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친환경 ‘조선 온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170년 앞서

춥고 건조한 겨울에는 채소가 자랄 수 없다. 하지만 온실을 이용하여 겨울철에도 신선한 채소를 먹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온실의 시작은 1619년 만들어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온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보다 170년이나 앞서 조선에서 세계 최초의 인공 온실이 만들어진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다. ‘동절양채'(冬節養菜)라고, 온실을 만들어 겨울철에 신선한 채소를 생산했다고 쓰여 있다.

현재 가장 보편화된 온실의 모습은 서양식 온실의 모습이다. 하지만 조선의 온실은 다소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 Владимир Иванов / Wikipedia

현재 가장 보편화된 온실의 모습은 서양식 온실의 모습이다. 하지만 조선의 온실은 다소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 Владимир Иванов / Wikipedia

그 방법은 이렇다. 집의 크기는 임의대로 하며, 삼면에 벽을 쌓고 기름종이를 바른다. 남쪽 면은 살창을 달아 마찬가지로 기름종이를 바른다. 연기가 나지 않도록 구들을 잘 놓고, 그 온돌 위에 한 자 반(약 91cm) 높이의 흙을 쌓는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날씨가 아주 추울 경우에는 짚으로 만든 거적을 두껍게 만들어 덮어준다. 날이 좋으면 즉시 이를 걷도록 해서 지나치게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방지했다. 무엇보다 경사진 지붕을 통해 많은 양의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온돌 설치로 인해 낮아진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날마다 물을 뿌려주어 방안에 항상 이슬이 맺히도록 했다. 또한 가마솥에 물을 끓여 가마솥과 온실 안을 연결하는 관으로 수증기를 공급하기도 했다.

차가운 땅부터 따뜻하게 만든 조선의 온실

일반적으로 온실은 난방, 가습, 채광이라는 세 조건을 갖게 된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이 온실 역시 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가장 먼저 중요한 난방의 경우, 지하부의 온돌 난방을 이용하여 흙 온도를 항시 25℃로 유지하였다.

아랫부분을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식물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차가운 땅까지 데웠다는 것을 뜻한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지상부 뿐 아니라 뿌리의 발육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최근 온실에서는 온수파이프를 이용한 난방이 도입되고 있기도 하다.

반면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온실은 난로로 공기를 데우고, 이를 불어넣어 온실 내부의 온도를 높이는 방식을 취하였다. 지상부만 온도를 높이기 때문에, 차가운 땅을 보강하기 위해서 화분이나 다른 재배시설을 설치해야 했다.

들기름 먹인 한지, 채광창으로 이용

이 온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기름칠한 종이’이다. 들기름을 먹인 한지는 인장 강도가 비닐보다 세다. 그래서 들이치는 빗물을 감당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빛 투과율이 높아 온실 내로 많은 햇볕을 투과시킬 수 있었다.

외부에만 붙인 것이 아니라 내벽에도 도배를 하여 실내에 햇볕이 골고루 반사되게 만들었다. 천정을 통해 투과된 복사열은 실내 바닥과 황토 벽체에 흡수되면서 장파장의 복사열로 바뀐다. 온실 내에서 머물면서 내부의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반면 하이델베르크 온실의 경우, 온실 안에 난로를 두어 열기를 만들었다. 난로를 이용하여 온실 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바짝 건조하게 만들어 식물이 말라버렸다는 점이다.

원래 서양 온실은 초창기에 열기를 만들기 위해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하였다. 친환경적으로 열기를 얻을 수 있었으나, 지독한 냄새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고 대체품으로 난로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온실을 비롯한 초창기 서양의 온실은 땅이 차갑고 대기는 건조해서 식물이 자라기 힘들었다.  ⓒ the Richfield Historical Society / Wikipedia

하이델베르크 온실을 비롯한 초창기 서양의 온실은 땅이 차갑고 대기는 건조해서 식물이 자라기 힘들었다. ⓒ the Richfield Historical Society / Wikipedia

기름 먹은 한지, 습도 조절도 가능

기름 먹은 한지는 습도 조절의 기능도 있었다. 온실은 외부와 내부의 온도 차이로 인해 새벽에는 이슬이 맺히게 된다. 이슬은 햇볕을 차단하고 실내 온도를 낮춘다. 작물에 떨어지면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기름 먹은 한지는 방수성을 가짐과 동시에 투습성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작은 수증기 입자는 한지를 통하여 실외로 배출되었고, 이로 인새 온실 내부에는 이슬이 맺히지 않았다.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온돌에 불을 때면서, 아궁이에 가마솥을 걸어 물을 끓였다. 이때 발생한 수증기는 나무로 된 통을 통해 온실 내부로 들어갔다. 차고 건조한 우리나라의 겨울에 알맞도록 실내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 것이다.

반면 하이델베르크 온실은 습도조절에 어려움이 있었다. 열기를 위해 난로를 두었더니 너무 건조해졌다. 습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팀을 이용하여 온도를 높였는데, 이번에는 아예 식물이 데쳐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조선의 온실이 갖고 있는 최대 장점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이델베르크 온실의 경우, 지속적으로 석탄을 떼야 했다. 지나치게 많은 석탄을 소비하였고, 석탄을 태우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의 온실은 기온과 지온을 동시에 따뜻하게 하면서도 환경오염이 없었다. 더불어 서양 온실이나 현대 온실의 최대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결로 현상도 없었다. 식물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식물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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