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 이상의 서로 다른 고분자가 블록 형태로 공유결합한 고분자인 블록공중합체(block copolymer). 스스로 조립돼 다양한 나노구조를 형성하는 이 물질은 3차원 공간에 가둬 놓으면 자가조립에 의해 규칙적인 내부구조를 갖게 된다. 3차원 블록공중합체 입자는 수중유(oil-in-water) 에멀전을 형성한 후 내부 유기용매를 증발시키는 에멀전화 및 유기용매증발 과정을 통해 간단하게 제조할 수 있다.
최근에는 둘 이상의 계면활성제를 이용해 외부에서의 계면장력을 조절, 블록공중합체 입자의 외부 및 내부 구조를 조절하는 연구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한편 나노입자를 블록공중합체 내부에 선택적으로 위치시키는 연구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그 중에서도 서로 다른 두 도메인의 계면 사이에 나노입자를 위치시킬 경우 계면활성제로 사용될 수 있다.
현재 나노입자 계면활성제는 상용 유기 계면활성제보다 높은 준가역 흡착 에너지를 갖기 때문에 안정한 에멀전을 형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표면 개질 등을 통해 나노 스케일에서 위치조절을 하는 것이 매우 용이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를 3차원 입자 내부 또는 외부에 도입시키는 연구는 많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 나노입자 이용…볼록렌즈 형태의 비구형 입자
국내 연구진이 금 나노입자를 이용해 볼록렌즈 형태의 비구형입자를 간단한 자기조립 방식으로 만들어 주목을 받고 있다. 김범준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해당 연구를 진행, 나노입자 3차원 배열 조절을 통한 마이크로렌즈 입자를 제작했다.
비구형입자란 지름이 일정한 구 모양이 아닌 형태의 입자를 일컫는다. 일례로 바둑알과 럭비공, 아령, 도넛 형태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페인트나 자동차 혹은 비행기 등에는 콜로이드로 불리는 구형입자 혹은 고분자를 많이 사용하는데 비구형입자를 구현할 경우 기존의 과학상식으로 접하지 못했던 여러 이상현상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기에 많은 과학자들이 해당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구형은 물질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가장 안정한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만들 수 있죠. 저희 연구팀의 경우 물질이 구형이 아닌 다른 형태의 모양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지 살펴봤어요. 비구형을 모양을 만들게 되면 구형입자가 갖지 못하는 재미있는 과학적 특성을 갖게 되거든요.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죠. 이번 연구에서는 볼록렌즈를 강조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모양을 생각할 수 있어요.”
비구형 입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질 외부에서 인위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즉 만든 입자를 납작하게 누른다든지, 고가의 도구로 깎아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존재했지만 김범준 교수팀은 이 과정을 보다 쉽게 재구성했다.
“나노입자는 물과 기름처럼 성질이 다른 물질의 경계면에서 융화를 돕는 계면활성제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노입자를 이용해 3차원 입자의 계면 특성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때문에 실제 마이크로 입자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죠.”
비구형 물질을 만들기 어려운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 구형이 물질의 기본 속성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 안에 기름방울이 생성되는 모습이나 탄산음료에 방울이 생기는 모양 등 모든 상황에 물질은 구형으로 존재한다. 김범준 교수팀은 물질이 구형의 입자를 갖지 못하도록 입자 표면에 인위적인 조절을 가해 비구형 입자를 만들었다. 입자의 특정위치에 계면의 특성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블록공중합체가 포함된 기름 방울 표면에 크기가 조절된 금 나노입자 나노 배열을 선택적으로 위치시키는 방식을 이용했어요. 비구형을 만들려면 원하는 모양으로 깎아 내거나 압력을 가하는 등 다소 복잡한 공정이 필요했지만 저희 팀은 스스로 조립되는 과정으로 계면의 성질을 제어하도록 했죠. 때문에 볼록렌즈 이외에도 럭비공, 아령 모양 등 다양한 모양과 구조의 3차원 입자를 제작하는데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계면 위치에 나노입자 선택적으로 보내는 게 핵심
김범준 교수팀이 진행한 이번 연구의 기술적 핵심은 나노입자를 계면의 선택적 위치에 보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위해 연구팀은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지름 2~8 나노미터(nm)의 금 나노입자를 합성하고, 이를 PS-b-P4VP(PDP)0.5 용액에 첨가해 에멀전을 만든 후 내부의 유기용매를 증발시켜 블록공중합체 입자를 제조했다.
“금 나노입자를 도입하지 않은 경우 구형의 입자가 만들어지는 반면 크기가 큰 금 나노입자는 블록공중합체 입자의 외부 표면에 선택적으로 위치해 계면에서의 에너지를 변화시키더군요. 이를 통해 내부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P4VP 실린더 채널들을 포함하고 있는 볼록렌즈 형태의 입자를 형성할 수 있었어요.”
금 나노입자의 직경 및 양을 변화시키며 마이크로 입자의 구조변화를 살펴본 결과, P4VP 도메인 사이즈에 대한 금 나노입자의 지름의 크기 비율을 나타내는 값 및 금 나노입자의 양이 클수록 볼록렌즈 형태의 입자가 형성됐다.
“이렇게 형성한 볼록렌즈 형태의 입자 내부에 있는 P4VP 실린더에 선택적으로 금을 고밀도로 결합시킨 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입자 표면에서 나타나는 근접장의 분포를 확인했어요. 그 결과 입자의 표면 중심과 모서리, 그리고 수십 나노미터(㎚) 떨어진 부근에 근접장이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독립적인 마이크로렌즈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이 연구는 김범준 교수팀이 계속해서 진행해 오던 연구의 일환이었다. 뿐만 아니라 타 연구팀과의 융합으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었는데 단독 연구가 아닌 만큼 많은 소통과 대화가 오간 시간이기도 했다.
“다양한 팀이 함께 진행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이번 실험의 경우 계면에 나노입자를 선택적으로 위치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거기서 시간도 가장 많이 들였죠.”
김범준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비구형 입자를 만드는 것을 어려워했던 기존의 연구와 달리 그 과정을 매우 단순하고 쉽게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김범준 교수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메커니즘 측면으로 잘 해석했다”며 이번 연구의 장점을 언급했다.
“좋은 플랫폼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저희팀은 실제적인 어플리케이션 외에도 자연계 현상을 이해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심도 있는 연구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7-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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