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이 아닌 ‘독’에 면역 만든다

[전승민의 백신 이야기] (8)디프테리아·파상풍 극복의 일등공신 ‘톡소이드 백신’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백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잘못된 정보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백신 이야기’를 총 15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톡소이드 백신은 병원체가 아닌 ‘독소’에 면역을 갖도록 하는 독특한 방법이다. Unsplash 제공

백신이란 감염위험을 낮추거나, 불활성화시켜 만든 항원을 이용해 인간의 후천성 면역을 얻는 물질, 혹은 그 물질을 담은 의약품을 뜻한다. 그런데 드물게 병원체 그 자체보다, 병원체가 만들어 낸 독소(毒, Toxin)를 항원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이 것은 병원체가 아니라 병원체가 생성한 독소가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 독소 그 자체에 대응하는 특이한 형태의 백신이다. 흔히 ‘톡소이드 백신’이라고 부르는 경우다.

병원체가 만드는 ‘독소’

톡소이드 백신은 변성독소 백신, 무세포 백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은 바이러스가 아닌 박테리아(세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이러스가 독소를 내놓으려면 인간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 세포의 대사과정을 대규모로 바꿔야 하는데, 불가능하다 단언할 순 없지만, 현실적으로 보기 어렵다. 반대로 세균은 스스로 대사과정에서 독소를 생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톡소이드 백신은 예외 없이 세균성 감염 증상의 예방에 쓰이는 이유다.

백신을 만들 때는 우선 소량의 독소라도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열이나 약품(주로 포르말린)으로 처리해 문제가 없도록 처리할 필요가 생긴다. ‘불활성화 백신’을 만드는 것과 대단히 유사한 셈이다. 톡소이드 백신을 불활성화 백신의 한 종류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톡소이드 백신을 주사로 맞게 되면 몸속에서 항독소 항체가 생겨나며, 이 항체가 독소를 중화해 증상이 생겨나지 않게 된다. 그 사이 우리 몸속 면역 체계가 원인 세균을 제거하면 증상 없이 병을 물리치게 되는 식이다.

톡소이드 백신의 목표 독소는 주로 ‘외독소(exotoxin)’이다. 세균이 만드는 독소는 크게 두 종류인데, 세균이 증식하면서 배출하는 외독소, 세균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독소다. 두 종류 모두 단백질·다당류·지질의 복합체로 이뤄져 항원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우선 내독소에 대해 짚어보자. 내독소는 ‘균체내독소’라는 말을 쓰는 때도 있는데, 이 경우 균이 죽으면 세포막이 터지면서 세균 밖으로 빠져나와 증세를 일으킨다. 주로 ‘그람 음성균’이라는 종류의 세균에서 많이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장티푸스, 콜레라 등이 꼽힌다. 균이 살아있는 있는 동안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몸속에서 죽게 되면 밖으로 독소를 쏟아내 병을 일으키는 식이다. 이 내독소의 양을 흔히 ‘EU’라는 단위로 측정하는데, 1EU를 100피코그램(pg, 1pg는 1조분의 1g)으로 정의한다. 건강상 문제가 없는 수준의 내독소는 1시간에 5EU 정도의 극미량이다. 백신을 개발할 때 필요하다면 내독소에도 항체가 생기가 할 수는 있는데, 내독소만을 목표로 백신을 만드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병원체 속에 들어있는 형태이라 차라리 세균 그 자체에 대응하도록 설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독소는 병원체가 증식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분비된다. 내독소와 달리 끓는 물 정도의 온도로도 파괴되는 편이지만 이 경우도 독성은 대단히 높다.
외독소 형태의 세균에 감염됐을 때 치료는 당연히 원인균부터 제거해야 하므로 항생제를 처방하는데, 항독소(혈청)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한 번 걸렸던 질병은 재발이 흔하지 않은데, 그리고 몸속에 남은 독소도 인체에서 이물질로 인식하고 후천성 면역을 획득하게 된다. 톡소이드 백신 역시 이런 과정에 착안해 백신을 개발한 것이다.

‘보톡스 주사’의 주성분은 세균이 만든 독소를 추출.한 것이다. Unsplash 제공.

