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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7

셈법의 역사 이근무 위덕대학교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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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법은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인류가 언제부터 기호와 상징으로서 수를 사용해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셈법은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베스트니츠 마을에서 발견된 약 2만~3만 5천년 전의 것으로 추측되는 ‘늑대 뼈에 새겨진 55개의 선’이다. 이 뼈에 새겨진 선은 30개가 5개씩 묶여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미 일정한 진법이 쓰인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 이외에도 흥미를 끄는 유물은 우간다와 콩고 사이의 에드워즈 호숫가에서 1962년 하인젤린(Jean de Heinzelin)에 의해 발견된 ‘이샹고의 뼈’ 이다. 기원전 2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뼈는 단순한 셈 막대 이상의 무언가였던 것 같다. 현미경으로 관찰해 본 결과 달의 주기 변화와 관련된 듯한 표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석기시대 사람들에게는 보름달이 뜨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여기에는 종교적인 이유와 생활상의 실용적인 이유가 함께 내포돼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수에 대한 기록은 남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서 발굴된 ‘비비의 종아리뼈’이다. 이 뼈에는 기원전 3만5천 년 경에 누군가 그어놓은 선명한 선이 29개 남아 있다. 이 선은 오늘날까지도 나미비아에서 시간 흐름을 기록하는 데 사용하는 ‘날짜 막대(calendar stick)’의 원형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신화에도 ‘율리시즈에 의해 장님이 된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는 자신의 양을 관리하기 위하여 동굴 입구에서 양들이 나갈 때 마다 작은 돌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셈법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방법은 추상적 수사(數司)의 발견 이전에 ‘일대일 대응’이라는 셈의 기본을 이용한 좋은 예이다.


이런 셈법들이 기록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2만~3만 5천 년 전이라면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이 무렵은 수렵 및 채집 경제를 중심으로 한 원시 공동체 사회이다. 당시 셈을 한다는 것은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절실한 것이었다. 채취한 동물과 음식물을 배분한다거나 가축이나 짐승 떼의 크기를 알 필요가 대두되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쓰인 도구들이 위에서 본 뼈에 새긴 셈 막대나 조약돌 등이다. 이것이 원시 공동 사회에서 셈하기를 시작한 동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러한 셈법의 일대일 대응에 의한 방법이 양의 마리수를 관리하거나 기타의 셈을 하는 데는 적절하였지만 수의 개념으로 정착하는 데는 더욱 오랜 세월이 필요하였다. 즉 말 2마리와 두 번의 전쟁과 같이 여러 물건 또는 사건들 사이에 공통되는 수학적 속성이 ‘2’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사유하는 동물’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추상화의 능력인 것이다. 이를 두고 위대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평화 운동가인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은 “인류가 닭 두 마리와 이틀의 2를 같은 것으로 아는데 수천년이 걸렸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일반인들은 1,2,3,4 등의 수(양의 정수 또는 자연수)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음수나 무리수, 허수는 상상의 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수학적 체계 안에서만 존재하도록 약속된 고도의 추상적 기호일 뿐이다. 이런 일정한 체계 속의 기호들이 신비롭게도 우리의 삶과 기술과 과학의 영역에 널리 이용되고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0이라는 숫자는 1,2,3,4,5...와 같이 양의 정수에서는 위의 사물과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셈의 방법으로는 단순히 ‘없다(無)’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수의 영역을 확장하여 -1,-2,-3,-4,-5... 와 같은 음의 정수(음수)에서의 0은 양수와 음수의 경계점이 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섭씨온도(Celsius scale) 0도는 화씨온도 32도라고 할 때 0도는 물이 어는점을 기준으로 한 상대적 비교를 위해 설정된 값인 것이다. 여기에서 0이라는 값은 고정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양의 정수의 수학적 연산 체계 내에서 곱한다는 것은 그 곱의 수만큼 더한다는 의미가 된다. 6×5=(6+6+6+6+6)=30 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음의 정수와 음의 정수와의 곱을 하면 양의 정수(-6×-5=30)가 된다. 이런 경우 양의 수를 ‘소유하고 있는 재산’, 음의 정수를 ‘빚 혹은 빌린 것’으로 대응하면 빚에 빚을 곱하면 재산이 된다는 허무한 역설이 되는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합법적으로 돈 떼어먹는 방법과 빌린 돈을 갚지 마라」를 쓴 저자가 자신의 책 내용대로 남의 돈을 떼어먹다 검찰에 붙잡혔다. 이 책의 저자는 아마 돈을 많이 빌리면 그 것이 자신의 재산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음수와 음수의 곱이 양수라는 규칙은 현실의 문제와는 무관하게 수학적 약속 또는 규칙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런 수의 몇 가지 특성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수는 어떤 사물 혹은 자연의 특별한 성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들 수라는 기호는 현실의 여러 셈의 영역들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 수는 더하기·빼기·나누기·곱하기 등의 연산을 할 수 있다. 엄격한 의미로 수는 인간의 추상적 사고를 통한 관념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수는 그 연산이라는 조작을 통하여 우리의 현실과 경험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기도 하며 과학과 문명을 창조하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상부구조인 문화·제도 등은 하부구조로서의 사회적 생산성에 의해 제약된다고 한다. 나아가 그 생산성은 그 사회의 기술 발전에 의해 촉발되고 그 기술의 이면에는 수학의 응용영역으로서 과학발전이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예를 들면 푸리에(Joseph Fourier , 1768-1818)의 원리라는 수학적 전개는 열역학에서 정보통신의 영역에까지 넓은 영역을 설명하고 이용되고 있다. 상상의 수라는 뜻을 가진 허수(imaginary number)의 발견은 전기와 프랙탈 이론에까지 널리 이용되고 있다. 19 세기의 불(George Bool, 1815-1864) 이라는 수학자에 의해 발견된 불의 대수는 논리회로와 이를 이용한 컴퓨터 기술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순수한 수학적 탐구의 영역이었던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소수에 대한 연구는 정보통신사회에서는 인터넷의 보안체계를 구축하는 기반 이론이 되고 있다.


한 시민이 퀘니스버그 다리의 통과 방법의 질문에서 시작된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 그래프 이론은 네트워크 구축과 최적화에 대한 체계적 이용방법을 제공해주고 있다. 기존의 대수적 연산 방식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대수학으로서의 행렬 대수학은 그 응용영역은 기존 연산체계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켜 수학의 응용영역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주었다. 이제는 순수 형식주의적 수학 영역과 응용수학영역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러한 수학적 응용은 우주선을 보내 인간의 정복사의 역사를 다시 쓰기도 하고 핵폭탄을 먼저 개발하여 세계지배 전략을 공고화하기도 하고 인터넷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의 전통적 지배구조를 깨부수고 변혁시킬 역량으로서의 대안언론이 새로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2005-01-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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