이후 끊임없는 논란과 열광적 지지를 동시에 받아온 이 작품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교화라는 명목으로 국가가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가까운 미래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런던을 배경으로 15살 소년 알렉스는 비행 청소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성, 물질, 유희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절도, 마약, 강도, 폭력, 강간 등 극단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한다.

동료 패거리의 배신으로 범죄현장에서 붙잡힌 알렉스는 죄질의 심각성으로 청소년 보호시설이 아닌 일반 교도소에 수감된다. 알렉스는 교도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새로운 교도 방법인 루도비코 요법의 실험 대상에 자원한다.

시계태엽오렌지, 국가권력과 인간자유의지 고찰

루도비코 요법은 조건반사 원리에 바탕을 둔 세뇌 훈련이다. 상점을 파는 노파가 많은 사람들이 요란하게 웃는 와중에 발로 차이고 이 사람들이 상점에 불을 지르고 다시 노파를 구타하는 장면의 영화를 보여주면 알렉스는 심한 고통과 구토를 느낀다.

이러한 조건반사 과정을 거쳐 알렉스는 싸움, 폭력, 살인 등 범죄행위가 나쁘다는 세뇌를 받는다. 루도비코 요법을 개발한 브로드스키 박사는 이를 일종의 연상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연상 작용으로 알렉스는 현실 세계에서 또 다시 폭력을 행사하면 극심한 고통과 구토를 느껴 스스로 감정과 욕망을 억제하게 되는 것이다.

교도소에 출감해 사회로 돌아오지만 알렉스는 갖가지 고통을 참지 못해 투신을 시도하다 병원으로 실려 간다. 병원에서 알렉스는 비인간적인 치료법인 루드비코 요법에 대한 유권자의 비난을 무마시키려는 정부 관료와 모종의 정치적 타협을 한다.

켄 케시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1975년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뻐꾸기는 미친 사람이나 정신병자를 뜻하는 속어이다.

범죄자 맥머피는 교도소에서 정신 병원으로 후송된다. 그는 정신 병원이 교도소보다 자유로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딩, 마티니, 빌리, 추장, 시멜로 등 이미 수감된 다른 환자들이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병원내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짓눌려 죽은 인간처럼 살고 있는 것을 맥머피는 곧 간파한다.

맥머피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굴복해 자유의지 없이 살고 있는 정신 병원의 억압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는 환자들을 이끌고 병원을 빠져나와 낚시로 다녀오거나 파티를 여느 등 의도적인 반항을 시도하지만 거센 병원권력에 부딪히고 결국 탈출을 결심한다.

그 와중에 병원 동료 중 한 명이 병원권력의 핵심인 레취드 간호사의 압력에 자살한다. 이에 맥머피는 레취드 간호사와 심한 몸싸움을 하고 이를 계기로 그는 전기치료실에 갖다온다. 모종의 뇌수술을 받은 맥머피는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어 본인의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 됐다.

뻐꾸기 둥지, 병원권력 유지 위해 뇌절제 강행

맥머피와 함께 탈출을 시도했던 추장은 무기력한 맥머피의 모습을 보고 자기 손으로 맥머피를 죽인 뒤 홀로 병원을 탈출한다. 영화에서 맥머피는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정신 병원의 무언의 압력을 개선하려는 자유의지를 가진, 유쾌하며 적극적인 성격의 인물로 묘사됐다.

이러한 맥머피를 레취드 간호사로 대변되는 병원권력은 폭력성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그의 뇌를 절단하고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추장이 맥머피를 죽인 이유 역시 그가 이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정신치료와 인권에 대한 함의는 오랜 역사를 갖는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정신의학은 국가권력에 의한 인민의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병리를 관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발명됐다”고 말했다. 푸코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판가름한다는 점에서 암묵적이고 보편적인 사회 통제의 권력이 정신의학에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MBC프로그램 ‘서프라이즈’는 정신치료와 인권에 대한 충격적인 소재를 방송한 바 있다. 1913년 미국 시애틀 생인 프란시스 파머는 당대 최고의 할리우드 스타였다. 1942년 파머는 결혼 6년 만에 파경을 맞고 우울증 등에 시달리며 각성제에 중독돼는 등 삶이 망가진다.

어느날 파머는 영화 촬영 도중 경찰에 끌려가게 되고 정신병 진단을 받는다. 정신과 의사 월터 프리먼 박사는 ‘하이드로테라피’라는 치료로 파머가 완치됐다고 밝히지만 이는 거짓으로 드러난다.

하이드로테라피는 얼음을 넣은 찬물에 6시간 이상 알몸으로 담가둔 뒤 저체온으로 실신하면 안구 위쪽으로 얼음 깨는 송곳을 찔러 넣어 뇌에 충격을 가하는 ‘뇌 절제술’이다. 1960년 의학계는 하이드로테라피의 시술이 잘못됐다는 논문이 등장했으며 1967년 월터 프리맨의 수술은 법으로 금지됐다.

프리먼의 시술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파머의 정신병 치료가 정부의 의도된 계획이었다는 점이다. 언론과 대중에 영향력이 큰 파머의 비판적 성향은 정부로써는 골칫거리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하이드로테라피이다. 하이드로테라피 이후 파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됐으며 57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정신의약물’은 누구를 위한 상비약인가

뇌절제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면서 많이 시술됐지만 뇌의 특정 부위를 절제해 뇌의 기능을 못하게 하는 방법이 과연 윤리적인 치료법인가 등 갖가지 논란을 불렀다. 1952년 정신분열증 치료제 클로로프로마진 등 정신치료제가 속속 시장에 등장하면서 뇌절제술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1990년대 정신약물학의 발달로 약물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엽기적인 뇌절제술과 같은 정신질환에 드리워졌던 오명은 조금씩 벗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신약물 역시 불편한 진실을 여전히 안고 있다.

프로작(Prozac)은 미국의 일라이 릴리사가 개발한 세계적인 항우울증 치료제이다. 프로작은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프로작은 우울증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삶의 행복까지 되찾아준다는 뜻에서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등과 더불어 ‘해피메이커(happy maker)’ 또는 ‘삶의 질 개선제(QOL, Quality Of Life)’로 불린다.

이런 삶의 질 개선제는 말 그대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용하면 좋지만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프로작 같은 행복의약품이 어느 순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 가운데 하나가 돼버렸다. 프로작 같은 정신약물이 사실상 가정 상비약이 된 배경에는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거대 제약사는 감추고 싶은 불편한 권력도 한 몫하고 있다.
이성규 객원기자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1-01-27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차대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차대길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