여담이지만 외독소 그 자체만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보툴리눔 독소’일 것이다.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이라는 세균이 만들어내는 신경독성 단백질로, 청산가리보다 6억 배나 더 독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산적으로 보툴리눔 독소 1g만 있다면 기니피그(실험용 설치류) 백만 마리의 생명을 앗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보툴리눔 독소를 극미량으로 희석한 것이 잘 알려진 ‘보톡스 주사’이다. 근육 마비를 유도해 표정을 지을 때 생기는 주름살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하는 원리다. 참고로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에 감염돼 생기는 병을 ‘보툴리즘’이라고 하는데, 증세가 가벼운 경우 ‘식중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상한 고기 등에서 감염되기 때문이다. 세균이 몸속에서 계속 신경독을 생성하므로 전신에 심각한 근력저하가 발생한다. 사람은 물론 동물에게도 생기는데, 축산업계에선 큰 골칫거리 중 하나다. 소 등 축산 동물은 일부 종류에 대해 백신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감염된 경우엔 항독소를 이용해 치료한다. 꿀 속에 이 균의 포자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유아에게 생 꿀을 그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파상풍·디프테리아 정복

톡소이드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질병 중 대표적인 것이 ‘디프테리아’와 ‘파상풍’일 것이다. 두 종류 모두 증식할 때 외독소를 내놓기 때문이다. 톡소이드 백신을 만들 때, 항원의 분자 구조에 변화가 없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백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만큼의 분량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디프테리아와 파상풍의 경우에, 외독소를 복제하는 데 성공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디프테리아는 외독소에 의한 전염력이 강한 급성 감염 질환으로, 현재 법정전염병 제1급에 속하는데, 주로 인후통과 열이 생겨나며 심각하면 ‘크룹’이라고 하는 괴사가 생겨난다. 입안 목구멍 쪽에 흰색 줄기 무늬가 생기는가 하면, 팔이나 다리 등에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백신이 처음 개발된 것은 1923년. 디프테리아는 전염성이 심해 많은 사람이 고통 받았는데 세계 보건 기구(WHO)는 1974년부터 백신 접종을 권장하면서 현재는 전 세계 인구의 84%가 접종받고 있다. 현재 디프테리아 환자를 찾긴 어려운 편이다.

파상풍은 상처 등으로 들어온 파상풍균이 외독소를 만들고, 이 병이 신경계를 침범하여 근육의 긴장성 수축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입을 벌리기 힘들고 심하면 몸이 활처럼 구부러지기도 한다. 파상풍 백신이 처음 개발된 것은 1924년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병사들의 추가 감염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생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파상풍 백신을 맞은 사람의 95%는 많건 적건 백신의 효과를 본 것이라는 연구가 있다.

1915년 한 소년이 디프테리아 백신 접종에 앞서 ‘쉬크검사’를 받고 있다. 쉬크검사는 묽게 만든 디프테리아 독소를 피부에 소량 주사해 면역이 있는지를 사전에 알아보는 것이다. 미국 국립암센터 및 Unsplash 제공.

백일해의 경우도 톡소이드 백신이 개발돼 있는데, 세포를 죽여서 만든 불활성화 백신도 존재한다. 즉 두 종류가 모두 개발돼 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불활성화 백신을 전세포 백일해 백신, 톡소이드 백신의 경우 무세포 백일해 백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엔 병원에선 같은 톡소이드 백신 계열인 파상풍과 디프테리아, 백일해 백신을 모두 섞어 사용하는 ‘DTaP’ 백신을 이용해 한 번 접종으로 3가지 질병을 모두 예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D가 디프테리아, T가 파상풍이란 뜻이다. aP는 톡소이드 계열 백일해 백신을 뜻한다. 만약 여기서 백일해 백신을 일반적인 불활성화 백신(사백신)으로 바꾸어 만들면 DTwP 백신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성인의 경우 백신의 성분을 조금 조정한 ‘Tdap’이 권장되고 있다. 대문자로 적은 백신의 분량이 더 많다는 의미이다. 성인용 Tdap는 T가 대문자인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파상풍에 주력한 조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일해의 경우 한 번만 맞으면 되므로, 성인은 Tdap을 한 번 맞은 다음 10년 주기로 디프테리아와 파상풍 백신으로만 구성된 ‘TD’를 맞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톡소이드 백신은 병원체의 유전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부작용이 대단히 적고, 예방 효과도 비교적 확실한 것이 장점이다. 백신을 개발할 때 병원체 그 자체를 주 항원으로 삼으면서도, 혹시 모를 ‘돌파감염(백신을 맞았음에도 감염되는 것)’시 증세를 경감을 목적으로 외독소에도 면역을 갖도록 만드는 복합 예방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약독화 백신이나 일반 불활성화 백신과 같이 백신 개발의 주된 방법이라고 보긴 어렵고, 핵산 백신 등과 같은, 첨단 생명과학 기법을 적용한 백신도 아니어서 현대에 그다지 주목받는 방식은 아니다. 그러나 병원체의 ‘독소’를 목표로 삼는 독특한 방식은 앞으로도 백신 개발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할 유효한 수단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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