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 ‘CERN의 LHC’

[과학기술 넘나들기] 거대 과학실험 장치들(4)

1990년대에 미국에서 건설 중이던 초전도 슈퍼충돌기(SSC,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프로젝트가 중단, 폐기된 이후 2008년부터 가동된 거대 강입자 충돌기(LHC, Large Hadron Collider)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이다. 스위스 제네바 인근에 위치한 충돌형 입자가속기로서,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지하 100m 지대에 길이 27km의 가속 터널을 형성하고 있다.

LHC 및 각 검출기의 위치 ⓒ Maximilien Brice(CREN)

LHC를 보유한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는 1954년에 설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다수의 뛰어난 물리학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유럽이 학문의 중심적 위치를 상실해가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물리학자들이 국제기구와 비슷한 범유럽의 기초물리학 연구소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태동하게 되었다. CERN의 설립을 처음으로 공식 제안한 물리학자는 물질파 개념을 창안하여 1929년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드 브로이(Louis de Brrogile)였다.

CERN이란 명칭은 원래 유럽원자핵연구협의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의 약어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에는 원자핵물리학(Nuclear physics)과 입자물리학(Particle physics)이 구분이 되므로 정확한 개념이 아닐 수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CERN이라는 약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CERN은 LHC 이전에도 여러 종의 입자가속기들을 보유해 왔다. CERN의 최초의 입자가속기는 1957년에 건설된 싱크로사이클로트론(Synchrocyclotron, SC)인데, 600메가 전자볼트의 빔 가속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후 1959년에 양성자 싱크로트론(Proton Synchrotron, PS), 1976년에 슈퍼 양성자 싱크로트론(Super Proton Synchrotron, SPS) 등이 새로 건설되면서 가속 가능 에너지가 크게 증가하였고, 이에 힘입어 입자물리학에서 숱한 중요한 연구성과들을 낼 수 있었다.

또한 CERN은 입자물리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이 탄생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는 CREN에서 근무하던 중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 사이에 정보 공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월드 와이드 웹을 발명하였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특허로 독점하지 않고 공개하여 인터넷의 대중화 시대를 앞당긴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도 등장한 바 있다.

오늘날의 LHC는 CERN의 거대 전자-양전자 충돌기(Large Electron Positron Collider)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LEP는 1989년부터 가동되었는데, 현재의 LHC와 동일한 길이 27km의 거대한 가속 터널을 지니고 있었다. LEP 다음 세대의 가속기로서 계획되었던 LHC는 미국에서 추진되었던 SSC와 한때 경쟁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미국의 SSC 프로젝트가 폐기되면서 LHC는 십여 테라전자볼트 수준의 에너지를 가속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입자가속기가 된 셈이다.

LHC는 한때 하나의 가속 터널 안에 LEP의 빔 라인을 그대로 두고 별도의 양성자 빔 라인을 설치하는 식으로 검토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LEP 장치들은 모두 제거하고 가속 터널만을 그대로 쓰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따라서 2000년에 LEP는 12년 간의 임무를 종료하고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LHC가 새로 설치된 것이다.

LHC의 가속 터널 내부 ⓒ Julian Herzog

LHC에서 양성자 빔이 가속되어 달리는 곳, 즉 빔 파이프 내부는 극도의 진공 상태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에 빔 파이프 안이 진공에 가까운 상태가 아니라면, 양성자들이 이보다 훨씬 큰 공기 분자에 부딪혀 산란되면서 양성자 간의 충돌 실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LHC 빔 파이프 안의 진공 상태는 10조 분의 1 기압 정도로서, 1 세제곱센티미터의 공간에 공기 분자가 300개 정도 있는 수준이며 달 표면의 기압보다도 10분의 1 정도로 작다고 한다.

LHC에서 입자를 가속하고 제어하기 위하여 무려 9300개의 전자석이 설치되어 있다. 더구나 테라전자볼트급의 높은 가속 에너지를 얻을 정도의 강력한 자기장을 내기 위해서, 일반 전자석이 아니라 모두 초전도 전자석으로 되어 있다. 가속기 전체에 초전도 전자석을 사용한 것은 페르미연구소의 테바트론에 이어 LHC가 두 번째이다. LHC는 테바트론보다 네 배 정도 규모가 크므로, 27km에 이르는 가속 터널 구간 전체에 걸쳐서 초전도 전자석을 설치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또한 전자석의 초전도 상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극저온이 필요하므로, 절대온도 1.9도 K, 즉 섭씨 영하 271.3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른바 3도 K 우주배경복사로 알려져 있는 우주 공간의 온도보다 더 추운 셈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 극한 기술들에 더하여, LHC 실험에서 나오는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다루기 위해서는 초고속의 전산 처리 기술 또한 필수적이다. 보통의 컴퓨터와 네트워크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LHC에서 입자를 가속하여 달리게 하는 가속 터널 부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자 간의 충돌 실험 등을 관찰하기 위한 검출기 역시 매우 중요하다. 검출기라고 하면 부피가 그다지 크지 않은 하나의 실험 장치를 떠올리게 마련이겠지만, LHC의 검출기들은 각각이 매우 거대한 실험실 수준이다. LHC에는 4개의 주된 검출기, 즉 ATLAS, CMS, ALICE, LHCb라 불리는 대형 실험실들이 있고 작은 것이 몇 개 더 있다.

LHC의 ALICE 검출기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LHC에서 가장 큰 검출기는 ATLAS(아틀라스)인데 ‘대형 환상형 LHC 장치(A Large Toroidal LHC Apparatus)’의 두문자 약어이지만, 마침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과도 같다. 아틀라스 검출기는 LHC의 가장 주된 목적인 양성자-양성자의 충돌 실험을 관찰하기 위한 검출기이다. 이러한 양성자 간의 충돌 실험을 검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주요한 검출기는 CMS인데, ‘Compact Muon Solenoid’의 약자이다. 크기는 ATLAS보다 작지만 무게는 그 이상이어서, 에펠탑보다 두 배 정도 무거운 수준이라고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케 하는 ALICE 검출기는 ‘대형 이온 충돌기 실험(A Large Ion Collider Experiment)’의 약자로서, 납 이온과 같은 중이온의 충돌 실험을 관찰하기 위한 검출기이다. 나머지 주요 검출기인 LHCb는, 보텀 쿼크(bottom quark)의 연구를 위해 특화된 검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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