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 과학기술인
  • 오피니언
오피니언
2004-04-25

세계를 지배할 게놈 연구 이주영 연합뉴스 기자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최근 들어 게놈연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사그라진 듯 하다. 2001년 인간게놈지도 초안이 완성되고 2003년 인간게놈지도 완성본이 발표됐을 때 세계를 휩쓴 게놈 열풍을 생각하면 너무 썰렁하다. 물론 이는 흥미만을 따라 움직이는 대중의 모습일 뿐 게놈 연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과학기자 입장에서 인간게놈 연구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인간게놈지도의 탄생 과정을 뒤돌아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1953년 왓슨(J. Watson)과 크릭(F. Crick)의 DNA 이중나선구조 규명에서 2003년 인간게놈프로젝트(HGP:Human Genome Project)와 셀레라 지노믹스(Celera Genomics)의 인간게놈지도 완성까지 세계는 숨돌릴 틈 없이 달려왔다. DNA가 처음 유전물질로 판명된 50~60년대의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아니 HGP가 시작된 90년대 초의 과학 발전 속도로 볼 때도 인간게놈지도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게놈지도는 예상을 깨고 목표보다 2년 빠른 2003년에 완성됐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예상을 뛰어넘는 과학의 빠른 발전 덕분이었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은 지루한 인간게놈지도 작성에서 고비마다 놀라운 통찰력과 비전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급속한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출범과 조기 목표 달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지금까지의 게놈연구 역사는 곧 게놈연구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2003년 4월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된 후 세계 각국 언론들은 생로병사와 불로장생을 인간이 결정하는 꿈같은 게놈시대의 모습을 그려냈다. 물론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를 검사해 유전질환을 사전에 차단하고 정기적인 유전자 검사를 통해 생애동안 발생할지 모르는 질병을 예방하고 인간 평균수명을 120세까지 늘린다는 장밋빛 청사진이 당장은 황당해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달에 사람이 가고 화성에 탐사로봇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한 게 언제부터인지 따져보면 SF에 등장할 법한 그런 게놈시대가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런 모습을 상상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과학자들 몫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대부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또는 실현가능성이 분명치 않은 미래의 모습에 권위를 실어주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그런 상상 속의 목표가 너무 높아 보이는 반면 당장 눈앞에 닥친 연구의 장애물은 너무 커 보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Nature)」도 인간게놈지도 완성을 선언한 2003년 4월 24일자에서 유전체학(Genomics)의 비전을 제시하며 이를 실현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HGP는 생명연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게 사실이다. 생물학 및 생의학 연구는 HGP를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했고 게놈프로젝트 속에서 서로 통합, 발전된 유전학과 비교유전체학, 생화학, 생물정보학은 과학자들에게 건강과 질병에 관련된 생명현상을 분자수준에서 연구할 수 있게 했다. 유전체학이 생물학과 생의학 연구에서 중심적이고 통합적인 학문이 된 것이다. 이런 새로운 변화가 관련 학문은 물론 산업, 나아가 인류의 생활에 몰고 올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르는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일은 과거에는 대규모 연구팀이 수년간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원생 한 명이 DNA 샘플과 DNA 염기서열 분석기 등 몇 가지 장비, 그리고 게놈DB에 접속할 수 있으면 단 몇주일 안에 할 수 있다. 또 유전자를 토대로 질병의 진행과 의약품의 부작용 등을 예측해 임상에 적용하는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유전체학을 실제 치료에 적용하는 방법도 산업적 측면에서 폭넓게 연구되고 있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생물학이라는 학문과 인류의 보건, 의학, 나아가 사회 전체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인간게놈지도는 생물학 역사에서 이정표가 될만한 업적이지만 동시에 앞으로 상당기간 해결하기 어려운 엄청난 과제를 생물학에 안겨준 셈이다.


게놈의 구조를 밝혀내고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유전암호의 기능을 규명하는 것은 생물학과 유전체학의 결합을 더욱 가속시킬 것이며 이로 인해 생물과학의 연구영역은 더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인간게놈지도가 실제 인간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로 전망되는 분야는 바로 건강이다.

과학자들은 인간게놈의 DNA 염기서열 분석이 끝남으로써 인류 건강과 질병에 유전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이들 정보를 질병 예방과 진단, 치료에 활용하는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DNA의 염기서열만 밝혀졌을 뿐, 아직 정확한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작업은 끝나지 않았기에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요즘에는 이렇게 게놈을 토대로 한 새로운 분석기법이 빠르게 생의학 연구에 도입되고 있지만, 게놈정보를 인류 보건향상에 직접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유전체학은 또한 앞으로 당분간 과학과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유전체학이 인류 건강에 큰 혜택을 가져다줄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과 유전정보의 오용 및 악용 가능성 등 이로 인해 야기될 가능성이 있는 해악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놈연구가 미래 과학과 산업을 지배할 것이라는 흥미롭고 즐거운 상상 속에서 기자에게 떠오르는 한 가지 걱정은 이 물결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느 위치에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제 생명공학 선진국을 향한 경쟁의 판은 벌어졌다. 앞서갈 것인지 뒤쳐질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몫이다. 다음 세대에 우리가 생명공학에서도 산업화에서처럼 서방선진국에 뒤쳐져 있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후손에게 어떤 핑계를 댈 수 있을까?

저작권자 2004-04-25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