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생충이라고 하면 숙주의 몸에서 몰래 영양분을 섭취하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능력 없는 생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기생충 중에는 숙주의 뇌를 조종해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끔 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생물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에일리언이라는 별명을 지닌 연가시다.
연가시는 곤충의 몸에 기생하는 가느다란 철사 모양의 유선형 동물이다. 가늘고 긴 모양의 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바람에 날리는 말총 같다고 해서 말총벌레라고도 불린다. 연가시는 여치, 메뚜기, 사마귀, 귀뚜라미 같은 곤충의 몸속에서 기생하다가 짝짓기 때가 되면 신경조절물질로 숙주 곤충의 뇌를 조종해 물가로 가게 한다.
뇌가 조종당하면 수영을 하지 못하는 숙주 곤충들도 물로 뛰어들어 죽게 된다. 그러면 연가시들이 곤충의 몸을 뚫고 나와 물속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짝짓기를 한 후 수십만에서 수천만 개의 알을 낳고 죽는다. 그 알들은 2~4주 후 유충이 되어 물속의 모기 유충 등에 포낭 형태로 감염된다. 모기 유충이 성충이 되어 지상으로 날아갔을 때 다른 곤충들이 모기를 잡아먹으면 어린 연가시는 육상의 곤충으로 옮겨가 성충이 될 때까지 기생할 수 있다.
그런데 숙주 곤충에게서 탈출할 때 간혹 실수를 하는 연가시도 있다. 비가 많이 오면 자신이 물가에 온 것으로 착각하고 숙주 곤충의 몸을 빠져나오는 것. 이렇게 빠져 나온 연가시들은 물속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수 분 내에 죽게 된다.
연가시와 똑같이 물속에서 산란을 하는 기생충 중에는 사람 다리에서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것도 있다. BC 1,550년경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등장하는 이 기생충은 이슬람 성지인 메디나에서 많이 발견돼 ‘메디나충’이라 불린다.
아프리카와 중동, 인도 서부 등에 분포하며 몸길이가 70~150㎝까지 자라는 메디나충은 산란기가 되면 다리나 발쪽 피부조직 밑에 모여서 커다란 수포를 만든다. 그러면 감염된 사람이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물속에 발을 담그게 되는데, 그것은 물속에 상처 부위를 담글 경우 고통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수포 안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던 메디나충이 물속으로 알을 내뿜는다. 물속에서 부화한 메디나 유충은 물벼룩 안으로 들어가 성장하고, 그 물벼룩이 있는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 기생충에 감염된다. 따라서 메디나충은 오염된 공용 웅덩이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후진국에서 주로 발생한다.
메디나충은 1986년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 20개국에서 약 350만명의 환자가 발생할 만큼 성행했지만,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결과 아프리카 5개국 148명으로 줄어들었다. 오래전부터 메디나충 퇴치사업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카터센터는 내년까지 지구상에서 단 한 명의 메디나충 환자가 나오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약 메디나충 환자가 전 세계에서 3년 동안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을 경우 1980년에 완전 퇴치된 천연두에 이어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두 번째 인체 감염성 질병이 된다.
하지만 큰 몸집의 메디나충이 인체 안에서 무엇을 먹고 성장하며, 위장관을 뚫고 나온 유충들이 어떻게 다리까지 이동하는지, 또 큰 몸집의 성충이 어떻게 근육 사이를 이동해 피부를 뚫고 나오는지 등등은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인간보다 쥐의 뇌 더 잘 이해하고 있어
사람을 비롯한 온혈동물의 뇌를 교묘히 조종해 본능과 어긋난 이상 행동을 하게끔 조종하는 기생충도 있다. 원충성 기생충인 톡소포자충이 바로 그 주인공. 이 기생충의 종숙주는 고양이다. 종숙주란 성충이 기생하고 암수의 교미가 이루어져 알을 낳는 최종 숙주를 일컫는다. 이에 비해 유충 단계의 기생충이 서식하는 숙주를 중간숙주라 한다.
따라서 톡소포자충은 종숙주인 고양이로 중간숙주를 유인하기 위해 중간숙주인 쥐의 뇌를 교묘히 조종한다. 정상적인 쥐들은 고양이 냄새를 맡을 경우 바로 도망가지만, 이 기생충에 감염된 쥐들은 고양이를 무서워하기보다 오히려 끌리는 경향을 보이는 것.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진의 실험결과에 의하면 톡소포자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뇌 조종 능력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쥐의 몸속에서 이 기생충이 사멸한 뒤에도 예전의 감염되었던 경험으로 인해 여전히 고양이 냄새에 끌리는 과거의 행동을 지속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즉, 쥐의 뇌 기능을 영구적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톡소포자충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쥐를 조종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간들보다 쥐의 뇌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톡소포자충은 사람에게도 쉽게 감염되며, 최근엔 알래스카 해역에 서식하는 희귀고래인 ‘흰고래’의 10% 정도가 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생충에 감염되어도 면역체계가 정상인 사람은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톡소포자충이 체내 면역세포와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커다란 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이상행동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톡소포자충이 걸린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를 2.6배 더 내며,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도 더 높다는 것. 또한 톡소포자충이 정신분열증의 위험인자라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으며, 심지어 톡소포자충이 감염된 사람은 고양이 냄새를 더 좋아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생 생물들이 숙주를 좀비로 만드는 건 식물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영국 존인스 센터(John Innes Centre)의 과학자들은 최근 식물에 기생하는 세균이 숙주를 좀비로 만드는 메커니즘을 해명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제까지 기생생물이 식물을 좀비로 만드는 메커니즘 역시 잘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이들이 연구한 건 식물에 기생하는 병원체로서 세포벽이 없는 원핵생물인 파이토플라스마다. 이에 감염된 식물은 잎이 무성하게 돌변하며 꽃잎도 녹색으로 변한다. 또한 작고 가느다란 가지와 이파리가 뭉쳐서 빗자루 뭉치 같은 모양이 된다고 하여 이를 일명 ‘빗자루병’이라고도 부른다.
빗자루병에 걸리면 번식 능력을 상실하게 되며, 수액을 빨아먹는 곤충들이 모여들어 파이토플라스마를 새로운 숙주로 실어 나르게 된다. 즉, 좀비 PC가 컴퓨터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처럼 멀쩡한 식물을 좀비로 만든 후 곤충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퍼뜨리게 하는 것이다.
존인스 센터 연구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파이토플라스마는 SAP54라는 단일 단백질과 꽃을 피우는 개화 유전자가 상호 작용케 하여 식물의 수액을 빨아먹는 곤충을 유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곤충은 정상적인 식물보다 파이토플라스마에 감염되어 잎이 무성해진 식물에 더 많은 알을 낳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파이토플라스마가 없는 상태일지라도 SAP54만 있으면 곤충을 유혹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파이토플라스마는 하나의 단백질로 식물과 곤충을 동시에 제어한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 같은 기생생물의 놀라운 능력으로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고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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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4-04-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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